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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Oct 28. 2021

공무원 합격 후, 임용 전의 시간 활용하기

합격하느라 고생한 당신, 떠나라. 나는 떠나지 못했지만.

필기를 합격하고도 뒤에 남은 면접은 큰 부담이었다. 면접을 위해 온라인으로 면접스터디 멤버를 구하고 스터디룸에서 모의면접 연습도 했다. 면접 날에는 고르고 골라서 찾아간 헤어-메이크업숍에서 면접 프리패스상이라 불리는 승무원 헤어스타일로 머리 모양을 만들어주었으나 그 단아함은 동그란 모양의 내 얼굴형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다른 미용실을 찾아가 머리를 다시 감고 매만지느라 하마터면 면접 시간보다 늦게 도착할 뻔 한 일도 있었다. 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게 끝내고 나오는데 9월의 햇살이 어찌나 눈이 부시고 하늘은 맑은지 내 마음과 달리 그저 예쁘기만한 가을날이 서러워서 눈물이 났더랬다. 인적성 검사와 면접 심사까지 무사히 통과하고 최종 합격 통지를 받고 나서야 기쁜 마음이 오롯이 내 것이 되었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그날에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해외여행이라도 갔어야 했다. 합격 통지서만으로도 공무원 대출이 2천만 원까지 가능했었는데 시간을 되돌려봤을 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이제 임용만 앞두고 있으니 취업은 보장되었겠다, 시간은 많겠다, 백수라도 이제 '급이 다른' 백수가 된 것이다. 집에서 어깨 좀 펴고 거드름 좀 피운다고 눈치 주는 사람 하나도 없고 모두 고생했다, 장하다 칭찬해주는 바로 그 시기. 구름 위에서 미끄럼틀 타고 내려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인생에 다시없을 찰나인데 나는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아직까지도 짙게 남아있다. 기쁨은 잠시였고 일상으로의 복귀는 빠르게 진행됐다. 우선 하고 있던 파트타임 강사일을 계속하고 있었는 데다 엄마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11월 초 어느 오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한 지역교육청에서 온 전화였다. 임용 전에 교육청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자리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합격하고 필요서류를 제출하면서 관련 내용에 동의하고 연락처를 남겼던 게 생각났다. 면접은 형식적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친해진 동기한테 들어보니 자기가 떨어진 자리에 내가 붙은 거라고 했다. 특정 사업에 필요한 예산에서 인건비를 편성해서 그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인력을 운영하는 계약직 근로 성격이었는데 무엇보다 곧 몸담게 될 직장의 맛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고 그런 면에서는 운이 좋았다.


그토록 원하고 바랐던 아침 9시까지 출근, 오후 6시에 퇴근하는 평범한 회사생활의 시작이었다. 교육지원청 행정지원과 수용팀. 그때 나는 중학교 배정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채용되었는데 함께 했던 주무관님들, 팀장님, 과장님 모두 너무 좋은 분들이라서 잊을 수 없고 잊히지 않는다. 행정지원과에 총 3팀_총무팀, 수용팀, 기획팀_이 있었는데 기획팀에는 나보다 먼저 근무를 시작한 나와 같은 인턴 J가 있었다. 의욕이 능력보다 앞서 무슨 일을 해도 서툴던 시기라서 주어진 일에 서로 의지하며 머리를 맞대었으니 짧은 기간에 깊은 정이 들었다. J는 계약기간이 12월 말로 일찍 종료되었다.


J가 없는 교육청에 2014년 1월 1일 자로 나와 같이 시험을 치른 동기들 중 일부의 첫 발령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정식 공무원이고 나는 임용 예정자라는 미묘한 차이 때문인지 왠지 위축되었다. 동기들은 업무 포털에 정식으로 본인 계정이 생겨 고유 업무를 맡게 되고 나는 복사와 전화 및 차 응대, 문서 파쇄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초라한 것처럼 느껴지게 된 것이다. 공부하는 백수일 때는 합격만 하면 소원이 없겠더니 무슨 마음이 이리도 소란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J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보다 4살 어리던 J가 그 겨울, 크리스마스에 써 주었던 ‘언니~’하고 시작하는 카드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J가 마지막 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날 인사를 하면서 아이처럼 울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록 정식 발령은 아니었지만 J에게도 인생 첫 직장이나 다름없었던 데다 어리버리한 인턴들을 모두 제 식구처럼 챙겨주셨던 따뜻한 마음에 대한 이른 그리움이 터져나온 것일 테다. J나 나나 인턴으로 일하다가 있던 곳에 발령이 나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기도 했다. J보다 두 달 더 근무했지만 나 역시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예상보다 일찍 발령이 나면서 곧 교육지원청을 떠났다. 발령 공지가 뜨자마자 옆에 계시던 주무님은 갑자기 분주해 지셨다. 지출품의부터 공문 기안하는 방법을 찬찬히 알려주시며 공무원으로서 내디딜 첫 발에 아낌없이 응원을 보내주시는 모습에 나는 또 뭉클했서 눈물이 났더랬다.


시험 합격 후, 임용 전까지 인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면에서 좋은 기회였음이 분명하지만 아쉬움도 존재한다. 여행이야 나중에 가면 되지, 배우고 싶은 것은 월급 받으면서도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은 이상일 뿐 현실은 녹록지 않으니 말이다. 연차마다 다르지만 경력이 차면 최대 22일 범위 내에서 연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근무하면서 장기간 휴가를 내어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로 신혼여행 외에 5일을 연속으로 휴가 받아 본 적이 없다. 정부차원에서 여름휴가를 권장하지만 극성수기엔 항공권이나 숙박 모든 것이 비싸다. 시험 합격하고 발령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돈은 그 다음) 꼭 가고 싶었던 여행이나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은 학교에서 근무하더라도 방학 개념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당연하게도 평소와 동일하게 근무한다.) 늘 그렇듯, 현재는 너무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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