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친해질 수 있을까?
<비행기 탑승함>
<청주도착>
<버스탐>
<천안~>
<버스출발>
제주에 머물던 아빠 엄마기 본가로 떠났다. 엄마는 최종 목적지인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여정을 알려왔다. 걱정하고 있을 딸에게.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게 하려 문자로. 나는 일하면서 오키욤! 알겠숑~ 간단히 답했다. 보름이면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결혼 후 제주에 사는 딸이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데 있어 ‘충분한’ 시간이란 없다. 헤어짐은 늘 아쉽고 부모님이 연로해질수록 애틋하다. 붙어있을 때에는 끊임없이 엄마와 크고 작은 갈등으로 충돌하지만 그건 모녀의 숙명일지니. 여력이 된다면 제주에 작은 집을 마련해 두 분을 모시고 싶다. 반드시 로또 1등이 되어야 하는 이유랄까.
1년이면 두어 번 엄마가 다녀가신다. 보통 육아공백을 채워주기 위해서인데 겨울에만 아빠가 동행한다. 나무를 캐는 일을 하는 아빠에게 겨울은 휴식기라서 모처럼 길게 시간을 낼 수 있다. 좀 더 진솔하게 이야기해 보면 엄마 입장에서는 아빠를 데리고 오는 게 귀찮지만 집에 혼자 두고 와서 불안한 것보다 낫다는 입장이다. 이해가 간다.
아빠는 잔정이 없고 눈치가 없다.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이다. 아빠가 엄마에게 좋은 남편은 아니었지만 내겐 더없이 좋은 아빠였다는 반전 같은 건 없다. 어려서부터 아빠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아빠 손 잡고 입장하기 싫어서 결혼 자체를 하지 않으리라던 내가(요즘은 신부입장 문화가 많이 달라졌지만) 결국 아빠와 버진로드를 걷게 된 때를 기점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내가 첫째 아기를 낳은 이후, 아빠에게서 손주에 대한 애정이 발현될 줄이야! 손녀딸까지 태어난 지금은 아빠가 원래부터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빠는 내 아이들 앞에만 서면 살면서 본 적 없던 환하고 무해하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웃는다. 온 얼굴 표정과 마음을 다해 소리 내어 웃는다. 아이들에게 장난을 걸고 아이 손을 잡고 놀이터에, 마트에 간다. 나는 한 번도 베고 누워본 적 없는 아빠의 팔에, 배에, 다리에 스스럼없이 누워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두 눈이 뜨거워지곤 한다.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나는 그저 순간을 붙잡아두려는 사람처럼 부지런히 사진만 찍어댄다.
이번 겨울엔 아빠 엄마를 모시고 아쿠아리움에 갔다. 엄마랑 달리 나의 상견례를 위한 제주행 비행기가 아빠의 첫 여행이었고, 그 뒤로도 해마다 제주에 오는 게 아빠의 유일한 여행이라서 겨울이 되면 아빠를 모시고 어디를 갈지가 내겐 큰 숙제이다. 아쿠아리움에 가기로 한 건 두 살 아기에게 구경시켜준다는 핑계였지만 일흔의 아빠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빠는 예상대로 매표소 앞에서 어른 1명 당 4만 원이 넘는 티켓가격을 보더니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도민할인 50% 할인 행사 중이고 도민이 아닌 부모님 티켓은 카드 행사로 30% 할인이 되니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설득해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나는 처음 와 본 아쿠아리움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연신 우와! 를 외치는 아기보다도 자꾸 아빠의 표정을 살피게 되었는데 아빠는 물고기는 안 보고 물고기를 보는 내 아기만 따라다니며 웃었다.
아빠의 새로운 경험만큼 엄마도 생소한 일을 겪고 있다. 바로 우리 집 둘째 아이의 거리두기. 엄마는 타고난 인싸력 덕분에 첫째 아이는 물론이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본인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데 요 두 살배기 꼬맹이가 따르지 않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래 손녀들은 할머니보다 할아버지 더 좋아한다고 이해하다가도 “날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건 니가 처음이여.”라면서 손녀딸과 자주 대치한다. 할머니가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 마음은 아랑곳없이 ‘함머니’는 뭐든 다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니 ‘하부지’가 똥꼬 씻겨서 기저귀도 갈고 옷도 입히고 양말을 신긴다. 외출할 땐 양손에 신발 한 짝씩 나눠 들고 ‘하부지’ 무릎에 탁 앉는다. 신발도 ‘하부지’ 몫이란 소리다. “아이고, 하부지 힘든디! 함머니헌티 가지 왜 또 이리오구그려.” 아기 신발을 신기는 아빠 표정이 싱글벙글이다. 기세등등한 것도 같다. 아빠는 손주 넷 중 첫 손녀딸을 만나면서 또 이렇게 난생처음 해 본 일이 생겼다.
부모님이 본가로 가기 이틀 전 주말에는 이른 파티를 했다. 아빠 생일이 2주나 남았지만 아빠 진짜 생일엔 아마도 함께 하지 못할 것이기에 서운하지 않도록 맛있는(=비싼) 케이크를 예약하고 호텔 뷔페를 다녀왔다. 아빠는 역시나 집에서 해 먹으면 되는데 뭐하러 비싼 밥을 먹냐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도민할인 20%를 받을 수 있고 이미 예약을 해서 취소할 수 없다고 설득해야 했다. 동화에 나올 법한 숲길을 지나 호수 위에 펼쳐진 그림 같은 호텔 야경에 아빠는 놀라는 눈치였다. 육회, 전복구이 등 입맛에 맞는 음식들도 흡족해하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녀. 한 번씩 올 만 하구먼. ” 고맙다, 덕분에 맛있게 먹었다, 같은 말은 일절 할 줄 모르는 멋없는 아빠가 이 정도 말했으면 최고 좋은 칭찬이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존에 가서 놀아준 덕분에 남은 가족들이 느긋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상하다. 아빠와 나눈 즐거운 추억이라고는 파편조차 가진 게 없는데 그래서 나는 분명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데 할아버지로서의 아빠를 지켜보는 건 정말이지, 좋다. 내게 자상한 아빠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다정한 할아버지여서 고맙고 감사하다. 이런 말을 입 밖으로 소리 내서 해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나도 참 아빠 딸이 맞나 보다. 말로 전하지 못하는 진심이라면 지갑이라도 열어 보여야겠다. 아빠의 많은 처음들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해외여행이 화룡점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권을 만들어두라고 했더니 순순히 알겠다고 했다. 아빠가 처음으로 거절하지 않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