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달달 Nov 25. 2021

대학의 '외곽주의자'의 본부 입성기

본부에서 살아남기(1)

11월 23일. 내 호적 생일이다. 2년 만인가. 서울시교육청 선배이자, 내 대학 동기인 남자사람오빠한테서 카톡이 왔다. '1123 생일 맞지? 생일 축하해!' 감동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근황 토크가 이어진 가운데 '오빠 이번에 본청 지원했다. 등수가 너무 밀려서 일부러 지원했어.' 쌍둥이를 출산하고 줄곧 고등학교에 근무하며 함께 육아를 해 온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이 이제는 유치원에 다닐 정도로 컸고 빠른 동기들은 벌써 6급을 달았으니 슬슬 욕심을 부릴 시기가 온 것이다. 작년에 6급 대우(대우 공무원은 현재 직급에서 5년이 지났는데도 다음 직급으로 승진하지 못한 경우 대우 수당을 지급 받는다.) 를 달았다고 하니 7급 진급한 지 올해 6년 차가 지났나 보다. 시간의 빠름이야 말한들 입만 아프지만 그래도 또 한 번 놀랐다. 그래, 내가 제주도 내려온 지도 6년 차이니까.


본부에 들어와서 일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본부에 들어오기 전 나는 '외곽주의자'였다. 제주에 오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우여곡절들은 이 전 글에서도 밝힌 바 있다. 일방전입에서 한 번 떨어졌고 1:1 교류가(이 또한 한번 틀어졌던 사람과 두 번째로) 성사되어 소속 기관 인사담당자들끼리 언제쯤 발령을 내기로 합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다시 면접 보러 오라는 안내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그때 인사담당자와의 전화 통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 안녕하세요, 발령일이 대충 정해진 것 같은데 면접 보라는 말이 없어서요.

- 면접 꼭 봐야 하나? 우리 전에 봤잖아요. 선생님 어디 근무하고 싶어요? 일 잘해요?

- (당황함) 일이요?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면에서 센스 있는 편입니다.

- 그래요? 그럼 뭐 본부에서 일하면 되겠네. 내려와서 봅시다.

왠지 기싸움에 말린 것 같았지만 인사담당자의 기세에 밀리고 싶지 않아 당돌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본부? 본청 같은 데인가?


나의 첫 발령지는 본부가 아닌 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였다. 초등학교 근무 경력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린 이야기로는 전입직원 중에 대학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난(나의 전입 면접 동기들처럼) 사례가 있어 적응하기 쉬운 곳으로 첫 발령을 냈다고 한다. 그러니까 본부는 적응 하기 어려운 곳이란 말도 된다. 나에게는 맞춤형 인사였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나는 그곳에서 온갖 사랑과 총애를 받으며(글을 읽는 그대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정말 그랬다.) 1년 가까이 근무를 했다. 나의 업무는 교원인사와 국고지원금 관리였다. 나이스(NEICE)는 서울에서 사용했던 프로그램이니 업무는 처음이라도 낯설지 않았고 국고지원금은 디브레인이라는 기획재정부 이하 전체 국가기관에서 사용하는 회계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달에 교원 인건비 포함 몇 억씩을 지출해야 하니 손이 떨리긴 했지만 할 만했다. 나머지는 에듀파인 시스템. 이건 뭐 서울에서 맨날 하던 건데. 적응 101%완료. (지금은 나이스랑 에듀파인이 싹 다 바뀌었다고 들었다.) '육지것'이 와서 나름 싹싹하고 일도 차질 없이 하는 게 마음에 드셨는지 실장님(서울에서 고등학교 실장님은 5급, 사무관이었는데 여기는 6급 주사이다) 이 '금방 본부 가겠구나' 하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가졌고 출산 전 날까지 출근을 했다.


 두 번째 근무지는 교육대학이었다. 내가 맡은 업무는 학사와 교육과정이었는데 집과 가까워 나에게는 무조건이었던 이 자리가 내 차지가 되기까지 나만 몰랐던 비하인드가 숨어 있는 것을 오래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내 전전전임자는 이 업무를 하면서 온갖 민원에 시달리다 인사 고충을 신청해서 다른 곳으로 갔고 전전임자는 명예퇴직을 신청했으며 직전임자도 하지 못하겠다고 슬쩍 옆 자리로 옮겨간 것이다. 교육대학은 대학교임에도 고등학교처럼 수업 시간표가 짜인다. 수강신청은 요식행위일 뿐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사항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는 학생들이 교원자격증을 얻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학점들이 있는 데다 2학년부터 4학년까지 총 4번의 교생실습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생실습동안에 발생하게 될 수업의 공백이나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교과목들이 엄청 많기 때문에 각자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 학교 차원에서 관리를 해 주는 것이다. 진주교대였던 것 같은데(2년이 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한 곳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교대의 상황은 비슷했고 학생들이 수긍함과 동시에 자율권 침해라며 엄청난 민원을 제기하는 부분이라서 업무를 맡은 동안에도 실제로  한 학기에도 2건 이상씩 국민신문고가 접수되어 답변을 했었다.


