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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

Happy day

by 아이리스 H

#1. 여고 2학년 새 학기 교실

멋쟁이 인기 짱!

수학선생님이 담임이 되던 날.

교실 안은 이미 웅성웅성

시끌시끌 시장통이다.

교복 자율화(1983년)!!

자율복장으로 한껏 멋을 내고 등교했다.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받던 그때

머리도 단발 귀밑 2센티에서 긴 머리까지 허용되었다.

양갈래로 머리를 따서 머리끈도 자유화

그래서 난 튀는 색(금색 고무줄로 )

지금 생각하면 촌티 팍팍

그날 이후 별명은 추장 딸 ㅎㅎ

까무잡잡한 피부에

몸무게는 전교 1등 삐쩍 마른 몸매였다.

#2. 줄 서기

교실 밖 복도에 한 줄 서기.

키대로 줄을 서서 번호를 정한다. 키 번호는 신발 번호다.

난 앞 뒤로 왔다 갔다 하며 고개를 옆으로 삐쭉 내밀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 둘셋넷...(마음속으로)

멋쟁이 선생님이 소리친다.

"너 이리나와! 정신없게 똑바로 안 서있고 뭐 하는 거야?"

딱 걸렸다. 선생님 곁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콩닥콩닥 심장소리가 느껴진다.

모두 조용해졌고

"너 왜? 왔다 갔다 한 거야?"

"저요, 22번 하고 싶어요"

"뭐라고?"

잠시 후, 선생님은 날 22번째에 끼워 넣었다.

어머나!! 세상에 혼날 줄 알았는데...

역시나 소문대로 멋쟁이 수학 선생님

그러나 수학은 정말 싫어!!


#3. 2222

난 2학년 2반 22번이다.

2222 학번을 쟁취했다.

참 쉬웠다.

그러나 수학 시간만 되면 22번 22번 22번..

수학 문제 풀이를 시키는

담임 선생님 때문에 칠판 앞으로 나가 곤욕을 치르거나

해답을 못써서 창피함을 당하기도 했다.

다른 과목에 비해 유난히 점수가 낮았던 수학 과목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몰랐던 그때 그 시절

수학공식을 외우고 X값을 구하는 일은 나에게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했지만

B반에 머물러 있었다.


#4. 해피데이

나의 짝꿍은 2221번 K 였다.

우리는 마음이 잘 통하는 환상의 커플이었다.

한 달의 한번 22일을 행운의 날로 정하고

야간자습을 땡땡이치고

떡볶이를 먹고, 영화를 보며 노는 날

우리끼리 몰래 스릴을 만끽하며

많이 웃고 많이 행복했다. 그다음 날 반성문도 함께 쓰며

입시를 앞둔 여고생이 아닌 이미 대학생이 된 듯

호호호 깔깔깔 언제나 즐거운 한쌍의 앵무새처럼

재잘거림을 즐겼다.

그 친구는 간호사가 되었고 난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도 22일에 소식을 주고받는다.


#5. 행운의 편지

멋쟁이 수학선생님은 종례 후, 나를 교무실로 따라오라 하셨다.

잘못한 게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졸졸졸 따라갔다.

교무실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복도를 지나고 디딤돌을 지나

도착한 교무실 다른 선생님들의 눈빛에 고개를 숙인 채...

빙그레 웃으시며 선생님께서는

편지봉투가 가득 들어있는 박스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수학여행 후 나에게 온 행운의 편지란다.

이름도 모르는 남학생들이 2222번에게 무작위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여고이다 보니 학교 안에는 쓸데없는 소문과 말들이 쉽게 나는 때였다.

그리고 펜팔로 남자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찬스였는데...

"이 편지 폐기 처분할 예정인데.. 그래도 너에게 온 것이니

보여주는 거다" 세상에 이런 일이.. 폐기 직전 소각장으로 가기 전

잠시 봉투만 슬쩍 보았을 뿐 그 행운의 편지는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내가 만약 그때 그 편지를 소장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2222학번은 무미건조했던 학창 시절의 나를 웃게 만들었다.


