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 새로 왔다.
얼굴은 아직 학생 티가 남아 있었고, 낯선 곳에 어색하게 앉아 있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첫날부터 팀은 친절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점심 같이 먹을래요?”가 아니라 “뭐 먹고 싶어요?”로 시작했고,
커피도 “아이스? 뜨거운 거?” 같은 선택지까지 붙여줬다.
나도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점심과 커피까지 풀코스로 사주면서,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상대도 마음을 연다고 믿는 편이니까.
그건 업무용 환대라기보다 인간관계에 대한 내 나름의 신념이었다.
처음 온 사람을 외롭게 두지 않기.
회사에서 ‘환영받는다’는 감각을 주기.
나도 초년 때 그런 감각이 절실했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 누군가의 따뜻함이 버틴 이유가 된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몇 주 뒤, 점심을 먹고 회사로 들어오는 길에, 한껏 들뜬 인턴이 담담하게 말했다.
“박사과정이 다음 달부터 시작되면, 그때는 그만두게 될 것 같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당황이 먼저 올라왔고, 그다음에 계산이 따라왔다.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쏟은 시간은?”
“이 업무를 어디까지 맡겨야 하지?”
“남은 기간에 교육을 이어가는 게 맞나?”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급하게 줄을 섰다.
내가 인턴에게 쏟은 친절의 리스트가 엑셀처럼 펼쳐졌다.
점심 몇 번, 커피 몇 번, 퇴근길 잡담 몇 번, 질문을 받아주던 시간들.
그 리스트가 갑자기 ‘투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가장 싫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구석이 그렇게 반응했다.
차장님이 자리로 들어오며 낮게 말했다.
“먼저 퇴사 얘기를 꺼내네. 그럴거면 왜 들어온거야? 하... 앞으로 어떻게 하지?”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쿨한 사람처럼 답했다.
“적당히 일 주고, 퇴사할 때 웃으며 안녕하면 될 것 같아요.”
말은 그럴듯했다.
현실적인 결론 같았다.
회사는 계속 돌아가고, 사람은 들고 나는 거니까.
하지만 그 말은 절반만 진심이었다.
나머지 절반에는 ‘그렇다고 내가 상처 안 받은 건 아니에요’가 들어 있었다.
‘웃으며 안녕’이란 말은 사실 ‘내가 상처받은 티는 안 낼게요’에 가까웠다.
문제는 인턴이 너무 순진했다는 점이었다.
너무 일찍, 너무 솔직하게, 너무 해맑게 말했다.
마치 “저 오래 못 있어요”가 미안한 고백이 아니라, 일정 공유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순진함이 오히려 배신감으로 돌아왔다.
“그럼 처음부터 마음 닫고 들어오지,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만들었지?” 같은,
어린 마음 같은 원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날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생각보다 크게 화를 냈다.
“인턴은 알바가 아니잖아. 그런 마음으로 입사한 건 이기적인 거지. 네 기분이 충분히 이해돼!”
그런데… 정말 그게 전부일까?
요즘은 인턴도 살아남기 위해 계산을 한다.
인턴 자리 하나 얻는 것도 쉽지 않고, 박사과정도 인생을 걸고 들어가는 선택이다.
그 둘이 겹쳐졌을 때, 인턴은 “어차피 한 달짜리니까 안 들어갈게요”라고 말할 여유가 없다.
이력서의 한 줄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고, ‘사회생활 해본 경험’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한 달이 짧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한 달이 다음 달의 생활비이기도 하다.
인턴이 “저 한 달 뒤 나가요”라고 말한 건, 적어도 뒤통수는 치기 싫어서였을 수도 있다.
마치 얻어먹은 밥 값은 하겠다는, 최소한의 예의로.
그럼 내 배신감은 뭘까.
인턴이 잘못해서 생긴 감정이라기보다, 내가 기대를 해버려서 생긴 감정에 가까웠다.
‘우리가 이렇게 잘해줬으니 너도 우리 편이 되겠지’라는 기대.
‘정 붙였으니 좀 더 함께하겠지’라는 기대.
나는 그날 이후로, 내가 친절을 베풀 때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봤다.
나는 진짜로 아무 대가 없이 따뜻했나? 아니면 “좋은 관계”라는 결과를 기대했나?
만약 기대했다면, 그건 인턴의 문제라기보다 내 친절의 조건부 성격이 드러난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턴의 순진함이 무해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인턴이 조금만 더 섬세하게 말했으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까?
“정확히는 아직 확정이 아니라서요. 다만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업무 인수인계를 미리 신경 쓰고 싶어요”
순진함은 때때로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악의가 없어도.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친구의 말처럼 “이기적이다”로 단정하는 대신,
마음을 닫는 것이 아닌, 조금 더 어른스럽게 경계를 긋는 것이었다.
인턴에게는 남은 기간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주고,
배울 수 있는 것과 맡길 수 있는 것을 구분하기.
그리고 퇴사할 때는 정말로 웃으며 안녕하기—
그게 멋있어서가 아니라, 떠나는 사람을 미워해봤자 남는 건 결국 내 찌꺼기니까.
한 달짜리 인연에도 의미는 있다.
다만 그 의미가 “우리 편이 되어줘”가 아니라 “여기서 서로 예의 있게 지내자”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지켜야 할 건 내 친절의 품위고, 인턴이 배워야 할 건 솔직함에 곁들이는 책임감과 배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