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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Dec 02. 2021

우리집에 퇴사한 남편이 산다(1)

퇴사. 요즘 회사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지 '파이어족'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여기도 퇴사자, 저기도 퇴사자. 젊은 퇴사자들이 늘어났고 브런치에도 퇴사 이야기가 꽤 많이 눈에 띈다. 다들 뭐 먹고살지? 주식이나 재테크로 큰돈을 벌어 회사를 떠나는 이, 유튜브 같이 1인 크리에이터가 되어 회사를 떠나는 이,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을 찾아 떠나는 이,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하기 위해 떠나는 이, 회사에서 상처만 가득 안고 떠나는 이. 저마다의 이유로 사람들은 퇴사를 한다. 그렇게 그(그녀)가 떠난 자리에 나(우리)는 남았다.


1. 의원면직

본인의 의사에 의해 자발적으로 퇴직하는 의원면직이야말로 월급쟁이 개인적으로 월급쟁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사치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실현 가능하지 않다. 돈이 필요하다.

 

2. 정년퇴직

한 회사에 20-30년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회사에서 정년을 맞이하는 일도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강사로 일하던 때에는 3년 정도의 주기로 더 좋은 학원으로 거처를 옮겼으므로 정년퇴직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지금은 20년 뒤에나 일어날 일이라 까마득하다.


3. 명예퇴직

55세쯤 명예퇴직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하고 있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자립을 하도록 교육을 꾸준히 할 예정이다.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 나는 회사를 졸업하는 거다. 요즘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에서 졸혼을 많이 한다는데 직업을 졸업한다고 하면 말 그대로 '졸업'이 된다.


최근에 김다현 작가의 <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 책을 읽었다. TV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와 해맑게 웃던 작가를 책 보다 먼저 보았었다. 편안해 보였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은 저렇게도 안온한 거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책에는 퇴사의 여정이 티브이에서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었는데 '아, 나는 이렇게 꼼꼼하지 못해 퇴사를 못하겠구나.' 스스로 설득당할 정도로 시간을 들여 천천히, 꾸준히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획자로서 갈고닦은 기량이 퇴사를 위한 기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아이러니라니. 그렇게 필요한 은퇴자금이 5억. 그런데 돈 보다도, 마흔의 은퇴보다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부부의 대화였다. 함께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서로 존중할 줄 아는 부부의 모습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마음이 가는 부분이었다.


우리 집에도 퇴사자가 있다. 그는 마흔보다도 5년이나 젊은 서른다섯의 나이에 퇴사를 했다. 바로 나의 남편이다. 남편은 금융업에 몸 담고 있었는데 퇴사를 했던 작년은 그가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을 했고 근속한 지 만 5년이 되던 해였다. 회사에서는 인정받는 직원이었고 필요한 인재였던 것 같다.(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말을 믿기도 한다) 물 흐르듯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대로 두었더라면 그는 지금도 회사에 온 몸 바쳐 일을 하고 있을 테다.


남편은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미련한 사람이다. 그의 회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부당한 처사에 부르르 떨며 잠을 못 자는 사람은 나일뿐, 그는 회사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당신은 편한 데서 일하는 거라고, 공무원 같은 조직이 어디 있냐면서 사기업에 다녔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말도 종종 덧붙였었다. 총무과에서 업무를 할 때는 기관장을 모시는 운전직이 따로 없어 수행비서 노릇까지 해야 했는데 고유업무는 따로 있다 보니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이 일상이었다. 그가 결혼도 하지 않은 미혼의 남자였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상황이지만 결혼한, 어린 아기가 있는 남자라면 문제가 된다.


친정부모님은 육지에 계시고 시부모님과는 아직 어색한 사이었다. 더구나 시부모님께서는 농사를 짓고 계시니 늘 바쁘셨다. 나는 지독히도 혼자여서 외로웠고, 서투른 엄마여서 매일이 고달팠다. 남편에게 육아를 함께 할 수 없다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말했었지만 아내로서 내가 던지는 말의 무게와 가장으로서 그가 느끼는 부담감의 무게는 달랐다. 쉽게 꺼낸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진심이었지만 진심만으로 먹고살 길이 열리는 건 아니었음을 그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는 묵묵히 또 여전히 아침이 되면 출근을 했고 늦은 밤에 퇴근을 했다. 직장인으로서 그가 회사에서 인정받는 동안 남편이자 아빠인 그는 가정에서 부재중이었다. 부부 사이는 흔들렸고, 남편은 몸이 고장 나는 중이었으며 나는 마음이 병드는 중이었다.


우리 집에 퇴사한 남편이 산다(2)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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