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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Jan 16. 2022

‘월화수목금요병’에 걸렸다

그래도, 출근

학원 강사를 할 때에는 월요병이 없었다. 오후 3시에 출근하니까 일요일에도 늦은 밤까지 깨어 있었다. '개콘' 끝날 때 '빠바빰!' 밴드의 시그니처 음악이 울리면서 자막이 올라오면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눈물이 난다던 친구의 말에 공감이 부재한 맞장구를 쳤던 것 같다. 일요일 저녁 9시에 방송되어 주말의 끝을 알렸던 <개그콘서트>는 폐지된 지 오래이고, 그 말을 했던 친구는 출퇴근과 멀리 떨어진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월요일이 두려운 건 이제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솔직히는 월요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매일 출근하기가 힘든 나는 아무래도 '월화수목금요병'에 걸린 것 같다.


왜 회사에 가는 게 부담일까? 사실 '일'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다. 일은 훈련과 반복을 위한 일정 시간을 요하며 이후에는 평균 수준까지 처리가 가능하다. 1년의 사이클을 경험하고 나면 그다음 해에는 수월하게 일처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까지도 생긴다. 내가 일을 잘하나? 역시 나야, 하며 어느 날엔가는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어깨도 으쓱하다. 인생이 봄날이고 세상만사가 따뜻한 파스텔 톤이다. 지는 해가 아쉽고 밤이 지나면 얼른 출근해서 나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싶다. 내가 없으면 회사는 누가 이끌어 갈 것인가!


하지만 방심은 금물, 예정에 없던 오류 프로세로 느닷없이 혹한기에 휘말릴 수도 있다. 기안문의 오타를 인지하지 못한 채 문서를 발송한다거나, 출금 계좌를 A가 아니라  B로 설정했다거나, 공과금 납부 마감일을 놓쳤을 수도 있고, 관련 지침을 확인하지 못한 채 관행대로 일을 처리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루 동안 벌어진 날이라면 머리털을 부여잡고 절규를 하기도, 퇴근 후 집에 가서 이불을 발로 차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해 뜨는 게 두렵고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휴전을 종식시킬 전쟁이 일어나야만 할 운명의 대한민국이라면 바로 오늘 밤이 타이밍일 것이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삼한사온처럼 평온한 날과 휘몰아치는 날이 반복되고 사우나도 아닌데 회사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 업무에서 실수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실수하고 싶어서 실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업무에서 발생하는 실수는 대부분 착오에서 기인하며 정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의사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이유이다.) 혹은 돈을 횡령하는 문제(최근 오스템 직원의 횡령사건이 떠오른다.)가 아니라면 행정에서, 특히 대학 행정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중요한 점은 잘못을 발견한 즉시, 인정하고 정정해야 한다. 모른 체 하고 감추는 순간 감당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양말에 난 작은 구멍은 그 즉시 꿰매면 다시 신을 수 있지만 그냥 뒀다간 커다랗게 구멍이 뚫려 결국 버리고 만다. 면이 서지 않음(속된 말로 쪽팔림이라고 한다)은 순간이고 만회할 기회는 또 온다. 동료에게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엔가는 내가 동료를 도울 날도 올 것이다. 일은 어떻게든 수습이 될 것이고,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하나라도 배움이 생겼다면 실패라고만 할 수 도 없다. 툭툭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말자, 그건 너무 없어 보이니까. 이쯤이면 회사에 가기 싫은 이유 중에서 '일'은 열외로 해도 될 듯하다.


일이 아니라면 회사에 갈 때마다 양 발목에 2kg 모래주머니라도 차고 걷듯 다리가 무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우리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 회사에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앞에, 옆에 동료라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과 사람 '사이'가 때때로 업무보다 무거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업무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자연스레 해결되는데 반해 인간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렵게 느껴진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조금씩 소모되다가 방전되듯 사람과의 사이 또한 서서히 멀어지다가 단절되는 경우도 흔하다.


감정은 배제하고 일만 하면 되지 않나요?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이고, 일주일 동안 남편과 아이와 함께 밥을 먹는 횟수보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먹는 점심이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쉽지 않다. AI조차도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개발되는 요즘인데 하물며 사람이 아닌가? 험담보다는 앞담화를 선호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덮어두는 성격이 못 되는 나는 종종 의도하지 않게 갈등을 유발하고 그로 인해 잠 못 드는 밤이 많아졌다.


나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고 내버려 두는 것과 같은 뜻인 걸까? 부모라면, 자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게 당연하고, 부부라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게 맞는 이치겠지만 직장은 내 집이 아니고 동료가 내 가족은 아니다. 응당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직장 예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복무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기가 먹은 컵은 싱크대에 담그지 않는 것, 간식이나 도시락이 배달되면 다같이 세팅을 하는 것, 전화를 받을 때에는 어느 부서에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 내부든 외부든 민원에 있어서는 최대한의 친절로 응대하는 것. 대화할 때 인신공격은 하지 않는 것. 등이 생각난다.


82년생인 나는 '낀세대'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흔히 MZ라고 표현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그렇게 퍽 달갑지 않다.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으면 옛날 사람이나 꼰대 취급을 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든다. 최근, 국. 과장님 식사 모시는 날 없애달라고 대전 시청 젊은 직원들이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그럼 시장이나(우리 대학의 경우 총장님이 되겠다) 더 나아가 대통령도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이 맞는지 반문하고 싶다.


https://news.v.daum.net/v/20220113104436655?x_trkm=t


그렇다고 60-70년대의 어르신들이 '라떼는~"을 시전 하며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것도 질색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라며 선을 긋기 전에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본인이 젊었을 때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행동을 나이가 들어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 검열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는 말을 듣고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일이 떠오른다.


젊은 사람들이 국, 과장과 식사하기 싫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국, 과장님들은 보통 식사자리에서 하는 이야기가 왜 한결같이 자기 자랑인지 모를 일이다. 본인들도 실패한 적이 있을 테고 시행착오를 겪었던 일도 있을 텐데 그로 인해 무엇을 배웠는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가장 보람되었던 일은 무엇이고, 후회되는 일은 어떤 일인지, 조직에서는 신규 직원들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싶은지 등 후배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을 텐데 말이다. 들어서 도움이 될 만한 알맹이는 빼버리고 자리에 모인 사람을 병풍으로 만들어버리는 식사자리는 시간만 아깝고 밥도 맛이 없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하루 10시간 이상 같은 사무실에서 눈도 맞추고 손발도 맞추며 일을 하는 사이는 전생부터 어떻게든 연이 닿아있던 사람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달 동안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어떤 분과는 요즘 많이 편해졌고, 사수를 자처해 이것저것 챙겨줬던 신규 직원과는 어색해졌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는 없다. 혼자서 먹을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혼자서 글을 쓰는 작업도 보이지 않는 독자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고, 장사를 하려고 해도 손님이 있어야 가능하다.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직업이 있을까?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을 수용하자니 호구가 되는 기분이고,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행동하자니 싸움닭이 될 것 같다. 주말은 짧고 월화수목금요일은 길다. 월요병도 아니고 무려 '월화수목금요병'을 치료하자면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답일 텐데 도무지 정답을 모르겠다. 당분간은 치료제도 없이 병과 동고동락을 하게 생겼다. 부디 불치병은 아니길 바라본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다시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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