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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Nov 03. 2021

국립대학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국립대학에서 적응하기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일이 일어난 게 나의 운명이었고 하늘의 뜻일 것도 같은데 그래도 '어쩌면, 만약에' 라는 미련은 항상 남는다. 2015년 9월 1일 자로 승진하고 1:1 교류가 한 번 틀어지고 12월에 지금 기관에서 8급 일방전입 공고가 올라왔다. 기관에 일방 전출 동의 여부도 묻지 않고 일단 지원해서 면접도 보았다. 그때 선발인원을 2명. 6명이 지원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나 포함 총 3명이었다. 남자 2명에 여자는 나 혼자였는데 여수에서 오는 사람이 배를 타고 오는데 지연이 되는 바람에 면접이 전체적으로 20분이 미뤄졌다. 나는 속으로 안심했다. 지각한 사람이, 면접이라는 중요한 일에 시간도 맞추지 못하는 사람을 선발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면접도 잘 본 느낌이었다. 면접관들은 혹시 대학에서의 근무를 또 다른 기관으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지 않을지 경계하는 듯했고 나는 결혼을 위해 제주에 오는 거고 집도 이미 마련되어 있어 안정적으로 근무할 여건이 된다고 어필했다.


결과는 정말 예상 밖이었다. 당시 인사팀장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 불합격 통보를 알리는 말이 억울하면서도 이렇게 들리기도 했다. "당신이 너무 마음에 들지만 현재 우리 기관에서는 인원이 부족해서 전입 직원을 선발하는 중에 결혼과 동시에 임신 가능성이 있는 당신을 뽑기에는 기관에 부담이 됩니다." 라고. 결혼 이야기를 뺄 걸 그랬나 싶었다. 그냥 제주가 좋아서 제주에 살고 싶다고만 말했다면, 결혼과 임신에 대한 가능성을 아예 내비치지 않았다면 분명 내가 뽑히고 그 지각한 남자 직원이 떨어졌을 텐데.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부족해서 떨어진 건 아니야, 내가 여자라서 떨어진 거야.' 쓰린 마음에 나름의 응급처치였다.


결혼은 예정대로 진행이 되었다. 결혼하고 남편은 제주 신혼집에 나는 서울 자취방에서 각자의 생활을 이어갔다. 결혼을 했는데 같이 있지 못하니 더 애틋한 느낌이었고(주말부부가 사이가 좋다는 속설은 경험상 진실임ㅎㅎ)  한 번씩 제주에 가면 시조부모님과 시부모님도 언제면 제주에 올 수 있냐며 한걱정을 늘어놓으시니 뭔가 불효까지 하는 기분에 하루라도 빨리 제주로 내려가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컸다. 그러던 중에 처음 1:1 교류를 파투 냈던 사람한테 다시 연락이 왔다. 아직 교류가 가능한지를 물었는데 한 가지 상황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사이 나는 8급으로 승진을 했고 그분은 그대로 9급이었다. 강임 동의서를 작성해야 교류가 가능했고 머릿속이 오로지 제주로 가득 찬 나는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원래 8급이었으니 금방 다시 승진시켜 줄 거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나의 생각은 틀렸다.


사범대학이 있는 대학교는 보통 00대학사범대학 부설중학교와 부설고등학교가 있다. 그리고 교대가 하나의 대학이었다가 국립대학으로 통합된 전국 유일의 대학이므로 부설초등학교도 있다. 대학 인사팀에서는 학교에서의 근무경력도 있고 당시 대학으로의 전입직원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전출을 가는 일들이 몇 번 생기다 보니 전입직원 보호 차원에서 부설고등학교로 발령을 내주었다.(고 나중에 알게 된 동료한테 이야기를 들었다. 그 동료는 지금 남편의 직장문제로 인천시교육청으로 전출 갔다. 내가 이곳으로 왔던 1:1의 교류 방식을 통해서) 서울시교육청에서 고등학교는 지역청이 아닌 본청 소속에 행정실장은 5급 사무관이고 차석인 7급 이외에도 3-4명의 직원이 더 있어서 꽤 선호부서이다. 직원이 많으면 업무를 나눠가지게 되므로 업무범위가 좁혀져서 좋다. 실제로 서울에서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직원이 3명이었으므로 나는 세입, 지출, 기록물, 물품, 민원 등 실장님과 급여담당 직원의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이 내 일이었다. 새로 적응해야 하는 곳에서 첫 발령지가 고등학교인 것은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첫 출근일에 실장님과 다른 직원 한 분이 총무과로 마중을 나와주셨다. 나는 긴 웨이브 머리에 원피스를 입고 노란색 단화를 신고 서울에서 왔다는 티를 팍팍 내며 도도하고 새침한 모습으로 두 분의 뒤를 따랐던 것 같다. 실제로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여러 달 근무한 후에 나에게 '제주도 아주망'이 다 되었다며 첫인상과 다르다고 하시면서  내 첫인상이 저랬다고 말씀해주셨다. 새침, 도도라니. 내 평생 그런 소리를 들어보지를 못했건만. 그래도 만만해 보였다는 것보다는 듣기에 좋았었던 것 같다.


