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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Dec 26. 2022

가끔 내 삶도 드라마틱하다.

주인공처럼...

어쩌다 보니...

남편이 운영하던 의류공장이 50일이나

가동을 잠시 멈추었다. 미싱 바늘이...

공장 입구까지 쌓였던 박스들이...

화초마저 풀이 죽어 시들어 사라졌다.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동안 주춤해진 오더로

베트남 현지 의류공장과 사무실이 쉬어갔다.


건강을 회복한 남편은 아쉬움 속에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파서 쉬고, 또 쉬어가려니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인지라 쉬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든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도 함께 쉬었다.


벌면서 써도 빠듯한 살림살이인데 놀면서

벌어놓은 돈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쉼표가 더 길어지기 전에 공장을 정리할까?

고민도 했지만 그마저도 걸림돌이 많았다.

결핍이 주는 또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다들 평안하신가요?


배달음식 대신에 냉장고 속을 정리해서 요리하고

꼭 필요한 물건들만 사려고 노력했으며

잦은 새치염색 대신 모자를 즐겨 썼고

즐겨하던 손톱네일도 쉼표를 찍었다.

좋아하던 골프필드도 줄였다.

쓸데없는 지출을  막으려고 애썼다.


50일이 어느새 바람처럼 지나갔다.


힘든 날이 올까 봐 미리 적금도 들고

보험도 들며, 저축을 해두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돈은 걸어놓은 곶감을 빼먹듯 쉬웠다.

구멍 뚫린 통장엔 잔고가 술술 빠져나갔다.


건강이 최고라고 믿었건만 그마저도 약해진

마음에 쑹쑹 바람구멍을 타고 넘나들었다.

내 삶도 드라마틱한 한 장면처럼 흘러갔다.

12월, 세찬 강풍도 아니고, 따스한 바람에도

추위를 느끼며 베트남 하노이에서 버티고 있다.




그럭저럭 50일을 쉬었고

다시 뛰어갈 준비를 하는 중...이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나 보다

건강을 되찾았던 남편이 감기에 옴팍 걸렸다.

감기에 옮을 수 있다며 오지 말라고 했다.


하노이에서 두 시간 거리를 두고 우리는 5일째

만나지 못했다. 갑자기 가고 싶어졌다.

난 타이빈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예약했다.

야채박스에서 잠자던 콩나물을 조물조물 무치고

오이부추김치를 겉절이처럼 담근걸 작은 통에

옮겨 담고 단 두 개, 귤 2개를 가방에 넣었다.


이곳 하노이는 15인승 셔틀버스가 장거리

여행의 교통수단이다. 편안한 안마 의자에

에어컨도 빵빵하고,  연예인 리무진처럼

고급지다. 여러 번 타보았지만 빠르고 좋다.


가는 도중 남편에게 톡이 왔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쓸쓸했는지? 어서 와~~

타이빈까지 너무 멀게 온다며 

중간지점 남딘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이미 표는 타이빈까지 끊었는데... 어쩌라고?

ㅠㅠ 기사님께 부탁하자니 애매했다.


옆자리에 앉아있는 미모의 아가씨에게

더듬더듬 벳남어와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중간지점에서

내리게 되었다. 아직 세상곳곳엔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휴~다행이다.


해가 어스름하게 져서 조금 컴컴하다.

남딘 근처 정류장이 아닌 낯선 나무아래에

차를 세우더니 곧장 걸어가라며( 디보 )

리무진 차는 나를 내려주고 쌩~~ 가버렸다.


옴마야 ~~ 여긴 어디?


남편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차에서 내렸어요 그리고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웃으며 뒤를 돌아보라 한다.

"어허! 기막힌 타이밍? "

내가 가는 그 길에 그가 나타났다. 정말?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그가 웃고 있다.

이건 뭐?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역시 30년 내공이 빚어낸 텔레파시? 살아있네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5일 만이다.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길에서 나를 픽업하는 일은 처음 인지라

남편은 어디쯤에 내릴지 예상했나 보다

별거 아닌 일에 서로 감동하기는...

여기는 타국땅이니  그럴만하다.


오늘저녁메뉴는 갈치조림에 된장찌개다.

남딘 한국식당으로 향했다. 오케이 ~~

갈치조림과 된장국 (베트남 남딘)

콩나물 무침과 오이부추김치를 곁들인

한 끼 식사는 입도 마음도 즐겁게 해 주었다.

무를 깔아놓은  비릿한 갈치조림이 엄마의 손맛 같다.


남편의 몸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국과 손바닥만 한 케이크를 사두었다.

기다리며...  또 감동!!

올해 마지막 투투데이(22일) 라며....

만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무한가치의 행복을

마음속에 저장했다.


오잉? 아픈 사람 맞아? 이게 다 뭐야?


영상 20도 ~넘는 베트남에 크리스마스는

카페에 꾸며놓은 겨울 모습뿐... 덥다. 더워

얼음 듬뿍 오렌지주스와 레몬차를 시켰다.


얼음 주스에 꼬마 산타 케이크라니...

안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감기 걸린 남편의

엄살에 또 속았네 하며 웃었다.


얼음쥬스와 산타

그나저나 꼬마 산타케이크 어떻게 먹지?

귀엽긴 했으나 어디부터 먹을까?

"얼굴부터 이렇게... 파먹는 거지..."

 남편이 작은 숟가락으로 듬뿍 퍼냈다.

하하하 머리는 남겨두고 이렇게

이런이런.... 볼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뭔가 미안한 이 마음 그런데

먹을수록 폭신한 크림과 빵맛이 좋다.

3천 원의 행복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크리스마스라 케이크값이 여기도 장난이 아니다.

저렴한 가격 가성비 굿이고  챙겨둔 마음 백점이다.

홀쭉한 꼬마산타

저녁도 배불리 먹었건만... 계속 들어가는  

마법의 위를... 어쩌면 좋을까나?

눈과 코까지 야금야금... 파 먹었다.

더 이상은 못 먹겠다며... 무언의 손짓

드라마에서는 연인들의 알콩달콩 대사가

있지만 우린 눈빛, 손짓 만으로 대화가 다 된다.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낯선 땅 남딘카페에서

잠시  머물렀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가끔은 준비되지 않은 깜짝 만남이

뜻하지 않게 작은 설렘을 주었다.

오래된 연인 가난한 연인이 되어서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오고 있어서 그런가?

마음 한편이 쓸쓸하던 차에  남편의 감기가 고맙다.

감기 덕분에 함께 같은 공간에 있으니 말이다.

걸어둔 불빛전구처럼 따스했다.

26층 남딘타워 에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을 살 수 없고

사랑하는 마음, 서로를 위하고 애쓰는 마음

함께했던 추억을 가질 순 없다.


럭셔리하고 멋지고 드라마틱한 장면만

꿈꾸지만 살다 보면 이런 아련한 장면도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된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고

엑스트라여도 좋다.

서로를 응원하며 희망을 꿈꾸고

힘든 시간들을 지혜롭게 잘 지내면

더더 멋진 날에 두 배의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고 믿기에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날밤 감기약을 먹고 잠든 남편옆에서

한편의 드라마를 찍은듯 피로감을 느꼈다.

가끔은 드라마틱한 삶을 사랑해 보자

내 삶에 주인공은 나니까 ~~


드라마틱한 이야기 2부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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