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놈도 희망이 보여~~
"안녕, 아이리스?"
"여행은 잘 다녀왔나요?"
베란다 한쪽 길쭉한 머그컵에 레몬 싹이 삐쭉 고개를 내밀었다. 레몬세개를 사서 작은 병에 레몬청을 담았다. 작은 레몬 속에 나름 큰 씨를 품고 있었다.
씨를 7개쯤 빼냈다. 그리고 겉껍질을 벗겨 키친타월 위에 올리고 물을 뿌려 비닐 랩에 3일쯤 두었다. 열어보니 3개가 싹을 틔웠고 4개는 별 반응이 없지만 흙으로 옮겨 심었다.
싹튀운 레몬씨를 3개 심었고, 미련 없이 4개는 버린다 생각하고 홍콩야자 뿌리내리는 옆에 슬쩍 심어 두고 잊어버렸다. 오호라! 여행 다녀와서 보니 쑥쑥 싹을 틔워 연초록빛 잎사귀를 반짝이고 있었다.
세 개 중 두 개는 싹을 틔웠고 한 개는 끝내 싹튀우지 못했다. 제법 레몬 잎사귀가 연둣빛이다.
네 개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싹을 틔웠다.
같은 날 같이 심었는데 다른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키도 모양도 조금 달랐다.
1번, 두 잎을 가진 이놈
2번, 세잎을 가진 저놈
3번, 새순만 보이는 그놈
4번, 아직 움트며 준비 중인 요놈
(자세히 보아야 보임)
놈, 놈, 놈, 놈들의 이야기를 쓰려한다.ㅎㅎ
청년실업과 취업이 너무나 힘든 코 시국에 아들놈의 형, 동생, 친구 놈이 희망의 싹을 틔웠다.
보통은 집에서 다니거나 학교 기숙사, 고시원, 원룸이 대학생들의 삶의 터전이다. 우리 가족은 베트남에 있었고 큰아들 혼자서 대학을 다녀야 해서 학교 근처 오래된 연희동 골목 안에 아들의 자취집을 마련해주었다.
방 2개와 거실 겸 주방이 딸린 1층을 혼자서 사용했다. 가끔 남편과 나 그리고 동생이 오고 가며 그 집을 이용했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그러나 코 시국이 되어 2년 동안 아들은 혼자 있게 되면서 그곳에 자주 오던 형, 동생, 친구가 있었다. 4명은 오고 가며 서로 친하게 지냈다. 혼자 사는 집에 식구가 늘어났나 보다.
이놈, 저놈, 그놈들이 합류했다. 전기세, 수도세, 도시가스 요금이 두배 아니 세배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아들은 공부와 취업 준비로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가족이 아닌 형, 동생, 친구에게 의지하며 버티어 냈다고 했다. "그래, 세금 따위에 연연하지 말아야지... "
용돈과 각종 세금을 감당하면서도 아들이 잘 있다는 소식이 더 고맙고 다행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집중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함께 살다시피 한 형과 오고 갔던 친구들 그리고 동생이 있어서 취업 지옥을 통과했는지도 모르겠다. 공채시험과 여러 번 면접에 떨어지고 실망했을 때 함께 웃어주고 울어주었을 청춘들의 땀내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집은 엉망이었다. 취업과 공부를 하며 집을 치울 정신은 없었겠지... 사람 사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5월 1일, 이제 그만!! 인생 청소부가 필요했다.
아들이 인턴이 되자마자 난 한국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시작했고, 형도, 친구도, 동생도, 각자 삶을 위해 떠났다.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했다. 연희동 골목의 그 집은 아들의 추억이다.
그렇게 3개월쯤이 흘렀다. 그놈들이 그분들이 되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 어렵다는 S 그룹에 합격했고, G 그룹에 다니며, 전기 기사 자격증을 획득했고, 회계사가 되어있다.
그곳이 정말 명당이었을까? 고뇌하며 힘들었던 청춘들은 드디어 꽃을 피웠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부여잡고 4명의 청춘들은 동네 쉼터가 되어준 우리 집에서 코 시국을 보냈다.
대학교도 학과도 각기 다른 이들은
어쩌다 만나 함께 동거를 하게 되었고, 난 2년 넘게 폭탄세금을 냈고, 쓰레기 무단투기로 거금을 납부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던 그곳에서 건강하게 그들은 숨을 쉬었고 살아남았다. 함께 가는 길 외롭지 않았을 터 밀린 세금을 깨끗하게 정리해주고 이사를 했다.
"아이고 못살겠다." 탄식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지만 그럼에도 야호! 살아냈다. 해냈다. 희망의 소리가 들려오니 다행이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인데 청춘들의 봄은 이제 시작이다. 봄맞이를 준비하는 새내기들에게 충분한 햇빛과 물 공기가 필요하다.
힘겨운 사회 초년생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어른들의 세심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싹이 안 날 거라 포기하고 심어두었던 레몬 싹이 이렇게 싹을 틔운 걸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기다림이 다를 뿐 싹을 틔우고 자라나듯 청춘들의 삶도 좀 더디지만 꽃을 피워 낼 거란 걸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 힘들다면 살아있는 것이고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추석이 다가온다.
행여 기다림의 시간들을 보내야 하는 청춘들이 있다면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언과 격려보다는 따뜻한 사랑과 맛난 음식으로 위로하자.
싹이 나고 꽃이 피어나길 기다려 준다면 찬서리가 내려도 청춘은 눈꽃을 피워 내지 않을까? 이미 싹을 틔웠다면 커다란 나무로 자라 숲이 되고 산이 될 수 있게 마음으로 빌어 주자.
초록 초록한 레몬잎이 베란다에 들어오는 한 줌의 바람과 햇빛에도 당당하게 싹을 틔웠다. 그리고 자라나는 중이다. 이놈, 저놈, 그놈, 요놈들처럼 희망의 날갯짓을 응원하련다.
"그래 고생 많았다.
멋진 인생길에 함께여서 행복했노라 "
말할 수 있도록 늘 자신을 돌보고 어떤 비바람에도 씩씩하게 잘 이겨내길 바란다.
지나고 나니 모든 게 고맙고 감사하다. 요놈들 모여서 노는 줄만 알았는데 열심히 살았네 ㅎㅎ레몬향처럼 상큼하고 좋은 소식을 들으니 올 추석엔 요놈들 집안에 송편 물고 웃음꽃이 피어날 것만 같다.
모두 파이팅!!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