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by 강호연

정신교육은 정확히 두 시간이었다.


회의실 공기는 무거웠다.

누군가는 메모장을 펴 놓았지만 실은 다들 적을 말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오후에 옆 팀에서 행사를 하고 남은 피자를 나눠준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위해 점심도 굶었기 때문에...


부서장은 방향을 알 수 없는 말들을 잔뜩 늘어놓았다.

“직원들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서”라는 표현을 앞에 붙였다.

그 말은 듣는 사람의 경계심을 풀어놓고, 그다음에 불편한 요구를 꺼내기 위한 밑밥처럼 들렸다.


요지는 단순했다.

새로 생긴 부서가 있는데, 우리 부서에서도 한 명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원자가 없으면 팀원을 차출해서 타 부서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니 눈치껏 "나다 싶으면" 지원하라는 것.

‘지원’이라는 단어는 자발성을 가장하지만, 결국 '네가 지원했으니 불만 말아라'로 귀결된다.


사람들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회의실은 조용했다.

반박이 없어서 조용한 게 아니라, 이미 마음이 한 번 닫힌 뒤의 조용함이었다


부서장은 목을 한번 가다듬은 후, 말끝마다 조직과 책임을 꺼냈다.

“조직은 서로 돕는 곳”이라거나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 같은 문장이 이어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당한 말도 아니었다.


과녁 없이 쏘아대는 부장의 화살에 모두가 맞고 있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염두하고 지원을 운운하는 것이며, 또 누구를 차출하려는 것인지 오리무중이었다.


그때 괴팍하기로 유명한 과장이 한마디 했다.


“할 사람이 없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걸 보완해야지 직원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면 됩니까?”


사람들의 숨이 얼어붙었다.

과장의 말투는 늘 거칠었고, 적을 만들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누군가를 공격하려는 말이 아니라 상황을 정확히 찍는 말처럼 들렸다.


아무도 고개를 돌려 과장을 탓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속으로 박수를 쳤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래, 그 말이 하고 싶었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서장은 못마땅한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대놓고 반박하진 않았다.


대신 방향을 틀었다.


우리의 업무 태도와 기타 등등, 아주 넓고 애매한 영역으로 화살이 옮겨갔다.

그 뒤로도 한참 말이 이어졌다.

업무가 어떻고,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고, 자세가 어떻고, 마음가짐이 어떻고.

“다 너희를 위해서”라는 말이 섞였다.


나는 그 시간을 견디면서 여러 번 생각했다.

사람들이 피하는 업무에는 대개 이유가 있다.

일의 양이 과하거나, 책임이 과도하거나, 평가가 불공정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떠넘겨지는 자리거나.


그 이유를 고치지 않고 사람만 움직이면,

잠깐은 해결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같은 문제가 다른 자리에서 터진다.


부서장은 그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자신의 자원(부서원)으로 윗분(?)의 신뢰를 얻고 싶은 욕심과

한편으로는 늘 얼굴을 마주하는 직원들에게 원망을 듣고 싶지 않은

부장의 모순적인 감정이 만들어낸 고통의 시간이었다.



두 시간이 끝나고 회의실을 나올 때,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직원들은 과장에게 말씀 잘하셨다고 격려했고 같은 감정이었음을 암묵적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다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각자의 일을 했다.

조직은 평소처럼 굴러갔다. 겉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그 시간은 관계의 균열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고

부장의 마음을 헤아려 자원하는 부서원들은 없었다.


작은 것들은 그분들의 사정을 알 수 없지만

관리자로서의 무게를 견디며 가장 적합한 직원을 선별하여

적당한 보상을 부여하며 부서 이동을 권유했다면 어땠을까.


회의 시간이 끝나고 부디나케 옆 팀으로 갔지만

피자는 모두 다 나눠주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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