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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Oct 24. 2021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합격한다

2014년 3월 1일, 공무원이 되었다.

금요일에 코로나19 백신 2차를 맞기 위해 공가를 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갔고 남편이 하원 시키면서 할아버지 집으로 가기로 했다. 화이자를 맞고 앓아누울 만발의 준비 완료. 그런데, 괜찮았다. 다음 날인 토요일에도 아프지 않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쌀쌀함 때문에 비염이 도졌고 그에 따른 코막힘과 두통만이 있을 뿐이었다. 타이레놀 대신 코감기약 2알을 먹으니 몸이 좀 편안해졌다. 이놈의 몸뚱이에 항체는 잘 형성되었는지 의심이 들지만 아프지 않고 지나갔다는 안도감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월요일이 되기 대략 1시간 45분 전이다. 3일의 휴일이 치킨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1년 6개월의 시간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백수의 시절이었다. 늦잠을 자거나 밤을 새우거나 다음 날 출근의 부담이 없었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채만 있을 뿐이었다. 전세 오천만 원이었던 오피스텔을 빼서 보증금 천만 원에 월 사십만 원짜리 원룸을 얻었다. 딱 1년. 내가 계획한 수험기간에 맞춘 예산이었고 보증금 중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이천만 원이 전부였다. 집에 생활비를 보내고 있었고 전세금을 갚는 중이었어서 수중에 모인 돈이 없었다. 10년을 쉬지 않고 벌었는데 말이다.(지금도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십 대에는 술만 마시면 울었다. 술 마시고 우는 내가 꼴 보기 싫어서 술을 '거의' 끊었다.)


달마다 세를 내야 하는 날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공부하다 보면 배는 또 왜 그렇게 고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야 하는 책도 많고 인강이라고 해도 그렇게 싸지도 않았다. 통장 잔고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8개월 만에 바닥이 났다. 처음 두 달은 세무직 준비하다 포기했으니 교행으로 노선 변경 후 온전히 6개월 준비해서 시험도 봤다. 경기 교행은 2점 차이로, 서울 교행은 1점 차이로 떨어졌다. 점수 차이가 많이 나서 떨어졌으면 더 받아들이기 쉬었을까. 다른 누군가를 합격시키기 위해 나를 떨어뜨린 것만 같은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했다. (지금은 지방교행을 모두 같은 날에 치르지만 내가 시험 봤던 첫 해인 2012년까지만 해도 서울 교행과 지방교행 날짜가 달라서 주소지 조건만 되면 2번 시험이 가능했다.) 엄마한테 떨어졌다고 말하는데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6개월 준비하고 합격하길 바랐던 게 욕심인 줄은 알지만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정말 열심히 했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었다. 엄마와 통화 후 오빠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 동생아, 네가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너보다 더 열심히 한 사람들이 많았겠지. 그러니까 네가 떨어지고 그 사람들은 붙은 거야.


요즘 말로 뼈 때리는 조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또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빠는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스물넷에 1차 시험 합격하고 같은 해 2차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그 이듬해 2차 시험에 바로 붙었다. 1차는 객관식이고 2차는 주관식을 5일 동안 본다. 처음으로 사시에 응시하는 사람은 1차와 2차를 동시에 준비할 수는 없으니 1차를 합격하고 그 해에 2차를 바로 합격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1차 한 번에 2차는 두 번의 기회를 준다. 물론 사법고시가 존재했을 때 이야기다. 스물 다섯에, 가난한 집에서 사법고시에 합격하기까지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이 가능했으므로 오빠는 나에게 당연히 자랑스러운 존재였다. 한편으로는 넘지 못하는 벽같기도 했던 그의 냉정한 말이 얼음칼처럼 마음 한 곳을 파고 들었다. 상처는 받았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나보다 열심히 하는 보이지 않는 경쟁들을 상대하기 위해 더욱 이를 악물기로 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한 다짐은 얼마든지 새로고침 할 수 있었으나 통장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돈이 없었다. 여전히 집에 손을 벌릴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주 2일, 8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이제 막 개원한 작은학원의 파트타임 강사 자리를 구했다. 두 달이 지나자 주 4일로 수업이 늘었고 수입이 200만 원이 되었다. 시간은 부족했지만 돈에 쪼들리지 않으니 마음이 덜 조급했다. 영어 공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로 대신했다. 세무직 준비까지 포함해 이미 8개월 동안 공부한 게 있다 보니 국어와 국사도 크게 점수가 흔들리지 않았다. 수능 본 지 10년이 지났지만 기억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교육학이랑 행정법만 잡으면 됐다. 아르바이트 가는 4일 중 오후 2시까지의 시간을 잘 활용하고 온전히 공부할 수 있는 3일을 공략하는 것이 중요했다.


< 나만이 공략법>

1. 인터넷 강의를 3명과 공유한다.

  - 잠자는 24시간을 3 등분해서 8시간씩을 딱 세 사람과 공유해서 돈을 절약했다. 나는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들었다.(지금도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2. 아침 6시에는 독서실에 무조건 간다.

  - 생활 패턴을 무너지게 해서는 안된다. 가서 쪽잠을 자더라도 집에서 5시 50분에는 출발했다.


3. 매일 다섯 과목을 골고루 분배한다.

  - 국어, 영어, 한국사 모의고사는 매일 보고 오답노트 정리를 기본으로 했다.(대략 4시간 정도 소요) 그 다음 2시간을 교육학이나 행정법을 하루씩 번갈아가며 공부한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가지 않는 날에는 교육학과 행정법 문제풀이를 진행하고 암기를 했다.


4. 버릴 것과 취해야 할 것을 확실히 구분한다.

  - 국어 과목 중에서 한자는 버리고 표준어와 어법 문제는 다 맞히는 것으로 했다. 한자의 범위가 너무 넓은 데다 한자를 외우느라 들이는 시간에 독해를 더 하고 표준어를 한 번 더 봤다.


5. 오답노트와 단권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 틀린 문제를 다시 보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그래야 다음에 같은 문제를 틀리지 않는다. 틀린 문제에 대해서 해설지만 보지 말고 기본서 내용을 꼭 찾아서 표시한다.


6. 연애도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다. 같은 공시생도 상관없다.

  - 가장 자존감이 없는 시기이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높아진다. 24시간 공부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영화도 보고 미술관도 가고. 쉬는 날을 알차게 보내면 공부에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7. 합격한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매일 상기하라.

  -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한 번도 내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무조건 시험에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라도 말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믿어보자.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조건 된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전제가 먼저다.


2013년 서울 교행에 합격해서 2014년 3월 1일 자로 발령을 받았다. 공부 시작한 지 1년 8개월 만의 일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나는 주 4일 알바도 했고, 연애도 했다. 그때 연애한 남자와 지금 같이 살고 있고 아이도 있다. 지금은 아프면 병가를 낼 수도, 예방접종을 위해 공가를, 휴식을 위해 연가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수험생활이 누군가에게는 길고 어두운 터널일 수 있겠으나 터널의 끝은 눈부시도록 빛이 난다. 자랑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지금도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길을 걷고 있을 이들을 응원한다. 나처럼 돈도 없고 시간도 없었던 사람도 노력하니 되더라고,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필기시험 합격 메시지>

*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베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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