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1호의 운명은?

4 월과 5 월사이 나는?

by 아이리스 H

혹시 여러분은 보물이 있나요?


내 추억을

팔 것인가?

말 것인가?

두구두구두구

베트남에 올 때 한국에 남겨둔

추억의 물건! 보물 1호의 운명은?

빰 빰 빰 빰~ 운명교향곡이라고 울려야 할 지경입니다.


궁금하시죠?? 바로! 바로! 바로!

피아노입니다.


그동안 대학생이었던 큰아들이 한국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제가 두고 온 한국 짐을 맡아 생활했지만 이제는 취업도 하였고 혼자만의 삶을 꿈꾸며 독립을 원합니다.그래서 찬밥 1순위가 되어버린 피아노의 운명은 어찌 될지? 아직 미정입니다. 피아노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팔려고 내놓으니 헐값이고, 간직하려니 이사를 해야 해서 급하게 한국행 티켓을 끊었답니다. 이 시국에...

피아노를 위한 집을 마련하려고? 누가 보면 할 일도 없구나! 하겠지만 나의 보물 1호는 내가 직접 팔거나 드림하거나, 그냥 간직하거나, 내가 해결해야 할 일라서 ..이사의 달인은 국제 파출부로 잠시 변신을 꿈꿉니다.

피아노의 역사가 30년! 추억도 30년! 함부로 보내기엔 마음이 좋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급행열차도 아니고 급 비행기 티켓을 끊고 한국 귀국을 준비하려니 무척 바빴답니다. 수업도 마무리해야 하고 이것저것 챙기고 비우고 하노이 집도 대충 청소를 해놓고 가야 하니 일거리가 너무 많아졌지만 보고픔이 그리움 된 시간들이 벌써 2년이 넘어가고 있으니 용기를 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코로나가 여전히 진을 치고 있으니... 가는 길도 쉽지 않고 다시 돌아오는 길도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에 쉽지 않은 결정을 했습니다. 쿨~~~ 하게 한국행 비행기를 오늘 밤 4월을 보내며 5월을 맞이하는 시간에 비행기 안에 있을 예정입니다.

비행기 타기 전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습니다. 72시간 안에 별다른 증상이 없어야 비행기를 탈 수 있고 검사료 2백만 동쯤(한화 10만 원)을 들여서 출국 준비를 마쳤습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고 빨갛고 둥근 도장도 꽝꽝 받았습니다.


피아노 핑계로 한국으로 잠시 휴가를 갑니다. 일단... 인간 보물(큰아들)도 만나야겠지요??ㅎㅎ






충청도 작은 마을엔 피아노 학원이 한 곳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하나둘 노랑 피아노 가방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고 나도 엄마에게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하지만 나의 생떼는 가망이 없어 보였고 급기야 나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또한 통하지 않았습니다. 머리에 띠만 두르지 않았을 뿐... 밥을 굶기로 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엄마는 마음이 약해졌고 고집 센 딸에게 엄마는 백기를 들었습니다.


4남매 키우기도 버거운 살림에 엄마의 주머니 사정도 모른 채, 난 드디어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노랑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갔다가 수업을 마치면 피아노 학원으로 달려갔던 나는 친구들이 양손을 칠 때 나는 겨우 한 손으로 건반을 누르며 신이 났고 행복했습니다.


하얀 건반을 누르며 바이엘 상권을 마치고, 하권을 마치고, 드디어 체르니에 입성했으나 중학교 입학을 하면서 공부와 피아노를 병행하는 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농성을 부리며 어렵게 얻어낸 혜택을 선뜻 내려놓기 싫어서 힘들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피아노 선생님의 한마디" 너는 다른 친구들보다 손이 작고 손가락도 짧아서 전공은 힘들 것이고 기교를 부리기에도... 너는 차라리 공부나 열심히 하는 게 좋겠다" 진실을 말해준 선생님이 너무 미웠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이 길고 예뻤던 친구들에 비해 진도도 늦고 나에게도 한계가 왔는지? 몸살감기에 옴팍 걸렸고 열정도 열망도 사라졌습니다. 체르니 30번을 치다가 도중하차를 했고 함께 배우던 친구들은 피아노 전공에 기악전공, 작곡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피아노를 아름답게 치던 후배도 친구들도 그립습니다.


그러나 나의 욕심이었을까? 부러움이었을까? 피아노를 소유하고픈 생각이 또다시 꿈틀거렸습니다.

