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전, 후

가족놀이

by 아이리스 H

# 1. 추석 전전날


이번 추석은 제사 없이 밥 한 끼 먹는 걸로 가족회의를 했다. 울 엄마는 김치 냉장고 3개와 대용량 냉장고를 가득 채우시고도 더 살 것 있다시며 시장을 나가자고 한다.


하지만 여럿이 모여야 할 거실의 대청소와 정리정돈이 더 시급했기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청소 아줌마로 잠시 변신했다.


소파를 앞으로 빼내기 위해 소파 주위를 치우고 그 옆 마사지 의자를 돌리고 커튼을 열고 이쪽저쪽으로 공간이동을 시키며 빠르게 청소를 시작했지만 두 시간째 정리만 했다.


그러다가 발견된 소파 밑 공간에 쌓여있던 달력 종이들 "이것이 무엇인고? " 갸우뚱 거리며 읽어보았다.


아니 이건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욕들... 그리고 억울함을 하소연한 엄마의 비밀 쪽지였다.


맞춤법도 틀리고 빼곡하게 써 내려간 미움이 소파 밑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엄마는 화가 나고 기분이 안 좋으면 커다란 달력을 공책 크기로 잘라 뒷면에 감정풀이 글을 쓰곤 하셨나 보다


소파 밑에서 엄마의 한풀이 글이 쏟아지자 목이 탄다시며 냉장고에서 시원한 밤막걸리를 한잔 들이켰다.


하하하 읽다가 빵 터진 어굴하다ㅎㅎ 울 엄마 그래서 소파 옮기기를 안 하시려는 듯했다.


"아서라 "하시더니 종이를 확 ~빼앗아 간다. 채 읽지도 못하고 내손에서 멀어져 간 쪽지들...




세상사 쉬운 일이 하나도 없나 보다.


21살에 시집오셔서 4남매를 낳고

9남매의 첫 며느리가 되었다

조상을 모시고 살아온 날들에서

올해 해방되는 추석이다.


습관적으로 유교문화에 길들여져 장을 보시고 음식을 준비하며 제사를 그만두시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책임감으로 힘들어하셨다.


이제 그만!

50년 넘게 해오던 제사와 조상 모시기를 멈추는 일이 해방인데도 엄마는 미안해한다.


며느리들은 제사 대물림을 안 받겠다고 하고 살아계실 때 잘하겠다고 한다. 나도 그 의견에 찬성이다.


코 시국이 오고 많은 것이 달라졌으며 엄마가 아프신 이후 자식들은 제사를 그만 두자고 했다.


힘들다고 표현하지 않으시고 내색도 없으시더니 이곳저곳 달력 종이에 한풀이를 하며 지냈을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조상님 덕택으로 이만큼 잘 살게 되었다고 굳게 믿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이 애잔했다.


부지런히 거실과 베란다를 오고 가며 정리를 마치고 엄마와 재래시장에 나갔다.

KakaoTalk_20210922_113618684.jpg 충청도 서산 재래시장


새우와 포도를 사러 갔다. 마트에 들러 우유를 사고 맛난 도넛도 샀다. 국산 대하와 외국산 대하가 가격이 차이 난다. 그 바다가 그 바다인 것 같으나 산지직송 살아있는 것과 죽어서 냉동된 것이 가격이 만원 정도 차이가 났다.


ㅎㅎ 우린 식구가 많으니 저렴한 냉동 대하로 2킬로를 사 왔다.




어허~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려는데 싱크대 주위가 거슬린다. 매직블록에 치약을 묻혀 싱크대 벽을 꼼꼼하게 반짝반짝 빛나게 청소를 하며 저녁을 준비한다.


테트리스 기법으로 냉장고를 정리하고 이곳저곳 무방비 상태로 놓아둔 것들을 싹 치우고 식탁을 정리한다.


엄마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싹싹 치우고 정리를 하니 힘은 들었지만 엄마를 위해 지금의 시간이 소중했다.


저녁상을 마주하고 아버지와 엄마에게 제사 이제 그만 지내자고 못을 박아두었다. 씁쓸해하시지만 엄마도 힘겨웠는지 고개를 끄덕이신다. 아버지는 말을 아끼신다.


그날 밤, 늦도록 욕실 청소까지 끝내고 쉬려는데... 엄마는 쌀가루를 익반죽하고 계신다. 일을 하실 때는 초인간적인 힘이 솟아난다. 송편을 위한 밑 작업이다.


새싹보리 그린색 가루로 초록 송편을 만들고, 포도로 보라 송편을 만들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예쁜 반죽이 되지 않아서 애만 썼다. 익반죽을 하다 보니 뜨거운 물의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반죽이다.

KakaoTalk_20210921_215507387_01.jpg


밤이 깊어 이제 자야지 씻고 나와 누우려는데 거실에 앉아계신다. 그리고 송편 속에 넣어야 한 다시며 이 밤에 밤을 까고 계신다. "아이고, 내일 해도 되는데..." 할 수 없이 옆에 앉아 밤을 깐다. 엄마의 고단한 삶을 지켜보니 그저 마음이 짠하다.




#2. 추석 전날


송편 빚기, 전 부치기, 그리고 새우 삶기, 갈비 굽기.. 뒤늦게 합류한 남동생네 부부 두 쌍과 울 아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거실에 꽉 찼다.


