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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Dec 29. 2022

드라마틱한 이야기 2

하노이에서...

"여보 괜찮아?"

"아니 아니 코도 목소리도 다 잠겼어"

"어쩌나ㅠ?"

"기침도 나고, 콧물도 나고, 감기약을 

먹었는데도 가래도 여전히 있고 

냄새도 못 맡아ㅠ"


날씨가 추워져 독감인가?

여름나라에서 감기에 걸렸다. 갑자기

아침저녁 추워지니 옷 입기가 애매했다.

이미 열흘이 지나가고 있으니 나을 때도 된 듯

한데 남편의 감기가 떨어질 생각이 없다.


통역사는" 사장님  일단 의사 부를까요?"

"오잉? 뭐라고? 의사를..."

"병원에 가면 사람도 많고, 기다려야 해요"

친정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통역사는 자주

집으로 의사를 부르곤 한다며 우리에게

거래처 공장 사무실로 가자며 데려갔다.


잠시 후 출장의사가 진짜 나타났다.

청진기를 꼽고 진찰을 한다.

아무 의심도 없이 남편은 옷을 위로 올렸다.

2022년 12월인데... 1970년대를 보는듯한

모습은? 드라마틱한 2부 이야기다.


"이거 이거 믿어도 되는 건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의

눈동자는 위로 아래로 스캔을 하는 중이다.

뾰족한 대안도 없지만 일단 사진을 몰래 찍었다.

행여나 생길 염려 방지 차원에서다.


허름한 점퍼차림에 왕진 가방을 싣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신 이분이다.

"나 떨고 있니? 아프겠지..."

 통역사를 통해 몸상태를 듣고는 다짜고짜

주사기에 고농축 영양제를  두 개나 섞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여 의심의 빗장을 풀었다.

베트남 타이빈 왕진 의사 선생님과 가방


"정말 괜찮은 걸까?"

의심반 걱정반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무방비상태에서 남편은 엉덩이에 주사한방을

맞았고, 귀여운 대일밴드를 붙였다. 

웃음이 다.

남편의 일그러진 표정에서 아픔이 보였다.


"웃지 마셩, 엄청 아파 당신도 맞아볼래?"

엉덩이를 연신 비비며 왕진비를 묻는다.

오토바이 기름값도 안 되는

십만 동(한화 5~6천 원)을 받으시고

왕진 오셨던 분은 돌아갔다. 감기는 과연

도깨비방망이라도 잡은 듯 뚝딱 떨어질까?

어이없지만 여긴 베트남이니까 기다려보기로 했다.


졸릴 수도 있으니 운전하지 말란다.

우린 하노이로 가야 했지만 하루 더 타이빈에서

쉬기로 했다. 감기엔 영양보충이 최고! 라며

내가 좋아하는 연어초밥과 김치가락국수를

먹으러 베트남 속 일식집에 들렀다.


주사한방을 맞고 기분도 마음도 살짝

찝찝했지만 그런대로 상태는 양호했다.

타국살이는 가끔 의심이 생기는 일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순응해야 되는 일들

그래도 통역사의 왕진은 좀 효과가 있는 듯

우리는 굳게 믿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나저나 ㅎㅎ 갈아입을 옷도 가져오지 않았다.

1박 하고 가려던 계획은 바뀌었고 2박을 하기로

했으니 옷가게에 들렀다. 여기는 여자들이

모두 쌀국수처럼 날씬하다 못해 말랐다.


보통 M사이즈나 L사이즈는 적어서 못 입는다.

최소 XL 정도는 돼야 한국인 여자 보통사이즈다.

옷은 많은데 사이즈가 안 맞아 사기가 힘들다.


백화점이나 큰 매장에 가면 옷을 살 수 있지만

남편이 주사를 맞았기에 일식집옆 허름한 옷가게

에서 벳남여인이 추천하는 옷을 샀다. 괜찮다.

신호등도 없는 곳에서 무단횡단을 하고

싸구려 옷을 사들고 신이 났다.


그래도 땀내 나는 옷을 하루 더 입기보다는

싸구려 새 옷이 훨씬 좋다. 핑크빛 촌티 나는

티셔츠에 검정바지를 사고 양말도 샀다.

주사도 맞고 영양보충도 했으니 꿀잠을 잔다.

그다음 날 한번 더 왕진을 오셨다.

두 번째 만나니 의심보다는

감기가 뚝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바쁜 일정을 두루두루 챙기며 따라다녀보니

애쓰고 있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그 와중에

국화꽃향기가 차 안에 득했다.

먹다 남은 작은 물병에 꽃을 꽂아두었다.

 차 문짝에 세워두었더니 안성맞춤이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두었다.

22일에 받은 꽃
28일 아침

생생하게 소국이

향기를 발하며 화병에 꽂혀있다.

드라마틱한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로맨스 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남편의 감기는 덕분에 좋아졌고

연말을 잘 보내고 새해 맞을 준비로

바쁘게 살고 있다.


모두가 행복한 연말연시가 되시길

늘 함께해주시는 구독자님, 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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