"결혼 안 할 거야 엄마. 돈 벌면 다 갚을게요. 피아노 좀 사주세요" "피아노가 얼만데?..." 전공도 아니고 그저 피아노 갖는 게 꿈이었던 나의 20대 청춘... 어느 날 엄마는 한 푼 두 푼 모아 놓은 쌈짓돈을 들고 아버지 몰래 서울로 올라와 내손을 끌고 피아노 매장으로 갔습니다. 여러 가지 피아노가 한눈에 들어왔고 나는 이것저것 눌러보며 피아노의 신세계를 처음 맛보았습니다.

KakaoTalk_20210430_082748052.jpg 2년전에 찍어둔 피아노!


하얀 편지 봉투 속에 고이고이 펴둔 지폐를 꺼내어 한 장 한 장 여러 번 세고 또 세고 떨리던 손으로 거금을 지불하던 엄마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철없던 딸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최고급 진갈색 영창피아노를 사주었습니다.엄마는 그 당시 이곳저곳 잡다한 알바로 밭농사, 논농사, 상여 꽃 접기, 봉투 접기, 장사 등...으로 돈을 모아서 그토록 딸이 갖고 싶다던 피아노를 ....


세상이 아름답다는 생각과 이 세상에서 울 엄마가 최고!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밥을 굶어도 배고프지 않았고, 길을 걸어도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이었고 매일매일 피아노를 치며 마치 피아니스트가 된 것처럼 연습하고 매일매일 광을 내서 닦아주며 호호 입김을 불어주며 반짝반짝 빛나는 내 피아노는 엄마의 피땀 어린 선물이고 사랑 이었음을 알기에 더욱 소중했습니다.



언니가 시집가고, 남동생들이 군대 가고, 난 혼자서 사는 게 너무 지루하고 심심해서... 피아노를 갖고 싶었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혼자서 열심히 피아노를 치며 외로움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남편을 만났습니다. 피아노보다 좋은 사람! ㅎㅎ엄마에게 돈 벌어 피아노 값을 갚겠다던 약속을 잊고 난 사랑에 빠졌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그날 이후 피아노는 작은방 한쪽 구석에 먼지를 뽀얗게 쓰고 뒷방신세가 되었습니다. 피아노를 사고 1년 후, 난 결혼을 했고 피아노는 뚜껑이 닫힌 채로 맞벌이와 육아로 바빴던 나를 이해해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피아노는 연중무휴 뚜껑이 열린 채 쉬는 날 없이 바쁘게 소리를 냈습니다. 작은아들은 연주회에서 최우수상을 탈 만큼 실력이 쑥쑥 늘었습니다. 큰아들은 피아노를 배우다가 포기했지만 동생의 끊임없는 피아노 연습 덕택으로 귀동냥을 해서인지? 몇 곡 정도는 명곡을 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나의 작고 짧은 손가락을 안 닮은 크고 길쭉한 손가락을 가진 두 아들은 피아노를 즐겼고 좋아했습니다.

그런 세월을 함께한 피아노를 어찌 그냥 보낼 수 있단 말입니까? 베트남으로 가져올까? 무모한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친정엄마의 사랑과 나의 애착으로 일단 피아노의 운명은 좀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몇번의 갈림길에서 살아낸 오래된 나의 피아노!!


생명이 없다고 헌신 버리듯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막 처분하기에는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고 간직하자니 칠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덩그러니 주인만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럴까? 저럴까? 진짜 고민이 많습니다. 아직 결정은 애매하게 해 두고 일단 한국에 가기로 했습니다.


외롭고 힘겨울 때 나의 벗이 되어 주었던 나의 꿈 많은 20대 첫 보물이었습니다. 내가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피아노가 짐작이 되다니... 그럴 순 없어! 그래도 30년 묵힌 추억이 깃든 피아노에게 직접 작별인사는 하고 떠나보내야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보물 1호를 만나러 갑니다. 영양제 듬뿍 먹고 ~~


우리 아들들의 즐거움이 되어주고 우리 집 보물 1호로 굳건하게 30년의 세월을 함께했고 이사할 때마다 큰돈을 지불하고도 거실이나 방안 최고 자리에 배치했건만 이제는 짐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귀로에서

이제 누군가에게 보내줘야 하는건지? 좀더 소유 해야 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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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운명은? 어찌 될 건지? 빰! 빰! 빰! 빰~~


4월아 잘가라~ 5월아 어여와!!

벳남아 잘있어라~ 한국아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