동전 치기 게임은 직사각형 상에 동전 다섯 개를 쳐서 가운데 동그라미에 가까이 붙이는 팀이 이기는 게임을 만들었다. 황팀&비황팀 대결이다.

500원 내기의 승부가 플러스되어 게임은 폭소 대작전이었다.


사회는 막냇동생이 그리고 팀별 리더는 울 아들이 ㅎㅎ 나는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 비황팀에 속했다.


엄마, 나, 아들, 첫 며느리, 둘째 며느리 한 팀

남동생 1, 2, 남 조카 1, 여조카 1, 2 황 씨 한 팀

한국 고유의 명절이니 지금부터 게임 도중 영어 안 쓰기로 정하고 벌점을 주기로 했다.


자자 이제 게임 시작!

하고 말하자마자 ok를 모두 벌점이다 ㅎㅎ

어느부터할까요? 오 홀 또 벌점 ㅎㅎ


가위, 바위, 보!

1번 선수 친정 엄마가 500원을 손끝으로 밀었다. 나이스~ 또 벌점이다.


리액션을 잘하는 울 아들 벌점 투성이다. ㅎㅎ

다음 차례... 다음 차례 흥미진진하다.


1대 0 비황팀의 승리다.

다시 스타트! 벌점이다.

마이마이 내 차례야 또 벌점이다 하하하


스무스하게 쳐야지 또 벌점이다.

쌤쌤이여 ㅎㅎ 또 벌점이다.

게임보다 영어 안 쓰기가 더더 힘들다.


2대 0이다.

우리 모두 파이팅! 하자 ㅎㅎ 벌점이다.

동전을 잘못 친 조카가 쏘리쏘리 한다. ㅋㅋㅋ


굿이야 오 홀 ㅎㅎㅎ

아니야 패스해 패스 또 벌점 하나

단순한 영어가 배꼽 잡는다.


마지막 역전의 기회다.

선수를 다시 배치하는 건 리더의 몫이다.

동전치 기를 잘하는 사람을 중간에 배치하고

앞뒤를 좀 실력이 안 되는 사람 순으로...


게임 다시 시작!

시작하자마다 영어 쓰기 벌점을 맞고 시작되었다.

우아 박빙이다 벌점 추가 ㅎㅎ


그 후로도 오케이, 나이스 추가

비황과 황의 벌점은 계속되었다.

하하 호호 깔깔 3대의 웃음소리가 담을 넘었다.


게임은 비황팀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상을 닦아내고 밥상이 짜잔 펼쳐졌다. 설거지는 황팀 대표 남동생의 몫으로 돌아갔다.

KakaoTalk_20210921_215004648.jpg 게임을 했던 상에 밥상을 차렸다.




이제 2탄 게임은 체험하기다.

생전 처음 게임하는 나

로봇공학을 전공 중인 조카가 가져온

오큘러스 퀘스트 2로 가상현실 속 게임을 즐기며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 게임도구였다. 다들 신기한 듯 체험을 시작했다.


어설픈 자세로 눈에 안경을 쓰고 두 손에 뭔가를 들고 게임과 노래를 즐기는 것이다.


구경하는 맛도 솔솔 하고 재미있다.


돌아가면서 안경을 쓰고 게임을 하는 자세는 마치 무당이 허공에 춤을 추는 자세 같았다.


엉거주춤한 자세에 벽을 피하기 위한 자세로 앉고 일어서고 ㅎㅎ


그러다가 난이도를 높여 총싸움 게임을 진짜로 착각한 막내 올케는

총을 겨냥한 사람들을 향한 몸무림을 실제로 재현하듯 했고 배꼽 빠지게 웃었다.


역시 20대는 게임도 잘한다. 난 어질 어질 미로속에서 겨우 정신차리고 빠져나왔다

허우적 거리며 그렇게 가족들은 까만 밤을 불태웠다.




#3. 추석날


제사 없이 편안한 밤을 보내고 늦은 아침을 일상처럼 맞이했다. 아침을 거부하는 신세대와 아침을 먹겠다는 구세대 추석 아침상은 전날 저녁 만찬보다 간단하게 준비되었다.


계란 프라이를 10개쯤 프라이팬에 부쳐낸 큰며느리 그리고 갈비 두 접시 제사음식 없이 차려진 소박한 밥상이 더 좋았다. 많은 음식들을 하고 기름지게 추석을 보내던 때와 다르게 간소화를 실천한 밥상...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의 금일봉을 받았다.

가족 한 명 한 명 이름을 쓰고

봉투를 준비하신

80대 아버지

70대 끝에서 고생한 울 엄마,

50대 하노이댁과 남동생들

40대 두 며느리들

20대~10대 손자 손녀

이렇게 3대가 모여 즐거운 추석명절을 보냈다.


주섬주섬 쌓아주시는 엄마의 사랑도 넘친다.

긴 세월 제사로 명절로 고생한 울 엄마를 이제는 해방시켜 주었다.


여전히 엄마의 사랑은 팔팔 끓어 달달하고

맛있는 식혜가 되어있다.



오랜 시간 엿기름이 발효하여 식혜가 되듯이

부모님의 마음은 식혜를 닮아있다. 감사한 마음을 글로 남겨둔다.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감정들이 마음속을 어지럽게 한다.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마음도 말끔히 비워낸다.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고, 추석날 밤 달님에게

소원을 빌어본다.


다음 추석엔 우리 가족도 함께하길...


(하노이의 남편은 추석날 일을 했다.)

아산의 추석 보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