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3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7080 시대의 거장, 해바라기 듀엣가수의 '사랑으로'는 나의 애창곡이며 자장가이다.
내 마음의 보석상자, 어서 말을 해, 행복을 주는 사람,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 주옥같은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감미로운 기타 소리와 매력적인 목소리는 여전히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나의 이상형 1순위는 기타를 치고 해바라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남자라면 무조건 OK. 돈도, 학벌도, 생김새도, 키도 아무것도 따지지 않았다. 20대 나는 너무 순수했나 보다 ㅎㅎ... 그런 남자가?? 있을까?
꽃다운 24세 학원강사로 취업을 했다. 원장님의 가까운 지인이었던 김 씨를 그곳에서 만났다. 00 회사를 다니며 가끔 학원에 놀러 왔다. 늦게 까지 수업이 있던 어느 날 선생님들과 연포탕을 먹으러 간 회식자리에서 처음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었다. 저는 김 00입니다.
별 관심 없던 나와는 다르게 김 씨가 사 오던 박카스와 음료수는 여러 선생님들의 호감을 사면서 수군수군 속닥속닥 호호호 깔깔깔 학원 안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면 김 씨가 와 있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그립다.
내 스타일 아니라고 부정하며 곁눈으로 슬쩍 보니 참 착한 눈매에 서글서글하니 나쁜 인상은 아니었다. 그럭저럭 평범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관심 보이던 K 선생님. S 선생님.. 나만 진짜 관심이 없었다.
그 후, 김 씨는 가끔씩 학원 행사를 도와주러 왔다. 여자 선생님들만 6~7명이니 원장님 부부는 김 씨를 자주 부른 듯하였다. 여자 친구가 없던 김 씨에게 아마도 여러 선생님들을 자연스럽게 미팅시켜 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탁구도 함께 쳤었다.
그런데, 자주 보이던 김 씨가 학원에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은근 신경이 쓰였다. 김 씨는 직장을 옮겨 바빠졌고 이제는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그러나, 그해 학원 회식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 위해 원장님 댁으로 마니또 선물을 들고 갔다.
그곳에 이미 김 씨가 와 있었다. 오랜만이다. 갑자기 내 마음이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김 씨는 내 옆에 앉았다. 혹시나 내 마음이 들통날까 봐 시선도 멀리 했다. 선생님들의 짓궂은 질문에도 웃으며 답변하는 김 씨가
신경 쓰이는데 자꾸 말을 걸어온다. 침묵에 미소로만 응해주고 비스듬하게 앉아 있는데 발가락이 쥐가 나고 불편했다. 발을 쭈욱 뻗거나 주무르면 괜찮아질 듯했지만 애써 참았다. 이런 느낌 처음이었다.
선물 교환한다고 마니또 선물을 돌렸다. 나의 손에 김 씨의 선물이.. 김 씨 손에 내 선물이.. 즐거운 시간이 얼마큼 지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발에 전기가 온 듯 찌릿했다.
애써 일어나려는데 김 씨가 손을 내밀어 준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도톰한 그 손을 잡고서야 난 주섬주섬 일어났다. 뻘쭘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고개만 끄덕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선생님들 몰래 원장님 부부도 모르게 007 첩보영화처럼 작전을 짜서 비밀 연애를 시작했다. 핸드폰이 대중화되지 않은 때라 겨우 삐삐나 유선전화로만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김 씨가 학원에 나타나면 선생님들의 눈치를 살피며 서로 눈인사만 하고 모른 척하다가 내교실 칠판 귀퉁이에 암호를 쓰고 ㅊㅂ8 (촛불카페 8시) 재빨리 지웠다. 정말 나름 스릴 있고 재미있었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고 반대 방향의 촛불카페는 우리의 아지트였기에 선생님들이
"어디가?"물으면 나는 뭔가 죄지은 사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네... 저.... 볼일이 있어서요"
바쁜 척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곤 했다.
