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교육은?

잘놀고, 잘먹고, 잘사는 거다.

by 아이리스 H
세상은 사람이 바꾸지만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이다.

과거의 주입식 교육은 무조건 외우기 식으로 생각을 강요받았고, 밑줄 긋기에 바쁜 국어교육, 사지선다형으로 평가했던 수학교육, 실험을 하지 않는 과학교육, 우리말로 가르치는 영어교육, 10번 이상 쓰고 또 쓰며 외웠던 영어단어, 팔이 아플 정도로 많았던 숙제들... 교과서로만 가르치는 역사교육... 교사가 주체가 되어 정답을 가르쳐주는 객관식 문제풀이로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던 교육을 받아왔다.


대학입시라는 명분 아래 음악, 미술, 체육시간이 영어시간으로 대체되기도 했고, 자율학습으로 교실에서 공부만 했다.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미성숙한 존재인 나는 교육을 그대로 전수받아야 했다. 수학공식과 과학적 법칙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고, 그저 문제와 답을 누가 더 잘 기억해서 답을 찾느냐에 따라 등수가 매겨지고 대학에 합격과 불합격이 좌우되었다.



학교 밖 교육은?


주말이면 개울에서 올챙이를 잡아와 키워보며 뒷다리가 먼저인지? 앞다리가 먼저인지? 눈으로 직접 보여주었다. 꼬리가 사라지면서 개구리가 되기 전 다시 개울로 보내주었고 , 장수풍뎅이 알을 사서 키워 장수풍뎅이로 자라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파브르의 곤충기를 읽으며 두 아들은 흥미로워했다.


달팽이도 키웠다. 달팽이는 먹은 음식에 따라 똥 색깔이 다름도 알게 되었다. 배춧잎을 먹으면 초록색 똥, 수박의 빨간 부분을 먹으면 빨간 똥을 싼다. 나도 신기했다. 학교 앞에서 눈도 겨 우뜨는 약한 병아리를 사 왔다. 화장지 티슈 상자 속에 병아리를 키웠다. 삐약삐약 꼬물꼬물 귀여웠다.


아이들이 학교 가면 거실에서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중닭 정도 되었을 때 농장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두 아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햄스터 두 마리를 선물 받았다. 난 철물점에서 커다란 새장을 사 왔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풍차 모양과 물통 그리고 가짜 꽃으로 햄스터네 집을 꾸며주었다.


그런데 한 마리가 문을 열고 탈출했다.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더니 햄스터는 책꽂이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햄스터를 낚아서 새장 안으로 들이고 문을 봉쇄하였다. 방과 후 햄스터를 거실 밖으로 내놓고 좋아하며 운동을 시키고 밥을 먹였다.


그 후 새끼를 낳았고, 나는 사실 징그럽고 귀찮고 싫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니 냄새도 나고, 손이 많이 가도 참았다. 그 후 햄스터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이웃에 살던 친구에게 햄스터를 선물해 주었다. 그 이후, 물고기를 키우고, 식물을 키우고, 싹을 틔우며 아파트 베란다는 호기심 천국이었다.




효도란?

개념과 정의보다 직접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가 뿌리를 알게 해 주었고, 외가댁에도 방학이면 꼭 갔다. 공부보다 노는걸 더 많이 가르쳤다. 주말이면 영화도 보러 가고, 티라노사우르스와 브론트 사우르스 등 공룡 책에 관심을 보일 때 공룡전시관으로 체험학습을 갔다.

KakaoTalk_20210929_101311296.jpg 아들의 스크래북속 멘트는 웃음이다.


역사를 배우기 시작해서는 경복궁, 덕수궁 나들이를 즐겼고, 청자, 백자를 전시해 놓은 곳을 직접 가보았다. 작은 아들은 미술에 관심을 보이기도 해서 미술관 나들이도 자주 다녔다. 함께 가면 나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따라다니며 설명하지 않았다.


몇 시에 정문에서 만나자. 하고는 서로 각자 작품을 감상후 집에 와서 토론을 하거나 스크랩을 하였다. 재미를 붙여서인지 수첩을 들고 다니며 나름 적기도 하고 미술관에 또 가자고 했다.


