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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Feb 20. 2024

말마니우스 & 잠마니우스

베트남 하노이 땀따오 여행~


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전날


하노이는 오랜만에 파란 하늘을 선보였다.

흐린 날엔 늦잠자기 좋았 (휴가 중)

맑은 날은 맑아서 돌아다니기 좋았단다.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라서 더 좋았다.

멋진 여행보다 단잠을 택한 아들 덕분에

준비해 놓은 여행경비는 많이 남았다.

1박 2일 짧은 여행을 두 번 정도 다녀왔고,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아들에게

당일치기 땀따오 여행을 제안했다.


18일이 이렇게나  빨리 지나갈 줄이야~~


말마니우스 엄마와

잠마니우스 큰아들의 이야기다.

막둥이는 감기기운이 있어 가지 못했다.

오랜만에 아빠, 엄마, 아들 셋이서

오붓하게 소풍 갈 채비로 바빴다.

말마니우스 ? 엄마는 어쩌다가

이런 별명을... 갖게 되었을까?


어릴 적 나름 문학소녀였는데... 말이다.

책 읽고, 글 쓰고, 음악감상하며 조용히

그림 그리며 우아하고, 럭셔리하게

살 줄 알았는데... 세월에 휩쓸려 나도 변했다.

남편 케어하랴? 두 아들 케어하랴?

워킹맘으로 살아가랴? 바쁘다 바빠서

 없는 남자들 틈에 분위기 맞추려다? 땡!

말 많은 남자들 틈에서 살아남기 하려면


말마니우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잠마니우스 아들은 부지런했는데...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며 늦도록 공부한다고

잠을 자지 않았다. 다들 그러고 산다지만..,

그렇게 정신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고,

군대를 다녀온 후 알바와 학업을 이어갔다.


말마니우스 엄마는 베트남으로 가게 되었고,

잠마니우스 아들은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며

독립만세를 부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고 말한다.

말마니우스 엄마의 빈자리는 그리움이었고

잠마니우스 아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면서 그리움을 잊은 채 쪽잠을 잤다고 한다.


5년의 시간이 덧없이 흘렀다.


말마니우스 엄마는 침묵의 시간을 즐겼다.

잠마니우스 아들은 열라 취업준비를 하며

잠을 줄였다. 사회초년생이 된 지 2년 차

휴가의 반을 잠으로 보충하였다.

말마니우스 엄마는 답답했고

잠마니우스 아들은 평온했다.






베트남 하노이 땀따오로 출발!!


"아빠 내가 운전해 볼까?"

"진짜 그럴래?"

"안돼, 여기는 신호등 잘 안 지켜~

오토바이도 많고, 운전 아무나 못해"

"벳남 면허증도 있어야 하고..."

농담처럼 건넨말에 일격을 가했다.

둘 다 깨갱깨갱 말마니우스의 완승이다.


잠마니우스는 차 안에서의 달콤한 잠대신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빠와 잠마니우스 아들은 신이 났다.

주거니 받거니 한 소절씩 나눠 부른다.

우리 집 남자들은 흥 부자다.

(이럴 때 마음이 척척 잘 맞는 듯 보인다)

나도 추임새를 넣으며 따라 부른다.


아이코!! 어쩌누??


웃고 떠드는 사이 길을 잘 못 들어섰다.

큰길로 갔어야 했는데 좁은 길로 들어섰다.

"아빠, 운전 잘하셔야죠~~

 네비 잘 보는 것도 실력인데요"

"야야 노래하다 그런 거잖아 임마~~"

농담이 잘 안 통하는 아빠는

아들의 한마디에 마음이 꽁꽁 얼었다.


조용해진 차 안에서

단팥빵을 아들에게 건네며

"빵이나 드셔~~"

마니우스도 입안에 사탕하나를 넣었다.

달달한 것이 들어가니 마음이 살얼음 녹듯 한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도 빵빵하게 채우고

우리는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여기는 베트남  땀따오 도착.


배고프다.


연휴기간 여행객들도 벳남인들도 많았다.

벳남 식당에서 메뉴를 시키고 어림잡아

30분 넘게 기다렸다.

서빙하는 사람도 안 보이고, 주문받은

직원도 안 보이니 참 난감했다.

캔슬하고 나갈까? 고민 중인데...


수수볶음 한 개만  덜렁  나왔다.

수수볶음

땀따오에 오면 꼭 어봐야 한다. 수수볶음!

한국의 나물볶음 같은 건데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연한 부분을 마늘과 함께 볶는 요리다.

그런데 연휴라서? 너무 성의 가 없다.

그냥 기름 두르고 나온 듯 뻣뻣했고 맛이 없다.


배고프다.


맛이 있 맛이 없든 배고픔이 먼저다.

수수볶음 접시가 다 비워가는데... 다음

메뉴가 안 나온다.

"배고파요. 빨리 주세요"

계란말이 시켰는데 계란 부침개가 나왔다.

