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모든 순간, 너의 모든 말들
남의 집 아이는 빨리 큰다는데 나는 내가 키우는 내 새끼만 빨리 크는 기분이 든다. 올해 초만 해도 아기 티가 팍팍 나더니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올 겨울 들어서며 앞 아랫니가 빠졌고, 내년에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간다. 아침마다 어린이집 등원 길에 가방을 메고 쫄래쫄래 걷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뭉클하기까지하다. '언제 이렇게 다 컸지?' 다들 겪는 일인데 무슨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첫 아이고, 하나뿐인 아이이다 보니 눈에 낀 콩깍지가 아직도 한창이다. 뭘 해도 예쁜데 말은 더 예쁘게 한다. 아이의 말들을 잊어버지리 않으려고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몇 문장을 꺼내어 본다.
아이는 전생에 꿀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꿀보다 달콤한 고백을, 남편한테도 들어보지 못한 절절한 고백을 아이와 함께 침대에서 만화를 보다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작년 12월이니 벌써 1년 전 일이다. 영상으로 남길 찰나도 없이 와락 품에 안기며 '엄마 사랑해서 죽을 것 같다'고 아이가 말했다. 죽음이 무슨 뜻인지 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아는 말들로 제 마음을 전해주자, 와락 눈물이 났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작고 퉁퉁한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쓱 닦아주기도 하였다. 슬플 때만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행복할 때도 눈물이 나는 거라고 내가 말했다. 이토록 작은 존재가 이렇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의 이치로는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아이는 그야말로 선물이며 기적이다.
남편과 아이의 머리를 자르는 것은 한 달에 한 번씩 치르는 중요한 의례이다. 머리가 자라 삐죽삐죽하고 덥수룩해지면 관리 안 하는 아내, 신경 안 쓰는 엄마가 되는 기분이 든다. 봄의 시작을 벚꽃이 먼저 알려주던 날 오후에 여느 때와 같이 머리를 자르고 벚꽃 명소로 드라이브를 갔다. 팝콘처럼 새하얗게 핀 벚꽃잎을 보며 아이에게 물었다,
- 서율이 오늘 기분은 어때? 행복해?
- 응, 행복해
- 서율이는 행복하다는 게 어떤 마음인 것 같아?
- 소중한 마음인 것 같아.
- 서율아, 사랑해.
- 나도 엄마 사랑해.
- 서율인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때?
- 마음이 편안해, 따뜻해져.
꽃샘추위에 아직 웅크리고 있을 꽃망울까지 피어낼, 오래도록 이 봄을 떠오르게 해 줄 햇살 같은 말이었다. 우리 집에 꼬마 시인이 산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며 무심코 "잘 가!" 하고 뒤돌아 나왔더니 아이가 쪼르르 따라 나오며 다급히 나를 불렀다.
- 엄마, 잘 가,라고 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해야지!
- 응. 잘 다녀와!
하고 고쳐 말하곤 아이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원하는 아이를 픽업해서 차에 태우고 집에 오는 길에 아이가 아침의 일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 엄마, 그거 알아? 잘 가, 라는 건 다시 못 만날 때 하는 말이고 우리는 금방 다시 만날 거니까 잘 다녀오라고 해야지. 아침에 잘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
'어떻게 해', 와 '어떻게 하겠어'가 말 그대로 어떻게 다른지 어미의 차이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잘 가'와 '잘 다녀와'의 미세한 의미 차이를 나에게 설명해 준다. 네, 네, 알겠습니다. 꼬마 교수님이 따로 없다.
오래도록 하고 싶었던 히피펌을 했을 때의 일화도 있다. 겨울이 되니 축 처진 머리가 사람을 더 초라하고 가라앉게 만드는 것 같아 내린 특단의 조치였는데 나름 공무원 같지 않고 '방구석 작가' 같다는 '칭찬인 듯 칭찬 아닌 칭찬 같은'말을 들었다. 무려 오후 조퇴를 하고 남편과 아이, 나 셋이서 미용실에 갔다가 남편과 아이는 머리카락을 자르기만 하면 되니 일찍 끝나서 집으로 갔고 나는 펌을 했다. 아이돌 가수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집으로 들어오며 야심 차게 "짜잔!" 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 이게 당신이 하고 싶었던 거 맞아?
- 응, 펌이 완전 잘 나왔어!
......남편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을 때 방에서 티브이를 보던 아이가
- 우와!
방문을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감탄사를 내뱉더니
- 엄마, 정말 예쁘다. 공주님 같아. 엄마, 그거 알지. 공주님들은 다 머리가 엄마랑 똑같아. 아빠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고 그래!
남편은 아이의 호통에 대꾸하지 못했고 나는 남편을 째려보았다. 보통, 아빠가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듣고 아이가 따라 하는 게 일반적일 텐데 우리 집은 완전 반대다. 남편은 아무래도 언어의 마술사인 아이에게 말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오은영 박사님이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 즉 아이가 커서 잘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부모들은 매일매일 자식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퍽 인상적이라서 수시로 환기하려고 하는데 사실 잘 안된다. 아이가 하루라도 더 '아기'로, 곁에 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싶다. 엄마가 욕심부리는 걸 아는지 하루가 다르게 '형아'가 되어 가는 아이가 "안아줘~" 하고 응석을 부린다. "이제 형아라서 엄마가 안지 못해!"라고 말하면(실제로도 안지 못한다. 무럭무럭 자란 56개월 아이는 벌써 27킬로그램이다.) 아이는 "아니야! 형아 말고 울애기야!!!" 느낌표를 세 개나 찍으면서 품에 파고든다. 울애기라는 말의 느낌이 좋다는, 엄마 냄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아이를 이길 수 없으니 오늘도 져주는 척 '울애기'라 부르며 품 안에서 놓지 못했다.
아이의 시간은 느려서 자기는 언제 엄마 아빠처럼 어른이 되느냐고 묻고 나의 시간은 빨라서 아이가 천천히 자랐으면 싶은 삶의 줄다리기가 매일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