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김장김치, 모녀간의 애증을 버무리다

364일 싸우던 엄마와 딸도 이날만은 하나되는 붉은 마법

by 찐추아

김장을 하며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 엄마는 김치 담그는 거 어떻게 알았어? 할머니랑 스무 살도 되기 전에 헤어졌다면서 요리는 어디서 배웠어?”

참고로 우리 엄마 손맛은 일품이다. 이름있는 종갓집서 배웠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너희 할머니가 쥐뿔도 없으면서, 꼭 대가댁 마나님처럼 먹는 거엔 정성을 다하셨다. 열 살도 안 된 나를 앉혀놓고 김장 속 넣는 거부터, 온갖 김치하는 걸… 열 댓살에 집 나올 때까지 내내 가르쳤지.”

나이 오십에도 홀로 김장 하라면 손사래 칠 나와는 대단히 다른 세상을 산 것은 틀림없다. 해마다 엄마와 김장을 한다. 부모님 모두 조실부모한 연유로 일가친척이 없어 명절마저 썰렁했던 우리 집도 김장할 땐 분주했다. 물론 오는 사람이야 동네 아줌마 한두 명. 그러니 맏딸인 나는 얼굴보다 더 큰 고무장갑 끼고 앞장서야 했다. 어릴 땐 뭔지도 모르고 참 맵고 힘들고 그랬는데, 가정을 꾸리니 겨울철 가족이벤트로 김장만한 것도 없던 것이다.

처음엔 엄마가 주도하고 나는 귀찮은 숙제하듯 했는데, 양가 어머님들 나이 들며, 얻어먹을 기회가 줄면서 김치의 귀함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앞장서 고기 삶고, 생굴 챙기며 가족들 소집해 신나게 김장을 했다. 매번 맛있진 않지만, 지져먹고 볶아먹는 믿을 찬거리니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남편의 퇴직으로 생활비를 아껴야하는 형편이 되며 김치가 더 귀해졌다.

한동안 연로하신 시어머니 김치까지 챙겨 보내느라 친정엄마 눈치도 많이 봤는데, 작년 큰 아이의 ‘헬입시’를 치르면서는 그 중요한 행사를 생략했다. 2년 만에 재개한 11월 이벤트에 나만큼 설레는 사람은 엄마다. 뒷담은 했어도, 엄마 역시 외할머니처럼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김장만은 거대하게 했다. 엄마와 나, 두 집 먹는데 절인배추 100kg씩 사서 한나절 내내 허리 한번 못 펴고 속을 넣고 김치통을 단도리했다. 하는 김에 알타리며, 석박지까지…. 일 벌리는 나의 재능은 엄마를 닮은 것이 분명하다.

일러스트 김윤호

이번에도 신나게 김장을 했다. 절인배추가 전날 도착하니, 물 빼고 다음날 아침 9시부터는 속을 넣어야 오전 중에 끝낼 수 있다. 관절염에 시달리는 엄마에게 미리 무채 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집에 왔지만, 의미없는 잔소리라는 건 다음날이 되기 전에 이미 알았다. 애들 등교시키고 9시 못 미쳐 부지런히 앞치마와 맥주, 홀로 있을 강아지까지 살뜰하게 챙겨서 왔건만, 벌써 거실엔 벌겋게 무쳐진 속이 한 가득.

물을 것도 없이 새벽부터 아빠를 닦달해 엄마의 성을 채웠을 것이 자명한 터. 군말 없이 속을 넣었다. 이번엔 60kg만 하니까 뭐 금방 끝나겠지 싶었는데, 진짜로 맥주 한 캔 딸 겨를도 없이 오후 1시가 되기 전에 뒷정리까지 스마트하게 끝났다.

부모님 덕에 많이 배운 나는 엄마보다 재능이 여기저기 많았다. 첫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애 키우는 책이 있냐”며 놀라운 듯 아이 핸들링에 감탄하기도 했다. 첫 애를 낳을 때도 그랬다. 침대에서 무력하게 진통만을 기다리며 암컷이 된 것 같은 내 병실에 들이닥친 부모님과 미혼의 오빠. 나는 경악했다. 눈물 찍으며 병실로 들어서는 엄마에게 “낳으면 연락할테니 일단 나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안타까움은 온데간데 없이, 진통하는 딸에게 눈을 흘기며 혀를 차고 병실에서 쫓겨났다고 훗날 표현했던 엄마. “엄마가 돼보니까, 얼마나 힘든 줄 알겠어, 엄마 미안해” 정도의 신파를 기대했을 엄마에겐 가히 상상 못한 전개였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참 코드가 안 맞아, 사춘기 땐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우던 엄마와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서로 크게 양보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나는 용띠고, 엄마는 개띠라 십이간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불가항력적인 이유를 찾아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아이도 말 그대로 쑴풍 나았고, 석 달만에 복귀한 직장생활과 육아도 턱턱 해냈다. 적어도 엄마가 보기엔 그랬을 것이다. 그 과정에 말로는 할 수 없는 눈물, 콧물의 사연이야…. 어디 나뿐이겠는가.

삶은 고기 꺼내 슥슥 썰며 시작된 알콜릭은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됐다. 처음엔 배고파서, 한 캔 두 캔 더해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식사까지 마치니 5시. 상 옆에 쌓인 맥주 캔도 수북했다.

오랜만에 엄마, 아빠, 우리 식구 4명이 둘러앉은 식탁은 불편한 이벤트 없이 기분 좋게 끝났다. 아버지 옆에 쌓여가는 술병만큼 급격하게 경색되던 종전의 가족 이벤트와 달리 이번에는 깔끔하게 마무리 됐다. 여든 셋을 넘긴 엄마가 언제까지 김장 대장을 할 수는 없겠지만, 엄마와 나의 애증과 추억으로 쌓아 온 둘 만의 이벤트. 올해도 즐겁게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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