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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Oct 20. 2021

학교 행정실에 공무원이 산다

교육행정직 공무원이 되어야 겠어!

서른 살을 앞두고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준비를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을 봐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서른 살이 다되도록 일만 하느라 쌓은 스펙이 전무했고 학원 강사 경력은 다른 학원으로 이동만 가능할 뿐 새로운 분야로의 이직에 있어서는 1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할 수 있으면서 배경을 지우고 오로지 ‘나’ 하나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시험’뿐이었다.


스무 살부터 파트 타이머 새끼 강사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학원강사를 업으로 삼아 10년을 일했다.  학벌로는 경쟁이 안 되고 사내정치는 아예 관심이 없어서 열심히 하는 것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녹록지 않았다. 매 년 바뀌는 입시제도에 맞추어 공부를 하고 학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입시설명회를 개최하고 사춘기 아이들 단속에 학기마다 맡고 있는 아이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학부모 상담을 진행했다. 학원은 무엇보다 좋은 성적을 낼 때 마음보다 먼저 지갑이 열리는 곳이다 보니(경우에 따라서는 내 눈에만 보이지 말라며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부모들도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만발의 준비를 해서 시험기간을 대비함에도 나와 아이들 학부모까지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애당초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온갖 좋은 재료로 산해진미를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해도 또 일일이 아이들 입 속으로 떠 먹여주는 것까지도 나의 일이라고 해도 씹어서 삼키는 거까지 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롯이 아이들의 몫이었던 그 마지막 관문까지도 나는 비집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종종 가로막혔고 그에 따른 좌절감은 쓴 맛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그동안은 내가 공무원 시험에 보게 된 데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글로 풀다 보니 그 일을 그만두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력 출중하시고 성실하시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모든 학원 선생님들을 존경합니다.) 내가 학원을 그만두려고 한다고 하자 동료들은 모두 나를 말 그대로 뜯어말렸다. 공부한다고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또 하나, 그즈음에 나는 내 생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그때까지 외고 입시가 존재했기에 학원업은 흥행가도였고 내 손에 쥐어지는 돈은 적지 않았다. 친구들이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결정하고 입사를 위해 자소서를 쓰며 고군분투하던 이십 대 초반에도 나는 세 후 2백만 원 정도를 벌고 있었고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들에 비하면, 오후 3시에 출근해서 10시에 퇴근하는 생활패턴에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려고 한다는 친구에게 이런 말도 했다.

- 돈도 얼마 못 버는데 그거 왜 하려고?

돌이켜보면 사무치는 말이 아닐 수가 없다, 공무원 세계에 들어와보니 일찍 시작할 수록 호봉이나 승진, 여러면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에도 여러 직렬이 있다. 가장 많은 인원을 선발하는 직렬은 일반행정직이다. 동사무소부터 시청, 도청, 정부청사 등에서 일한다. 그런데 나는 일반행정은 영 당기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학원업이 서비스업으로 민원응대가 많았었기에 그쪽은 피하고 싶었던 본능같은 것이었겠다. 그다음 고려했던 직렬은 세무직. 학원에서 영어 독해와 문법을 가르치는 일을 오랫동안 했지만 사실 나의 전공은 세무회계이다. 시험 성적에 맞추기도 했고 세무사가 되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던 때가 있었지만 뼛속부터 문과인 내가 문과의 탈을 쓴 이과적 세법 및 회계학과 친해질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세무직을 고려했던 것은 그나마 제목이라도 한 번 들어봤고 수업도 몇 번은 들어봤으니 공부가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종합반 수강 두 달만에 세무직은 내 길이 아님을 바로 알아차렸다. 법원직과 검찰직도 인기 직렬이다. 법원직 9급은 지방직 시험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보통 9급 시험 준비를 하면서 국가직과 지방직을 같이 시험 보기 때문에 지방직이 없으면 1년을 준비해서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성패가 가름 난다) 9급 공무원의 꽃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이직률이 적고 업무환경이 좋다는 방증일 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끌리지 않았다. 교정직은 수감자들을 대면해야 하니 무섭고, 관세직은 공항이나 항구 근처에서만 업무가 가능할 테니 지역적 여건 때문에 배제하고.. 이거 안되고 저거 안되고 했더니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교육행정뿐이었다.


교육행정직렬은 선택한 데는 '아는남자사람오빠'의 영향도 컸다. 대학 동기였다가 군 제대 후 다른 대학으로 편입해버린 그가 4수 만에 서울시교육청에 합격한 것이다. 고등학교 행정실이 그의 첫 발령지였는데 빗자루나 고무장갑 같은 것을 사면 돈을 지출해주는 업무를 한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공무원들은 행정분야를 처리한단 말인데, 말만 들었을 때는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가만, 학교 행정실에 공무원이 있었나? 옛날에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행정실이 아닌 서무실이 있었고 그곳에는 기지 바지에 잠바를 입고 있는 나이 많은 아저씨와 ‘미스 고’ 언니가 있을 뿐이었다. 내가 아는 공무원은 학교 선생님이나 군청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국한되어 있었으니 '학교 서무실 속 그들'이 공무원일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아는남자사람오빠'와 같이 일하는 행정실장님은 무려 사무관이라고 했다. 사무관이란 무릇 5급 행정고시에 합격해야 얻을 수 있는 관직인데 그런 분이 학교 행정실에 있다니. 그럼 그때 그 서무실에서  침 바른 손으로 서류를 넘기던 그 아저씨는 사실은 그냥 아저씨는 아니었던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 학교 행정실에 공무원이 살고 있었구나! 무엇보다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면 퇴근을 한다는 믿을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오호! 이거로구나!


< 국어, 영어, 한국사, 교육학, 행정법>


내가 이제부터 교육행정 공무원이 되기 위해 정복해야 할 시험 과목은 바로 이 다섯 과목. 7급은 헌법과 행정학 2과목이 추가되기도 하고 국가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방교행에서는 7급을 뽑지 않으니 욕심부리지 않고 최단 시간에 합격하는 것을 목표로 9급 교육행정직을 택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 한 일 같다.) 방향이 잡히자 나는 바로 시동을 걸었다. 노트북을 꺼내 인터넷 강의 수강신청을 했고 독서실에도 등록했다. 이제 남은 할 일은 닥공(닥치고 공부_그 시절 나의 미니홈피 대문사진에 이 글 귀를 걸어두었었다)뿐이었다.


*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스탠포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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