이 문제의 시간표를 짜는 일이 바로 나의 주된 업무였다. 엑셀로 시간표 양식을 만들어서 출력한 다음 퍼즐을 맞추듯이 전공별로, 학년별로,  반별로, 교수님 별로, 강의실 별로 겹치지 않게 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12 전공(윤리,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체육, 음악, 미술, 실과, 영어, 교육학, 컴퓨터, 와 이거 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거지?)의 조교선생님들이 교수님들의 시간을 조율해주기는 하지만 시간과 정성(눈알이 빠질 정도로 꼼꼼하게 봐야함)이 필요한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시간표만 잘 편성이 되면 한 학기가 순조로울 정도이다. 2년 가까이, 4번의 시간표를 편성하는 동안 다행히 큰 문제도 없었고  잠 못 들 정도로 까다로운 민원도 없었다. 나의 행운은 진행형이었다. 사무실의 막내로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었고 인정까지 받고 있었는데 문제는 근평이었다. 내가 아무리 티 나게 일을 잘하고 있을지언정 '이곳'에 한정된 것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를 낳고 복직을 했으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6개월마다 받아 드는 성적표는 계속 같은 자리였다. 꼴찌. 함께 근무하는 실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 본부 가야지. 애기가 몇 살이지?

- 아직 애기예요. 이제 올해 네 살 돼요.

- 네 살이면 다 컸네. 본부 가야지.

- 안돼요. 저 여기서 3년 다 채울 거예요. 승진은 뭐 포기했어요.

 그 사이 문제의 2020년 초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는 상황에 재택근무와 출근을 번갈아 가며 출근할 때는 아이를 시부모님 댁에 맡기면서 근근이 코로나가 끝나기를 바라던 때인데 농사일에 바쁘신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기지 못해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4월 초 어느 날에 동료한테서 전화가 왔다.

- 어머, 어떡해! 발령 났어! 본부로!

- 네에?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 학교 와야 할 것 같아. 본부로 발령 났어, 다음 주 월요일부터.


Tip.
설명을 조금 보태자면 근무했던 교육대학은 전국의 교육대학 중 유일하게 4년제 국립대학의 단과대학으로 흡수되어 일반 단과대학과 다름없지만 교육대학의 특수성이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어 졸업이나 학사일정 같은 큰 틀을 제외하고 수업, 교생실습 등 독자적으로 학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화를 받은 날이 수요일이었으니 인계인수를 하더라도 이틀밖에 시간이 없었다. 무슨 인사발령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든 갑자기 이렇게 난단 말인가! 지금 애가 어린이집에도 못 가고 있는데 본부? 당장이라도 인사팀에 다다다다 퍼붓고 싶었는데 실장님한테서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다. 군말 말고 가서 잘하라고. 실장님께서 보시기에는 열심히 하는 직원인데 근평이 계속 꼴찌를 하는 게 적잖이 마음이 무거우셨던가보다. 이것도 나중에 안 일이지만 데리고 있는 직원에 대해 본부에 엄청 어필을 하셨던 것 같다.(왜 이렇게 나는 나중에 알게 되는 일이 많은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그래 이제 나도 승진을 해야지.' 와 '그래도 아직 아이가 어린데. 아이가 중요하지 승진이야 어차피 늦었는데.' 하지만 내 마음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발령은 당장 코 앞 이었고 이틀 뒤부터는 본부로 출근이다. 나를 인정해준 실장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도 했다.


본부 중에서도 사무국. 같은 과로 발령받은 7급 선배님은 승진 순위가 1등이라서 곧 6급 승진을 목전에 두고 계신 남자분이었다. 첫 출근을 하던 날 발령 동기로서 '사무국에 온 걸 축하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고도 했고 너도 승진해야지 하는 말이 덧붙었다. 올 수 없을 것 같은 네가 본부에 온 것을 행운으로 알라는 소리처럼 들렸고, 본부에 있어야만 승진이 가능하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런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다. '본부에 입성 한 거 축하해.'  입성은 무엇이며 축하는 웬말인가. 반항심과 반발심이 동시에 올라왔다. 그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지금은 안다, 알기만 할 뿐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찌 됐든 대학 본부라는 정글에 던져졌고 생존해야했다.


*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브린모어대학교 



이전 07화 현실과 이상의 갭(gap) 차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