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도 꽃을 피운다?

거미줄과 함께

by 아이리스 H

"꽃길만 걸으세요"


"그러게~ 나도 그러고 싶은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꽃은 나에게 삶의 에너지를 준다. 혹독한 추위를 견딘 봄꽃은 그래서 더더욱 힘이 있고 아름답다. 하지만 어찌 인생에 꽃길만 걸을 수 있겠냐? 반박이라도 하고 싶다.

잡초가 무성한 자갈길도... 울퉁불퉁한 비포장길도... 지나야 꽃길의 참맛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가의 불빛 가로등과 반원형 조명 꽃길도 좋아한다. 시들지 않고 반짝반짝 언제나 나의 가는 길을 비춰주니까 말이다. 그래서 가끔 이곳(타이빈)으로 주말 저녁 남편을 따라 시골로 가는 길을 따라 나선다.

차 안에서 휙 찍어서 희미하다

예쁜 시골길을 따라 어둠을 밝히는 오색 무지갯빛 가로등은 내 취향을 저격했다. ㅎㅎ벳남은 그렇다.

나무에도 불빛을 감아놓았고 광장이나 공원에도 오색빛깔 등을 달거나 치장하여 보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


나무들에게는 살짝 미안하지만 뜨거운 나라여서 그런가? 나무들도 푸릇푸릇 밤까지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게 나빠 보이지 않는다.


운전하느라 피곤해하는 남편에게 레몬사탕을 입에 넣어주고 행여 졸음운전이라도 할까 봐 쫑알쫑알 수다도 떨어주고 가끔 흥얼흥얼 노래도 불러준다.

10개쯤 줄지어 나의 길을 밝힌다.

핸드폰을 켜고 따라 부른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 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양인걸

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 해....


어느새 허름한 휴게소에 도착했다. 가끔 커피나 코코아를 먹기도 하고 몽키 바나나를 사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만동(한화 500원)에 6분 마사지 의자에 둘이 나란히 누웠다. 생각보다 힘이 세다. 어쿠야!! 남편은 그사이 눈을 감고 즐긴다. 뭉친 근육이 풀린다며 시원하다고 한다.


난 등을 떼고 '아니, 이게 뭐야? 피로 푸는 기계야? 아프다고 살살 두드려라"말하고 싶지만 아무 말 못 하고 안마의자에 앉아 곤욕을 치른다. ㅎㅎ 돈을 넣었으니 무조건 참으며 앉아있다. 아! 6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졸랑졸랑 남편 뒤를 따라가 보니 한국 아이스크림을 판다. "내 것만 사는 건가요? 당신은?"

"응, 나는 오렌지 주스"

인적이 드물고 저녁이라 냉큼 차에 올라탔다. 달달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나는 50대 아줌마다. 이런 맛에 따라오는 거다.


옛날이야기(과거)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그땐 그랬었지...""맞아, 왜 그랬을까?" 1시간이나 가야 하는 길 위에서 우리는 잡초처럼 살아온 인생을 풀어놓으며 웃고 있다. 하하하, 호호호 웃음소리와 함께 어느새 집 앞 카페 앞에 주차를 시키고 내렸다.


"신짜오 미스타 김""신짜오 마담" 반가움에 카페 직원은 인사를 한다.


따뜻한 짜잉 네오(패션후르츠) 한잔 속에 불빛도 따라왔다. 운전 2시간 만의 피로를 풀며 잠시 쉬어 간다. 반짝임이 가득한 밤길을 지루하지 않게 달려왔다. 꽃길도 좋았고 크리스마스 같은 작은 전구들의 향연도 좋았다.


사실, 월세로 얻어 놓은 이 집(타이빈)은 비만 오면 작은방 천정에서 비가 새고 눅눅해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어 짐 정리를 하러 온 것인데 주인은 비가 새도 괜찮다며 우긴다. 쾌쾌한 냄새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 고칠 수가 없는 건지? 그냥 나가라고 한다.


벳남에서의 이사는 그나마 풀옵션 집인 데다 이사 달인이 되어 있어 조금 쉬운 편이다. 그래도 이사는 늘 신경 쓰인다. 다행히 2주의 시간이 남아있다.오늘은 일단 자기로 했다.


그다음 날.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베란다로 향했다.


"어머나, 세상에 이럴 수가..."


잡초 꽃이 피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이곳까지 날아온 풀씨가 집주인이 버리고 간 이름 모를 죽은 꽃나무 가지 사이로 화분 속에서


연초록빛으로 빽빽하게 화분을 가득 채워놓았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쑥쑥 자라서 꽃이라 말하긴 그렇지만 나름 꽃이라 말해주고 싶다.


'잡초도 꽃을 피운다?'


내가 심어놓은 나비 난도 있는데 잡초 속에 묻혀있다. 쯧쯧 아니 하하하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뒷베란다에서도 홀로 주인을 기다린 걸까? 죽은 나뭇가지를 보이지 않을 만큼 덥고 있는 잡초가 만발했다.

여름이 되면 비가 많이 내려 또 물바다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작년에 그 일을 겪고 나가려 했지만 그냥 좀 더 살게 되었고 이제는 아쉽지만 이사 가기로 했다.


그동안 정이 들었다. 비만 새지 않는다면 오래 살았을 터 맘에 드는 집이었다. 우리는 주인이 방치해 버린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고 새싹이 날줄 기다렸지만 끝내 잡초가 점령해 버린 화분을 바라보며 이 집을 포기했다. 주인은 비 새는 것을 고치려는 마음도 없었고 물바다가 되었던 집을 촬영해 보내줘도 별 반응이 없었다.


어느 날 집이 물바다가 되었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사는 동안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불안했던 이 집은 이제 그만 철수하기로 했다. 베란다 화분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고 꽃까지 피워 내가 떠나기 전 나의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살짝 거미줄까지...


"잡초야, 고마워! 한결 기분이 좋아졌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꽃을 피웠구나!"


예쁜 꽃의 수명은 3일, 잡초의 수명은 3개월? 환경을 탓하고 부모를 탓하고 남의 탓으로 나를 합리화 하기에 익숙했던 나는 잠시 반성을 해본다. 또다시 짐을 챙겨 이사 갈 곳은 비가 새지 않는 곳이길 소망해 보면서...



베란다 문 앞, 타일 바닥 틈을 뚫고 나온 잡초도 보인다. 누군가가 심지도 않았지만 싹을 틔우고 잎을 내는 강인하고 끈질긴 잡초의 삶을 응원한다.


돌 보는 이도 없고 흙을 건넨 이도 없건만 자연의 한 줌의 햇빛과 바람, 공기 그것만으로 싹을 틔우고 잎을 낸 것처럼 우리도 그리 살 수 있다면... 부자의 부모를 만나지 못해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꿈들이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나 혼자서는 너무 힘들어 누군가 나를 도와줄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라고 신세를 한탄하고 세상을 탓하는 건 참으로 어리석음을...


꽃이 피어나는 시기는 모두 다르다.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시들고 늦게 피는 꽃은 늦게 시드는 것이며 언젠가 꽃은 피어난다고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 번쯤은 꽃을 피워 봐야 하지 않을까? 잡초도 누군가 꽃이라 인정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꽃을 피워 냈듯이 나도 그런 삶을 응원하며 따르고 싶다.

KakaoTalk_20210412_201152454_01.jpg 베트남 타이빈 빈컴센터 앞


온몸을 작은 불빛으로 감싼 나무들에게 감사하는 하루다.

그리고 잡초에게서 끈질긴 생명력을 전수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