#6. 투투데이(22일)

2222학번의 주인공은 평범했던 삶을 박차고 조금씩 열정적으로

자신을 만들어갔다. 그 후 오랫동안 22일 나름 기념일을 만들고 즐겼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평생 한 달에 한번 22일에 장미꽃을 준다면 난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투투데이(22일)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결혼 10주년에 라디오 방송에 편지글이 소개되었고

전화로 연결된 사연과 결혼 풀 스토리가 잠시 공개되기도 했다.

그 이후 SBS 행복 찾기와 MBC 방송국에 보낸 편지들이 당첨되어

프로그램에 영상 출현도 했다. 평범한 일상 속 행복과 행운이

잠시 머물고 지나갔다. 편지를 써서 받은 선물과 상품들은

생활의 보탬이 되었다. 유모차 , 무선전화기, 오디오, 화장품 세트

아기용품들까지... 꽃처럼 피어났던 신혼시절의 추억이다.


#7. 꽃바구니와 반지

남편은 중국 출장 중이었다.

의류무역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

분주한 아침 그날도 22일이었다.

초인종이 울린다."누구세요?"

"네, 꽃배달입니다."남편이 꽃바구니를 예약하고 22일에

전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두배의 감동과 사랑이 전해졌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두줄이 쌍으로 올라온 큐빗 반지를 사주었다.

지금 내 왼손 약지에 있는 18K 반지다.

값비싼 다이아는 아니지만

소중한 추억과 사랑을 담으니 가치로움은 무한하다.

남편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었고

홀어머니와 삼 형제만 남겨져 생활이 많이 힘들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늘 자상하고 좋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했다.

꽃처럼 환하게 웃던 그날이 새록새록하다

#8. 가족의 날(매월 22일)

회사생활로 남편은 늘 바빴다.

두 아들은 학교와 학원을 다니느라 바빴다.

나 또한 워킹맘으로 바빴다.

한 달에 한번 함께 밥 먹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난 행운의 날을 가족의 날로 바꿨다.

그날만큼은 될 수 있는 데로

난 집밥을 했고 나름 새로운 요리에 도전했다.

자상한 남편은 여전히 꽃을 사 오고 두 아들은

식탁에 참여했다. 지치고 힘든 삶에 오아시스가

아니었을까?? 가뭄에 단비 같은 하루였지만

가끔은 학원 땡땡이를 치고 맛난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고 부자간 힘 대결 팔씨름으로

투투데이에는 가족 모두 웃음꽃이 피어났다.


#9. 약속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정해진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켜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단순하게 장미 한 송이에서 꽃바구니를 전하는 일을 28년째 하며

이어가는 결혼생활

긴 세월 동안 반복된 투투데이는 우리 가족을 든든하게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두 아들 힘든 사춘기 때에도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과의 약속도

타인과의 약속의 소중함도 그렇게 지키고 배워갔다.

난 쓸데없이 숫자 2에 꽂힌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며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10. 행복하기

어느덧 세월이 덧없이 흘렀다.

2222로 시작된 나의 삶의 발자국은 헛되지 않았다.

받는 것만 사랑인 줄 착각하며 살았고 주는 기쁨이 더 큰 사랑임을

너무 늦게 알았다. 힘들고 어려웠던 날이 있었기에

행복하고 즐거운 날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란 걸...

베트남에 온후 투투데이(22일)에 나는

남편의 회사에 꽃을 사다 놓는다. 그동안 꽃을 받았으니

이제는 내가 꽃을 주려고 한다.

삶은 수학처럼 공식이 없다.

정답도 없다. Y값을 찾지 못해도 된다.

다만 최선을 다해 삶의 여정을 즐기며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2222학번의 소유자들이여!

모두 행복하소서!!

오늘은 2020년 11월 22일 투투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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