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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Nov 23. 2021

현실과 이상의 갭(gap) 차이

더 좋은 곳으로 가자?

제주가 고향이 아닌 이들이 직장까지 이동하면서 제주로 올 때에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 ‘아름다운 제주’에서 워라밸을 실현하리라는 이상을 가지고 왔을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는 자신의 선택이 너무나 옳았다고, 역시 제주는 다르다고, 제주에 오니 숨통이 트인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선택을 칭찬했을 것이다. 곧 제주가 다시 일상이 되어 자신이 ‘지긋지긋’ 한 현실 속 도돌이표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다시금 결심했을 테다, 더 좋은 곳으로 가자!


회사에 근무하는 모든 인력이 100%만큼의 능률로 일을 한다면 회사는 지금보다 더 적은 인원으로 더 큰 효율을 올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A가 본부에서 150%만큼 없던 힘도 짜내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B는 외곽에서 50%의 에너지만 쏟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보다 월급이 더 많다고(그것도 훨씬) 하는 가정이 말이 안 되는 억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다. 심지어 많다. 첫 번째로 의욕이 꺾이는 순간이다. 그래도 A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심지어 열심히 한다. 승진이라는 보상이 뒤따르겠지 내심 기대도 한다. 그런데 승진은 C가 한다. 내가 묵묵히 일을 할 동안 C는 티 나게 윗사람을 모셨다고 한다. A는 B가 되기로 결심해보지만 회사가 좋은 학벌에 공채 출신인 A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그럼 B는? B는 이제 다음 달이면 퇴직을 앞둔 말년 병장이라 회사에서는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중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회사에 B가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퇴직이 1년 남은 B', 2년 남은 B''까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수밖에. A는 다시 나라일터에 프로필을 공개한다.


회사를 떠난 동료들의 상황을 재구성해보았다. 일반 회사에서 흔한 일이 공무원 사회라고 다를 바 있겠는가. 지금의 나도 일은 쌓이고 월급은 그대로인데 승진은 적체인 상황을 견디는 중이다. 일이야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겠고 공무원 월급 적은 것도 알고 들어왔다만 승진 적체는 무슨 일인가 싶고, 년수 채우면 다 승진하는 거 아니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공무원이 아니었던 사무원들을 일제히 공무원으로 전환해 준 시기 이후로 시험을 통해 들어온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승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공짜로 공무원이 되는 좋은 기회였겠으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공정과 박탈감을 주었음에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떠났을 것이고 제주가 좋아 홀연히 왔을 뿐이라서 연고가 없으니 떠나기는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바이다. 제주살이가 아무리 좋아도 어쩔 수 없는 직장인들이다. 직장인 뭐 별 거 있으랴, 월급과 승진으로 오늘도 버티는 사람들일 뿐인 것을.  

 Tip.
 - 그룹 1. 공무원 시험을 통한 공채 출신(경력채용 포함)
 - 그룹 2. 비시험 출신(비시험 출신은 다시 여럿으로 나뉜다)
       2-1. 계약직으로 들어온 후 무기계약직을 거쳐 공무원으로 전환(흔히 전환직 공무원이라 칭한다)
       2-2. 계약직으로 들어온 후 무기계약직으로 됨(흔히 학교회계직원/공무직이라 부른다, 비정규직 아님)
       2-3. 계약직으로 들어온 후  계약직으로 근무(계약직 직원으로 비정규직)


학벌, 학연, 지연, 스펙 없이 시험이라는 기준 하나만 통과하면 되는 직업이라서 이 직업을 선택했다고 연속으로 쓰고 있는 앞 선 글에서 밝힌 적이 있다. 공정이라는 이상적인 가치가 실현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인사기록카드에 여전히 졸업한 대학을 기재하게 되어 있고 대학의 순서로 주요 부서에 배치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심지어 업무 태도가 좋지 않아 외곽으로 밀려난 동료  J가 같은 K대학 동문인 고위 공무원이 직속 상사로 왔을 때 다시 본부로 발령받았고 이후 힘든 업무를 견디지 못해 외곽을 자처해 나갔음에도 다음에 부임해 온 상사가 K대학 법학과를 나온 인재라며 다시 한번 그를 주요 부서에 앉히는 것을 목도했다. 외곽에서 승진이 자꾸 뒤처지자 떠밀림을 가장해서 원하는 부서에 배치받은 그가 회식자리에서 본인의 학벌을 지속적으로 어필하는 것을 보고 들었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업무에 관심이 없으면 승진에도 관심이 없어야 맞는데 업무는 기피하면서 승진을 갈망하는 것은 너무 염치 불고 아닌가. 같은 시험을 치고 같은 공무원이 되었지만 계급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고 공정은 허울이었을 뿐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벽이 존재한다. 벽이 이 벽 하나뿐이면 부수고 앞으로 돌진하겠지만 그 앞에도 또 벽이 있다. L의 아버지는 지자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우리 회사의 높은 분들과 친분이 두텁다고 소문이 자자했는데(그 소문뿐이었다, 그의 업무 능력이 어떻다는 소문은 1도 없었다) 승진 인원이 1명뿐이었을 때 경력 많은 다른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승진 최저연수를 갓 채운 그가 승진하는 것을 보고 소문은 거짓이 아닌 씁쓸한 진실이었음을 알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내가 속한 기관의 일 만은 아닐 것이다. 기관을 원망하는 것도 아니다. 정말 그런지 사실 확인도 불가능하고 누군가는 나의 열등감일 뿐 오해하지 말라고 말 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착각이길 간절히 바란다.


벽 앞에서 통곡만 하다가는 퉁퉁부은 개구리 눈이 될 것이고 벽을 뛰어넘자니 다리가 짧아 걸려 넘어질 것 같다. 벽은 그냥 벽으로 둔다. 대신 나는 오늘도 내 일을 야무지게 처리하려 노력했고, 밝고 힘차게 인사했으며, 하루를 충실히 살았다. 그거면 됐다. 현실에 내가 꿈꾸던 공정의 가치는 희미하지만 돌아가면 쉴 수 있는 내 집이 있고, 아이가 뛰어 놀 바다가, 오름이 지천이다.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회사는 덤이다. 일상을 글로 쓰는 지금 순간이 내가 이루고 싶었던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나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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