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에서 살아남기(2)
사무국 재정과 등록금 및 세입 업무가 '본부 입성' 후 내게 주어진 자리였다. 세입이라고? 서울시교육청 소속 첫 발령지였던 초등학교에서도 세입 업무를 했었다. 학교 행정실 근무자들에게 죽음의 달로 불리는 2월(학교 예산과 결산업무 시즌)에도 초과근무 한 번도 없이 일찌감치 마감 치고 정시 퇴근했던 자부심이 아직 남아있지만 지금의 내가 맡을 업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당황스러운 마음이었다. 업무의 귀천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세입 업무로 말할 것 같으면 학교 행정실에서도 주로 신입이나 전입직원의 첫 업무로 사무실 내 말석 자리임이 암묵적으로 동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에 나 포함 4명의 8급이 있었지만 경력은 내가 제일 많았고 이 대학에도 내가 제일 먼저 왔다. 강임을 했다가 다시 8급으로 승진한 시기도 그들보다 빨랐고 휴직이 있었다지만 1년이 채 안 되는, 경력으로 산입 되는 기간이었는데 세입이라니, 등록금이라니! 가혹한 현실은 또 있었다. 우리 과에만 8급이 4명인데 옆에 과에도 3명의 8급이 더 있었다. 승진 최저연수 2년이 지나서 승진후보자 명부 안에 포함될 전체 8급 직원이 9명인데 그중 7명이 사무국에 포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 본부 경력이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외곽지'에서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무의미해졌다. 신규자의 마음으로 '무'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임을 실감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길은 가시밭길이요, 그 길 끝에서 마주하는 될 것은 아마도 상처뿐이겠지만 시간은 또 흐르고 상처는 아물고 새 살이 날 것이었다.
tip
성과평가 시 부서 내 같은 직급이 둘 이상 있는 경우 등수를 매긴다. 두 개 이상의 과가 한 처나 국 아래 있는 경우 보통은 과에서 등수를 매기고 다시 처(국) 단위로 등수를 매긴 후 마지막으로 대학 전체 등수가 결정된다. 보통 근무 경력이 많은 사람이 좀 더 힘든 업무를 맡으므로 더 높은 등수를 받게 되지만 부서 내 동일직급이 4명 이상이 있다면 등급을 필수적으로 매기게 되어 있는데 속한 부서에서 B등급을 받으면 다른 부서의 1,2등을 절대 이길 없다. 예를 들면 A처에 8급 1명, B처에 3명이 있다면 B처는 3명의 등수를 매겨야만 하고 이때 3등을 받은 사람은 A처의 1명(1등)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업무가 더 어렵고 경력이 더 많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느닷없는 발령이 있던 때는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쯤이었다. 대학은 학생들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개강을 2주 연기했지만 더는 미룰 수 없어 미흡한 준비 속에서 비대면 수업을 시작하였다.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지만 학교는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코로나 시국에도 공문은 계속 시달되었고 업무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아니 더 바빴다. 하지만 그건 나의 사정이었고 대학생 자녀들이 등록금을 내고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부모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연일 확진자 수를 경신하는 것도, 11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것도, 전국 대학 중 최저 등록금을 받고 있는 것도 모두 남의 사정일 뿐 학부모들은 가슴에 화를 품은 채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는데 등록금은 왜 받는 것이냐부터 이것도(온라인 수업)도 수업이냐며 돈을 받냐, 학교는 언제부터 가는 것이냐, 너네가 그러고도 공무원이냐, 너네 월급 내가 낸 세금으로 받는 것 아니냐.'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로 울분을 토했고 그럴 때마다 죄인이 되었다. '그럼요 어머님(아버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수업이 진행 중에 있고 학생들이 섣불리 수업에 나왔다가 감염이 될 수 있으니 우선은 안전한 환경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인 듯합니다. 저희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고 아직 위에서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랬다, 위에서도 분명 뭔가를 하고 있었겠으나 말단 사원인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것이 없었기에 날마다 총알받이가 되어 전열 맨 앞줄에서 모든 총알을 다 맞아야 했다. 더 무서운 건 그렇게 오늘의 총알을 다 맞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은 또 새로운 총알들이 날아든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바주카포가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 예고도 없이 시작된 욕설에 나는 얼음이 되었다. 서른아홉 해를 살면서 그런 욕은 처음이라서 나중에는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멍한 상태였다. 머리가 하얘진 만큼 적절한 응대는 사실상 불가능했으므로 민원인이 쏟아내는 감정 쓰레기들을 꾸역꾸역 받아먹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눈물로 토해낸 적도 있었다. "내가 왜 미친년이야! 내가 왜 이렇게 욕을 먹어야 돼!!!" 안갯속을 걷듯 모호한 날들이었고 고구마를 200개 정도 먹은 듯 답답한 날들이었다.