밥도 안 준다. 계속 불만스럽게 남편이

카운터에 가서 말했다.

"그냥 나가서 다른 거나 먹자고~"

말하고 나니 기다렸던 껌람(대나무 통밥)

3개 나란히 나왔다.

대나무 밥(껌 람)

껌람 추천메뉴~닭고기나 돼지고기와

함께 먹는 산악 소수민족들의 특산물이다.

쫀듯하고 고소한 찹쌀밥맛은 좋았다.

엉뚱한  시킨 남편의 주문 때문에

고기와 죽순이 잔뜩 들어있는 뚝배기를

받고 이상야릇한 맛을 보게 되었다. 우웩!!


"아빠,  주문한 거예요~ 이건 뭐지?"

"동생을 데리고 왔어야 하는데..."

맛난 메뉴를 잘 시키는 동생은 부재중ㅠㅠ

남편의 낯빛이 살짝 안 좋아 보였다.

결국, 우리는 주문한 콜라도 패스하고

뚝배기도 그대로 남긴 채 식당을 빠져나왔다.


말마니우스는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켰다.





우리는 100년 넘은 성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늘도 오늘은 청명하고 맑다.

여행은 날씨가 좋아야 기분도 따라 좋아진다.

잠마니우스의 취미는 영상 편집이다.

사진을 잘 찍는 편이다. 하지만

아빠는 직업상 특정 사진을 찍는 반면

(옷에 문제가 생긴 것들, 오염자국 등등)

인물배경 사진은 꽝이다.


180이 넘는 키 큰 아들을 난쟁이처럼

찍어놓고 상반신을 자르거나

머리끝을 자르고,  발목을 자르고

배경위주로 찍는다. 인물위주로

찍으라 하면 얼굴을 달덩이처럼

클로즈업을 시켜 맘에 안 들게 찍어준다.


배경이 너무 멋지다며 우리를 개미 만하

찍어서 누가 누군지도 모르게 찍는 재주가 있다.

표정도, 모습도, 포즈도 잡으라 안 하고

그냥 막 찍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며...

그러나 요즘 MZ 세대를 모르는 탓

아들은 할 말을 다한다.

" 아빠, 제발  사진 찍지 마세요!"

너무 못 찍는다고 타박이다.


아들은 갑자기 나에게 사진을 찍으라 한다.

나도 시험 보듯 손이 떨린다.

각도, 구도, 잘 잡아야 한다.

침 꿀꺽 삼키고, 하나, 둘, 셋! 찰칵!

아빠보다는 잘 찍은 모양? 합격인가?

아쉬운 입술모양을 보니 별로 인가보다.

에구~ 눈치 보며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다.


내일 한국으로 들어가는데 굳이 잘잘못을

따져서 기분상하게 할 수도 없고  쩝!

말마니우스도 말을 아낀다.

사진 찍기 아들이 잘 찍는 인정!

우리는 연예인, 아들은 사진사 하라고 했다.

잠마니우스의 작품


잠마니우스 살아났네 살아났어~


자신감이 생겨 목소리에서도 힘이 있고 커졌다.

자존감도 살아났는지 말도 잘한다.

잠만 자는 모습보다는 어쨌든

밖으로 나와 세상과 맞서며 자기 존재감을  뿜뿜

알리며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훨씬 나아졌다.


어리광을 부리고, 애교 많았던 아들이

사회초년생을 지나며 많이 변했다.

말도 안 하고 , 웃음도 사라진채, 그저

잠만 자려하고, 믿을 사람이 없다며... 우울했다.

하노이로 달려왔지만 30이 넘은 아들에게

나도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답이 없었다.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땀따오에서

땀따오에서 아들과 아빠는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서로 사진을 또 찍어주고 있다.

뷰는 좋지만 저 밑 낭떠러지가 보인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모두 아슬아슬하다.

티격태격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우는

부자지간을 연결하는 말마니우스의 중재역할은

쭈욱 계속될 예정이다


세상 속 말마니우스 엄마들이여!

잠마니우스 아들들이여!

아프지 말고 건강하소서!


한국으로 국 전

여행 다녀오길 참 잘했다.

아들은 아빠에게 기습 뽀뽀를 하고 떠났다.

둘이서 부둥켜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데... 눈물이 났다.

잠마니우스는 잠에서 깨어났고

말마니우스는 말을 줄였다.

한국으로 출국하는 아들 (2024년 2얼 13일)

18일간의 휴가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갔다.

시끌벅적했던 집안이 조용해졌다.

잠마니우스의 일상복귀를 응원한다.

또다시 잠이 부족해지면 언제든 오너라~

배낭 하나였던 아들은 케리어에 선물을

가득 채워서 한국으로 돌아갔다.


※  땀따오는 하노이에서 차로 1시간 조금 더

걸리며  알록달록 예쁜 집들이 있고 산악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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