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서운한 사람

by 강호연
주변에는 요즘 서운한 사람밖에 없다.



나는 생각보다 자주 내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는 편이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있어도 손이 먼저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메시지창을 열어두고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닫는다.

“용건도 없이 연락하면 너무 갑작스럽나?”

“뭐라고 시작하지?”

“괜히 방해되는 건 아닐까?” 같은 생각을 쌓다 보면,

결국 오늘도 보내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난다.


그게 반복되면, ‘연락을 안 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문책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향해 되돌아온다.


오랜만에 연락한 가족은 “잘 지냈어?”라고 먼저 묻지 않는다.

대신 “너는 왜 이렇게 연락이 없니?”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반갑게 웃다가 금세,

마치 준비해 둔 대사처럼 “나 진짜 서운했어”를 꺼낸다.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미안, 정신이 없었어”라고 말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묘한 죄책감과 억울함 사이에 서게 된다.


이상한 건, 나는 그들에게 서운하지 않다는 점이다.

연락이 없었다는 건 상대방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연락이 없었던 시간이 내게는 곧 ‘사이가 멀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냥 시간이 흘렀고, 나는 살아냈고, 그들도 살아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연락을 받아도 나는 “그동안 많이 바빴나 보다” 정도로 넘어간다.

서운함 대신 이해가 먼저 나온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연락의 빈자리는 곧 관심의 빈자리로 바뀐다.

그리고 관심의 빈자리는 ‘나를 가벼이 여긴다’로 오해하기도 한다.


연락이 잦고, 감정을 바로바로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연락은 체온 같은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를 주고받으며 “우리 아직 연결돼 있어”를 확인한다.


반대로 나는 연결을 확인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자주 말하지 않아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내주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마다 “아, 이 사람은 잘 지낼까” 하고 생각한다면,

이미 마음속에서는 연락이 오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생각이 상대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연락한 가족이 “너는 우리를 생각 안 하니?”라고 묻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힌다.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다.

오히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연락을 못 한 날도 있다.


괜히 연락했다가 걱정을 끼칠까 봐,

내 말이 짐이 될까 봐,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할 용기가 없어서,

혹은 내 기분이 애매한 상태에서 말을 꺼내기 싫어서.


이 모든 이유는 ‘관심이 없어서’와 거리가 멀다.

그런데 결과만 놓고 보면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나는 그 간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설명을 시작하는 순간 변명이 되는 것 같고,

변명을 하면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결국 “미안해”로 마무리한다.



상대의 서운함이란 감정은 나에게도 상처를 준다.

“서운해”라는 말은 부드럽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너는 나를 챙기지 않았다”는 판단이 들어 있다.


내가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이 무겁고,

동시에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억울함이 밀려온다.


어쩌면 나는 연락을 ‘일’처럼 여겨서 더 어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연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의무는 종종 미뤄진다.


그러다 보니 나는 “연락을 드려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이미 늦었다는 감각을 함께 갖게 된다.

늦었다는 감각은 부담이 되고, 부담은 침묵을 부른다. 악순환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감정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내가 연락을 못하는 건 성격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고 싶을 때가 있었다.

다만 나는 그 마음을 ‘서운함’으로 표현하는 대신, 조용히 혼자 삼키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서 상대가 내 마음을 모르는 것처럼, 나 역시 상대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누가 더 옳은지 따지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를 이해해 달라고만 할게 아니라, 나도 상대방을 이해해야 관계가 유지된다.

그들이 나를 좋아하는 마음만큼 서운함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그 마음이 너무 고맙다.



내 마음의 방식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때, 나 자신이 숨을 쉰다.



관계에서 숨통이 트일 때,

조금씩 상대에게 맞춰져간다. 아주 느리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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