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솥뚜껑 호떡

추억을 소환하다

by 아이리스 H

충청남도 서산엔 솥뚜껑에 기름을 두르지 않은 꿀호떡을 파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부터 있었으니까 어림잡아도 40년쯤은 되었다.

천막을 치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쉴 틈 없이 호떡을 굽던 달인 아줌마가 있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날엔 스멀스멀 달콤한 호떡이 생각 난다.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해 보았다.


세월이 흘러 아줌마의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곱던 얼굴엔 주름살이 자리 잡고 쭈글 해진 손등으로 여전히 호떡을 굽고 계실 줄만 알았는데... 며칠 전 막둥이 남동생이 전화가 왔다.

"누나 그 호떡집 문 닫았대 ~" 아마도 몸이 아프시고 기력도 없으셔서 장사를 그만두셨다고 한다.

잠시 멍한 상태로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만 바라보았다.추억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타닥타닥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추슬러본다.


어린 시절 배고픔을 달래주었고 유일한 간식거리였던 달콤한 꿀호떡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손님들로 길게 늘어선 줄에 끼여 있어도 하나도 지루한 줄 모르고 기다림 속에 맛보던 솥뚜껑 호떡이었다.



시장 한구석에 아줌마의 아지트는 언제나 단내로 내 코를 벌름거리게 만들었다.

호떡과 나의 삶의 닮은꼴을 찾아서 적어 보고자 한다. 두 명 정도의 아기가 들어갈만한 커다란 다라에 밀가루 반죽은 부풀어 있었다. 덮어두었던 베보자기 사이로 빼꼼히 내민 반죽은 10대의 소녀의 부푼 꿈처럼 탱글탱글하고 찰지게 반죽되어 아줌마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줌마 손에서 밀가루 반죽은 살짝 기름을 두르고 요리조리 둥글넓적하게 만들어져

달콤한 설탕을 가득 품고 뜨거운 솥뚜껑 위로 올라간다. 20대 나의 청춘처럼 달콤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며 미래의 꿈도 조금씩 이루어 가며 결혼이라는 인생의 무대 위로 올라가 서 있었던 것처럼 잠시 호떡이 되기 전 준비단계를 마치고 솥뚜껑을 탐색하듯 나도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솥뚜껑 위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지긋이 누름질을 당하고도" 앗! 뜨거워!" 한마디도 못한 채 납작하게 엎드린 호떡처럼 어쩌면 30대 나의 사회생활과 결혼생활은 산전수전 공중전을 여러 번 순회한 후에 위로 아래로 뒤집어지다가 단내를 내며 익어간 호떡과 흡사하다.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듯 호떡도 자태를 뽐내려 했지만 때로는 옆구리가 터져 꿀물이 흐르기도 하고 애매하게 타서 아주머니의 손끝에서 땜질을 당하기도 한다. 세상 속 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도 받고 상처도 주며 자존심도 상하고 속상함과 억울함이 많았던 시절은 바람처럼 그렇게 지나갔다.


열심히 살아내려 애쓰고 수고했다. 그리 쉽지 않은 인생길에 많은 장애물을 뛰어 넘었다.

인고의 시간을 잘 버티어낸 호떡만이 드디어 신문지에 둘둘 말려 포장을 끝내고 어디론가 팔려가듯

엉거주춤하는 사이 시간이 흘러 갔고 나의 40대의 삶도 조금 안정되고 완성되어 갔다.



길게 늘어섯던 줄이 없어지고 드디어 내손에도 호떡이 들려있다.

따끈따끈 폭신했던 그 느낌!! 집에 가는 길이 어찌나 멀게만 느껴지던지.. 발바리가 되어 반은 뛰고, 신발이 벗겨질 뻔하면 걷고, 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달려왔다. 채 식지 않은 호떡은 그제야 내입 속으로 들어와 한바탕 댄스를 추며 나의 입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다. 호떡은 위를 뜯어 먹은 후 아래판을 둘둘 말아 꿀물이 흐르지 않게 먹어야 하며 가끔씩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서 돌려가며 먹는 게 호떡 마니아만의 비법이다.


호떡처럼 납작하게 엎드리는 것도 가끔 괜찮다~~ㅎㅎ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비가 오는 날엔 더욱 그리워지는 호떡을 이제는 사 먹을 수 없겠지만 내 기억의 창고 속에서 언제든 소환하면

꺼내먹을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오래간만에 슈퍼에서 파는 찹쌀 호떡 믹스를 반죽하여 호떡 아줌마로 직접 변신했다. 그 옛날 그 맛은 아니지만 영혼을 살리는 나만의 꿀호떡을 만들어 냠냠 맛나게 먹고 말았다. 밤 10시다.


반복되는 일상 속 호떡 아줌마의 고단했던 삶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의 혀에 단맛을 가르쳐준 아줌마는 할머니가 되고 그 단맛을 기억하는 어린아이는 멀리 타국에서 아줌마가 되어 글로 나마 아쉬움을 적는다.

한결같이 버티어온 긴 세월만큼의 흔적과 수고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짝짝짝

KakaoTalk_20201117_214845973.jpg


"참 수고 많았슈우~~ 남은 인생 쉬엄쉬엄 쉬어가세유~"충청도 서산의 솥뚜껑 호떡 아줌마께 인사를 전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BEETHOVEN symphony No.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