저 위에서 조차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가 이렇게 장기적으로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명확한 업무지침은커녕 등교를 한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했다가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뉴스를 통해 자주 노출되었다. 불안한 마음의 화살은 1차적으로 학교로 향했고 학교 구성원 중 교수나 다른 누구도 아닌 교육행정 공무원들에게였다. 계속되는 원격수업으로 인해 '등록금을 환불'하라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요구가 이해는 되었지만 그런 결정권 0.1도 없이 등록금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나는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고 아직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엄마가 꼭 필요한 순간을 위해 남겨둔 시간을 업무로부터 도망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전국거점국립대학의 등록금 업무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단톡방을 개설하자 제안했고(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속담은 진실로 판명됨) 실시간으로 각 대학의 상황을 공유하기로 했다. 등록금 환불에 관련된 학교의 정책 결정 사항이 있는지 전년 대비 세입 현황은 어떤지에 대한 답을 하루가 멀다하고 요구하는 국회의원들의 요구자료나 국민신문고의 답변들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대학 내에서는 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서 막막했는데 10명의 동지가 생긴 것 같았다. 대학의 상황들이 저마다 다른 까닭에 충분한 연대는 아니었다. 어떤 대학은 교직원이 모금을 해서 장학금으로 편성하려고 한다고도 했지만 대부분은 위에서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대기 중이었다.
(수업 담당 주무관님의 노고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수업을 대면으로 할지 말지에 대한 권한이 '전적으로 없는' 학사과 담당자의 전화기도 내 전화기 못지않게 벨이 울리지 않는 1분 1초가 없을 지경이었다.)
등록금 운영에 있어 대학에 자율성이 부여된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학내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매 년 등록금을 책정하고 있지만, 11년째(이제 12년째) 동결인 이유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심리적인 반발뿐만 아니라 국가장학금 정책 등이 맞물려 등록금이 인상된 학교에 불이익(국가장학금 및 국고지원금 축소 등)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상위 기관에서 등록금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등록금을 환불하는 근거에 대해서도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전염병에 의한 온라인 수업에 따른 학생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사유로는 등록금 환불이 불가능했다. 공무원들은 입법부에서 마련한 법령에 의거해 정책들을 집행하는 사람들일 뿐 근거 없는 재량 행위는 불법을 저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부분이 민원인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동의도 하지만 법을 지킬 때 얻어지는 질서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 야기되는 혼란에 비해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기에 현재와 같은 사회적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여전한 혼란 속에서 봄과 여름 두 계절이 지나고 있었고 2020학년도 제1학기가 마무리되었다. 2학기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관련 근거가 없는 등록금 환불 대신 '특별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와꾸'가 잡혔다. 대상은 1학기에 등록금을 낸 학생들이었고 실제 납부금액의 11%로 장학금 지급액이 결정되었다. 한 학기 동안 지지부진했던 일이 한 번 급물살을 타니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다행이면서도 '조금 더 일찍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더라면 어땠을까?'하고 아쉽기도 했다.
tip. 대학 등록금 환불 규정
- 대학등록금에 관한 규칙 제6조
1. 법령에 따라 입학(재입학 및 편입학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을 할 수 없거나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
2. 입학허가를 받은 자가 입학 포기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
3. 재학 중인 자가 자퇴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
3의 2. 휴학 중인 자가 복학하지 않아 제적(除籍)된 경우
4. 본인의 질병ㆍ사망 또는 천재지변이나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해당 학교에 입학을 하지 않게 되거나 학업을 계속하지 않게 된 경우
5. 등록금을 납부한 후 휴학한 경우
대학 정문을 벗어나는 순간 나도 민원인이 된다. 국민으로서 세금을 내고 나랏돈을 받는 탓에 소득을 1원도 숨길 수가 없어 연말정산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우리 엄마 아빠의 딸이고, 내 남편의 아내이자, 소중한 내 아이의 엄마인 평범한 사람인데 출근만 하면 온 국민이 날 선 눈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공무원이 된다. 공무원이 견뎌야 할 무게라고 하기엔 너무 버거울 때가 많다. 대학에 나처럼 전입을 온 직원들 중에서 일반행정직렬에서 넘어온 분들이 있다. 그들이 대학으로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악성)민원인들에 대한 시달림이었다고 한다. 전입 온 지 이제 6개월 정도 되어가는 동료 공무원은 이곳이 너무 평화롭다고도 했다. 실제로 그 동료가 보여준 동영상은 상담을 해주는 공무원의 뺨을 치고 이를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있던 다른 공무원을 밀치고 때리는 바람에 엉망이 된 비명과 흔들림으로 끝났다. 대학 내에도 다양한 구성원들이 존재하는 만큼 민원의 색깔도 다양하다. 아마 내가 경험한 민원에 대한 강도는 동료가 경험했던 민원에 비하면 순한 맛인지도 모르겠다. 특별장학금 지급으로 코로나19로 인한 등록금 환불 사태가 일단락 지어질 무렵 학내 인사이동의 영향으로 우리 부서에서도 인사발령이 있었고 다른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지금은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는 일에서 조금 비껴 나있지만 민원인은 언제라도 나에게 애증의 관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면서 나를 두렵게 만드는 존재라는 점은 분명하다.
* 이미지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