(7)분홍색 유혹, 찐어묵

촌동네선 볼수 없던 가공식품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준 친구는 잘 살까

by 찐추아

친구의 도시락은 언제나 우리 반의 화제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남자아이들부터

우르르 몰려들어 그 아이의 도시락 뚜껑에 집중했다. 기껏해야 감자볶음, 미역줄기, 볶음김치, 콩자반이 주류였던 그 시절, 분홍 소시지나, 계란말이 정도로도 충분히

어깨 힘 좀 주던 그 시절. 그 친구의 도시락은 스팸, 줄줄이 비엔나, 게맛살, 어묵 등등. 80년대 촌동네에선 보기드문 가공식품으로 찬란했다. 그 도시락은 또래 친구들의

눈요기인 동시에 새로운 맛을 경험할 창이었다. 넉넉한 환경 덕에 인심 좋은 친구는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신기한 반찬을 평범한 친구들의 반찬과 바꿔줬다.

우르르 몰려든 아이들 때문에 수줍게 웃으며 도시락을 열다 말고 그날따라 말했다.

“오늘부턴 반찬 못 나눠줘. 어제 다 나눠주는 바람에 절반은 맨밥 먹었잖아.”

도대체 뭐길래 시작부터 단도리를 하는 거지?

남 먹는 거 구경하면 거지라는 아빠 얘기도 있고, 또 먹을 거 따위에 자존심을 팔 수 없던 나는 모르는 척 늘 거리를 두었는데, 마침 그날따라 바로 뒷자리.. 그 친구의 밥그릇에 시선이 갔다. 한 손엔 젓가락, 또 한 손으론 다른 젓가락의 침투를 막기 위해

반찬 뚜껑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밥 한번 먹고 반찬뚜껑을 여는데

내 동공이 커지는게 느껴졌달까.

저게 뭐지? 난생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흰색 반달모양 안에 핑크색 꽃그림이 새겨진 저 깨끗하고 세련돼 보이는 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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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함보다 놀라움이 먼저, 물어봤다.

“그게 뭐야?”

친구들도 궁금했다.

“이거 어묵. 일본 어묵이야”

오뎅?? 무슨 오뎅의 자태가 저리 곱던가?

“아~~~”

친구 말이 끝나자 아이들의 탄성. 여기저기서 한 개만을 외치는 남자아이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고급스런 자태의 고것이 너다섯 쪽도 아니고 반찬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런 걸 원 것 먹을 수 있는 아이라는 사실을 그날 나는 처음 알았다.

반이 바뀌며 그 친구가 내 짝이 됐기 때문에 좀 더 가까워지며,

그 도시락의 수혜를 내가 종종 받고 있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부반장인

그 친구를 불렀다. 앞으로 나간 그 아이에게 선생님은 쪽지를 전해줬고, 그 친구는 수업 중에 학교 밖으로 나갔다. 한참 만에 돌아온 그 친구에게 어디를 다녀왔는지 물었다.

집에 다녀왔노라 했는데, 집에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싶었지만, 그 친구 표정이 평소와 다름없어서 조금 갸우뚱 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 후 하교 길, 집에 가려면 통과해야 하는 시장골목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시장 끝 도로 앞 과일가게에서 그 친구가 나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친구가 먼저 아는 체를 했고 뒤따라 나오던 친구의 언니가 내 손목을 잡아끌며 동생의 친구를

반겨주었다. 그랬었다. 그 친구는 동네 시장에서 두 번째로 큰 과일가게의

막내였던 것이다. 당시만해도 재벌집 막내아들 안 부러운 부자 집 딸이라는 의미다.

수업 중에 다녀왔다는 집은 과일가게였으며,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선생님들이 종종 친구에게 과일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단다.

말이 좋아 심부름이지, 딸의 선생님이 달라는 과일에 돈을 받을 부모가 어딨겠는가,

세 번에 두 번은 공짜로, 한번은 돈을 받긴 했으나 값어치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과일들을 친구 손에 들려 보냈단다. 한 마디로, 그 친구는 선생님들의 다과쿠폰이었던 셈이다. 수줍음 많은 그 친구가 학기가 바뀌어도 매번 반장, 부반장을 맡았던데는

이런 배경도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지금 같으면 큰일 날 일이지만,

당시만해도 수업 시간에 학생들한테 자습 시키고, 선생님들끼리 한 반에 모여서

다과를 즐기던 일이 종종 있었다. 넉넉지 않은 아이들이 태반인 시골학교에서

아이들 앉혀놓고 맨 앞 선생님 자리에서 과자며, 과일을 먹는 걸 보면서

침 흘리던 아이들도, 또 짜증스럽던 기억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함께 놀던 우리는 결혼 후에 멀어졌고,

각자 삶에 바빠 연락이 끊겼다. 결혼 후 첫 명절 때 꼬지 재료를 늘어놓는 시어머니

손에 분홍, 하양 찐어묵이 있었다. 내 인생의 신기원이었던 찐어묵을 보는데 반가웠다. 어머니에게 전수받아 지금은 명절때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꼬지.

분홍색 꽃무늬를 볼 때마다 그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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