아! 그때의 떨림과 설렘이 희미해졌지만 기억 속에서 스멀스멀...
K선생님의 예리하고 섬세한 눈빛에도 걸리지 않았고, 원장님 부부와 여러 번 함께 식사를 했음에도 들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알고 있었는데 모른 척했을 수도 있다.
학원 행사로 1박 2일 캠프가 있던 여름날, 프러포즈를 받았다.
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듯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로 밤을 새웠고 천막이 날아가고 반쯤 찢어진 천막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짜장밥을 먹는 건지? 빗물 밥을 먹는 건지? 알 수 없었을 때쯤 어디선가 해성처럼 나타난 김 씨는 50여 명쯤의 아이들과 짐들을 버스로 옮기는데 비를 흠뻑 맞으며 도와주었다.
휴가 중에 나타난 김 씨의 사랑에 내 마음 흔들렸고 감동했다. 그렇게 김 씨는 내 사랑 오빠가 되었다.
우리는 4살 차이 천생연분 커플이라는 옛말을 믿으며 자석처럼 서로에게 끌렸고 사랑을 했다.
1년 반쯤 몰래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하였다. 우리의 사랑은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CD를 내가 우연하게 선물하는 바람에 인연이 되었고 필연처럼 살아가는 해바라기 부부가 되었다. 게다가 남편은 기타 칠 줄 알고 노래도 잘 부른다. 좀 더 부추기자면 해바라기 음색을 닮아 있다.(사실 확인 불가ㅎㅎ)
드디어 내 사랑 띵똥 씨! 를 찾았다. 평생 내 옆에서 노래 불러줄 남자를 이렇게 만날 줄이야... 기타 치며 놀기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일개미를 여왕개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우리의 아지트는 결혼 이후 가보니 사라졌다. 그리고 학원을 하시던 부부는 업종을 바꿨다. 김 씨에게 관심 있던 K선생님도 우리와 가까운 친척이 되었고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도 모두 짝을 만나 잘 살고 있다.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우리의 삶은 그렇게 세월 따라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와있다. 변함없이 사랑한다? 그건 아닌 듯 하지만 서로 배신할 때까지만 잘 살자던 약속을 지키며 이곳 하노이에서 잘 살고 있다.
한때는 기타를 치며 낭만적이고 멋졌던 남편은 살아남기 위한 몸무림으로 이제는 해바라기 노래를 듣다가 지쳐 쓰러져 잠을 청한다. 손때 묻고 낡았던 기타는 한국에서 하노이로 올 때 재활용 스티커를 붙여 버렸다.
아버지로 어머니로 산다는 건 많은걸 내려놓아야 했고 기타 칠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우리는 무덤덤하게 행복이란 가면을 쓰고 정신없이 살았다. 돌아보니 어느새 반 백년을 넘게 살아왔다.
가끔 난 신청곡을 청한다."여보, 노래 한곡" 못 이기는 척 능청스럽게 핸드폰으로 노래를 불러준다. 자판기 커피처럼 누르면 나오는 남편의 노래는 여전히 살아있다. 팝송, 트로트, 발라드,가곡까지 다양하게 가능하다.
내 사랑 띵똥 씨의 노래를 들으며 해바라기로 살아가고 있다.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되어 준 노래들은 오랫동안 우리 삶을 지탱해 주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행복한 거다. 3월 중순 남편 생일엔 통기타 하나 선물 하려고 한다.
'가끔은 베짱이처럼 노래도 부르며 이제 쉬엄쉬엄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라고...'
그림을 스케치한 후 여러 색을 채워 작품을 완성하듯 차근차근 그렇게 우리 인생도 아름답게 채색 되어 가고 있다. 바람에 내몸과 마음을 맡겨본다. 은은한 기타소리를 들으며 3월 행복한 시작을 띵똥 띵똥!
해바라기 꽃말은 애모이다.
해바라기는 오직 태양만 바라보는 꽃으로 일편단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