" 가본 곳을 왜 또가?" 이유는 미술작품을 보러 가는것 보다 그 앞에서 구름처럼 커다란 솜사탕이 엄청맛있어서 또 먹고 싶다는 거였다.ㅎㅎ


이곳저곳 여행도 많이 다녔다. 그때가 스크랩북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의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2003년~2005년) 아이들이 초3 , 초5 학년일 때 직접 보여주고 체험하는 학교 밖 교육을 즐겼다. 고액의 학원비를 세상에 지불했다.


이곳저곳 맛집도 데려가고, 살찔까 봐 먹이지 않는 인스턴트와 초콜릿도 맘껏 먹였다. 진짜 엄마 맞다. 햄버거도 팍팍 먹이고, 피자도 한판 더 두 판을 먹이고, 고기는 무한리필 집에 가거나 뷔페에 데려가 원 없이 먹였다. 짜장면도 곱빼기로 먹던 두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치킨은 기본이고 사이드메뉴까지...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으러 갔다. 잘 먹고, 잘 놀고, 잘살았다. 인생 뭐 있어? ㅎㅎ

KakaoTalk_20210929_101133460.jpg 영화관을 다녀온 후 한줄소감 ㅍㅎㅎ


아토피가 있던 둘째는 우유도 생선도.. 안된다 했다. 그런데 다 먹인 듯하다. 하하하

급기야 초등 고학년 때 비만 위험군 판정을 받았다. 두 아들 모두 몽쉘통통으로 얼굴은 보름달을 닮아가고 몸매는 울퉁불퉁했지만 귀여웠다. 나와 남편은 어린 시절 너무 말라서 아프리카 난민 포스로 살았었는데...


두 아들 초등에서 중학교 때까지 통통 뚱뚱 했지만 중. 고를 지나며 180센티의 우월한 1등급으로 병역의무를 마쳤다면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컸다. 공부 대신 난 행복한 사람으로 학교 밖 교육에 신경 썼다.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불안해하면 아이에게도 불안감이 전수되는 듯하다. 성공보다 행복함을 우선으로 했다.



지각할까 봐 일찍 일어나는 첫째 아들,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더니 열심이었다.

지각이다. 말해도 느긋한 둘째 아들은 "엄마 , 밥 먹고 가서 벌쓰면 돼요" 먹는 것에 진심이었다.ㅎㅎ


부모의 모든 행동과 생각이 자녀에게 전염된다. 교육은 학습된다.


혹여 내가 다시 자녀를 키운다 해도 난 주입식 공부보다 세상 속 공부를 더 많이 가르쳐 줄 거다. 스스로 때가 되면 자신의 꿈도 찾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알게 될 테니까... 조바심보다 좋은 건 단순하게 믿어주는 거, 맘껏 사랑하는 거, 부모의 행복한 모습 보여주는 거 그것뿐이었다.

KakaoTalk_20210929_101320164.jpg 악필이었던 큰아들 ㅎㅎㅎ


코 시국이라 학교교육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고, 컴퓨터 게임과 유튜브를 보며 지내는 초, 중, 고 학생과 학부모님들의 한숨이 담장을 넘었다. 이곳저곳 맘대로 갈 수도 없는 안타까운 때이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집안에서도 많은 놀이와 할 일이 있음을 가정 속 웃음소리와 행복한 마음이 흘러 흘러 사회를 세상을 변화시켜 가길 바란다.


아이들을 위해 집안일만 해서 경력이 단절되었다. 아이들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했다. 아이들 키울 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라고 말한다. 지나고 보니 소중한 가치의 아이들이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랑을 주었고, 함께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사진 속에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아서 마음의 근육이 되었다.


나에게 학교 밖 교육이란? 잘 놀고,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배워가는 일이다.

성적이 나쁘다고 못 사는 거 아니더라 성적이 좋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더라

각자의 생각대로 원하는 행복한 삶을 선택하는 거였더라


과거 속 주입식 교육이 없었다면 창의성 교육을 알지 못했으려나? 그러니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