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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Jan 25. 2022

공무원 세계에서 생존 중입니다

영화 <모가디슈> 속 공무원 이야기

넷플릭스 유료결제를 2월부터는 하지 않기로 했다. 가격 인상도 한다 하고 우리 집의 경우 넷플릭스의 활용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까닭이다. 1월을 끝으로 더 이상 넷플릭스에 있는 콘텐츠들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에 오랜만에 티브이 앞에 앉았다. <모가디슈>가 언제 업로드되었지? 코로나 방역 4단계 와중에도 350만 관객을 끌어모았던, 좋아하는 류승완 감독(그가 연출한 모든 영화를 다 보았다)이 연출하고 조인성 배우(말해 뭐해!)와 구교환 배우(쏘 핫!)가 나오는 바로 그 모가디슈였다.(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 늦는 내가 영화라고 다르지 않아 아직까지 이 화제의 영화를 보지 못한 것이다.) 바로 플레이를 눌렀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재미와 감동이 적절히 어우러져있으며 천재적인 연출력과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가 그야말로 흡력을 쫙 끌어올려' 나는 어느새 모가디슈(실제로는 모로코) 한 복판에서 그들과 함께 전쟁터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대한민국이 UN 가입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1991년 소말리아에 파견 나가 있던 외교부 공무원들이 실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타국의 내전 중에 훈련받은 군인도 아닌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을 것이며 두려웠을지 상상조차 겁이 났다. 그래도 남과 북의 이념을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화합하여 함께 탈출에 성공했다는 역사적 진실 앞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외교부 소속 공무원은 아니지만 넓은 범주 안에서 같은 나랏밥을 먹고 있다는 동질감 혹은 동지애가 조금 느껴진 것도 같다. 또한 영화 속에서 표현된 공무원의 세계가 퍽 애잔하기도 했다. 총과 폭탄이 난무하지 않을 뿐 우리가 사는 현실도 매일이 치열한 전쟁터가 아니던가! 나는 어떻게 이 <모가디슈>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1. 강도를 만나 차가 퍼지면 뛰어서라도 간다.

영화 초반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한대사 일행이 소말리아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한국에서 공수한 선물들을 싣고 가다가 무장강도를 만나게 되는 것인데(남한의 외교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측의 소행이었다.) 한대사와 공서기관은 안위를 살필 여유도 없이 대통령 궁까지 뛰어서 간다. 어렵게 잡은 일정을 허망하게 놓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고지식하고 미련하게 보일 수 있지만 대다수의 공무원들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자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 중요한 업무의 마감일에는 아픈 아이를 다른 손에 맡기고 출근하고, 태풍이 온다고 하면 가정은 못 지켜도 회사에서 비상대기를 한다. 얼마 전 평택 화재사건에서 순직하신 소방관님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공무원의 책임감과 사명감은 대부분의 순간에 월급보다 더 큰 동기를 부여하곤 한다.


2. 발령이 나야 움직이지.

소말리아 수도에서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내전으로 번질 위시에 처하자 한 대사는 아내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함께 가자는 아내에게

나 이 자리까지 오는데 28년 걸렸어.

라고 말한다. UN 가입이라는 성과도 없이 귀임 한 달을 앞두고 빈 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무엇보다 발령이 나지 않았잖은가! 어디 부서로 갈지, 어떤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될지 몇 글자 적혀 있지도 않은 종이 한 장에 공무원들의 거처가 결정된다. 발령이 나야 움직일 수 있다며 당신은 공무원 가족이지 공무원은 아니니 먼저 떠나라는 한 대사의 말이 어쩐지 짠하게 마음을 울렸다.


3. 쏴 봐!

수직에서 수평으로 조직문화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공무원 사회에서는 여전히 상명하복, Top-Down 의사 결정 방식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무조건 상사의 명령에 예스!로 응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사들이 경험도 풍부하고 많이 아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바로 지금' 내 업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이다. 또 그래야만 한다. 상사와 의견이 갈렸을 때, 그리고 상사의 의견이 그릇된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과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확신에 찬 주장만으로는 상사를 이길 수 없다. 명백한 관련 근거 앞에 서야 상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이다.