나와 같이 전입 면접을 봤던 면접 동기(?)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듯 보였다. 한 사람은 교무과에, 한 사람은 부설초등학교를 거쳐 입학관리과에서 근무 중이었다. 나는 나대로 고등학교에서 잘 지냈다, 근무시간만 빼고.  교육청 소속 학교 근무자는 점심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주는 탓에 보통의 고등학교는 8시 출근 4시 퇴근인데 국립대학에 속한 학교들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9시에 출근 6시 퇴근이 낯설고 힘들어서 오후 4시만 되면 자꾸 집에 가고 싶었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고 관성의 법칙이 이미 내면화되었던 것이다. 시간은 늘 그렇듯 빠르게 지나서 6개월의 시간이 지났고 나는 사무실의 막내로서 좋은 분들에게 엄청난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쑥쑥 자랐다. '적응 완료.' 이듬해 1월이 되자 승진 후보자 명부를 조회할 수 있었고 내가 1등이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승진을 그냥 시켜주는 게 아니라 면접을 보라며 일정과 할 일을 알려온 사내 메일에 적잖이 당황했다. 업무 성과를 포함한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라는 것에는 완전히 짜증이 났다. 이것은 무슨 상황인가? 8급이었다가 9급으로 강임 한 것도 모자라 다시 8급이 되기 위해 면접을 봐야 한다고? 이건 아니지! 근데 그건 나의 속마음이고 면접을 봐야 승진을 할 수 있다는데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를 수밖에. 2017년 1월 27에 다시 8급으로 승진을 했다.  나의 자리를 다시 찾은 것일 뿐 기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승진시켜 줘야 하는데 불필요한 절차만 더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나는 2014년에 입사해서 3년 만에 8급에 승진한 격이 되었다.


tip. 요즘은 승진적체가 심해져서 전입 아닌 9급 신규직원들도 8급으로 승진하는데 실제로 3년이 걸리기도 한다. 또 한 가지, 국가기관-국가기관은 전임지 근무경력을 모두 인정해주지만 지방-국가기관인 경우 지방직을 의원면직하고 신규 채용하는 것과 같아서 이전 경력은 현재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나의 경우 서울시 교육청에서의 8급 경력도 모두 9급 경력에 산입되었다. 다시 8급으로 승진한다고 해도 이 전 8급 경력은 합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관 이동 시 주의할 사항이다.


대학 인사팀에서 나를 전입 모집 전형에서 뽑지 않은 건 현명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사실은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전입 오고 두 달이 지나 아이가 생겼고 8급으로 승진하고 몇 달 지나 출산과 동시에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가임기 여성의 업무공백으로 인한 인력난을 몸소 증명한 셈이다.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을 1년을 예정했으나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복직했다. 집 근처에 있는 교육대학에 자리가 있는데 혹시 예정보다 일찍 복직할 수 있겠느냐며 내미는 인사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 한몸 희생해서 인력운용에 도움이 되어보자는 선한 마음은 아니었다. 마이너스 통장은 쌓여가고 승진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아이도 키워야 하는 문제 당면했기에 출퇴근 거리가 멀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하원 하는 일이 막막했으니 나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 무조건 집 근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복직하겠다고 했다. 복직한 사무실에서 나는 또 막내였다. 서른일곱 살인데 막내라고? 나의 막내 포지션은 휴직 전 업무능력이 리셋된 상태에서 재부팅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또한 나쁘지 않았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내가 맡은 업무는 교육대학의 학사운영과 수업에 관한 일이었다. 고등학교는 이전 기관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대학에서 내가 맡은 첫 업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어라?


면접 동기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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