4. 플랜 B를 준비하라.

 [추진 배경 - 현황 및 문제점 - 해결 방안 - 추진 일정]

공무원들에게 보고서 작성은 피할  없는 칼날이자 쥐고 있어야  칼자루와 같다.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날은 반드시 오고 매력적인 보고서 작성은  능력치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대안을 생각지 않은 문제 제기는 회의 시간만 늘려 에너지 소비를 가속화한다. 최선의 선택을   있도록 최악을 제외한 차선과 차악까지 플랜 B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집트가  되면 이탈리아, 모두  같이 가는 것이 최선이지만 모두가지 못하는 최악만 아니라면 ' 사람은 사는' 차선 혹은 차악 같은 선택지들 말이다.


5. 지금부터 우리의 목표는 생존이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뚜렷한 목표를 제시해 주는 리더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못해 간절하다. 더불어 리더의 말을 믿고 묵묵히 따라줄 팀원들의 백업(뒷받침)도 중요하다. 자동차를 생각해보자. 핸들, 바퀴, 모터 등 각기 맡은 바 자기 임무에 충실하면 굴러는 갈 것이다. 그러나 방향을 잘 아는 운전사가 있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반대로 운전사가 아무리 베테랑이어도 바퀴가 혹은 핸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나의 기량을 부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 전체의 조화가 무너질 수도 있다. 조직생활에서는 중심잡기와 어우러짐의 미학이 발휘되어야 한다.


6. 조력자가 있나요?

업무를 하다 보면 부서 간 협업 및 협력을 요할 때가 있다. 내 업무에 요긴하게 쓰일 자료를 다른 과에서 보유 중이거나 여러 부서의 데이터를 모아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을 이루어야 할 때 특히 그렇다. 업무상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 당연한 일이란 없다. 특히 내가 우물을 파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메일보다는 전화가, 전화보다는 직접 찾아가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물론 손에는 노트와 펜뿐입니다) 안 되는 걸 되게 할 수는 없지만 어려운 일을 조금 덜 어렵게 만들고 때때로 조금 쉽게 만드는 것까지는 가능하다. 희생은 있었지만 남과 북의 대사 일행들이 무사히 모가디슈를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도 이탈리아의 도움 덕분이었다. 동료들을 오며 가며 마주칠 때마다 웃는 얼굴로 "안녕하세요" 하며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면 어느새 주변에 조력자로 가득할 것이다.


7. 결국엔 우리

영화 곳곳에 결코 녹록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을 했을 것이 뻔한 장면들이 한 눈에 보였다. 자금도 여전히 내전으로 여행금지 국가인 소말리아 대신 모로코에서 수 개월 동안 동고동락하며 영화 촬영을 함께 한 배우들의 사진이 마치 가족사진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힘든 시간동안 일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나누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은 어디서나 비슷한 강도의 스트레스를 준다. 결국은 사람이다. 힘들고 기운 없을 때 옆 동료가 건네주는 초코바 하나에 불끈 힘이 솟고 지나가며 힘내!라는 응원 한 마디에 툭툭 털고 일어날 기운이 생기곤 한다. 같은 과에 근무하다가 6급 팀장으로 승진하고 부서 이동을 한 미녀 삼총사의 1번 미녀는 종종 "그때 샘들 없었으면 도망치고 싶었을 것 같아. 그나마 같이 커피 마시고, 점심 먹으며 수다 떨고 했으니 버텼지." 말하곤 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월화수목금요병'에 걸리게 할 만큼 마음에 돌덩이를 얹어주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납덩이마저 솜사탕으로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는 연금술사 같은 동료도 분명히 있다. 내 진심을 의지할 동료를 발견했다면 과감히 손을 먼저 내밀어 보자. 매몰차게 뿌리치는 대신 기꺼이 자신의 온도를 내어줄 것이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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