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팀장에게 쌓인 불만을 꺼낸 날은,
사실 ‘용기 낸 날’이라기보다 ‘더는 버틸 수 없던 날’에 가까웠다.
나는 마음속에서 문장을 여러 번 고쳐 썼다.
“이건 건의다, 불평이 아니다.”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일을 말하자.
그런데 막상 입을 열자,
준비한 문장들 사이로 오래 눌러둔 감정이 새어 나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단순했다.
업무 지시 방향이 자주 바뀌고, 책임이 불명확하고, 결국 그 부담이 늘 팀원에게 내려온다는 것.
팀장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라고 했지만,
표정은 내 말을 ‘업무의 불편’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정확히 무슨 말이었는지 다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릿속에 남은 건 한 문장뿐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그 질문이 붙는 순간, 불만을 말한 내가 갑자기 ‘문제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AI에게 물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에는 부담스럽고,
혼자 품기에는 너무 커진 감정의 덩어리를 어디엔가 옮겨 두고 싶었다.
“팀장에게 불만을 이야기했는데, 기분이 너무 나쁘다.”
그러자 AI는 아주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라고.
상황을 객관화하고,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고, 다음 액션을 정리하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교과서 같은 정답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정답’이 기분 나빴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쁜데, 이건 어떻게 해소해?”
사실 그 질문은 ‘감정을 없애는 방법’이 아니라
‘이 감정이 정당하다는 확인’이 필요하다는 말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AI는 또 차분히 답했다.
이런 때일수록 무너지면 안 된다고.
감정에 휩쓸리면 관계도, 일도 더 꼬일 수 있으니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그 순간, 내 마음은 이상하게 외로워졌다.
마치 내가 지금까지 꾸역꾸역 버티며 쌓아 온 피로와 억울함이,
“그러니까 더 잘해봐”라는 말로 눌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 상처가 났는데, 그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기 전에 “뛰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키보드 위에서 가장 솔직한 문장을 쳤다.
“네가 뭘 알아?”
그 말은 AI에게 던진 게 아니라,
어쩌면 내 안의 ‘참아야 하는 나’에게 던진 반항이었는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관계에서, 어른의 세계에서 요구되는 태도는 늘 비슷하다.
참고, 정리하고, 침착하게 말하고, 감정은 관리하라는 것.
그런데 어떤 날은 그 관리라는 게, 감정을 없는 것처럼 숨기는 일로 변질된다.
나는 그걸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날만큼은 ‘감정이 있는 나’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퇴근 후 거리를 오래 걸었다.
평소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가서 잘 사지 않는 음료를 골라 마셨고,
집에 와서는 샤워를 길게 했다.
침대에 누워 “그래, 기분 나쁜 게 당연하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AI가 말한 ‘객관화’도 다시 꺼내 보았다.
감정을 인정한 뒤에 보니, 그 조언이 조금은 다르게 들렸다.
감정을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감정을 품은 채로도 무너지지 않을 방법을 찾으라는 말로 다가왔다.
나는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에게 말한다.
방법을 묻고, 문장을 다듬고, 다음 행동을 설계하는데 참고한다.
다만 그전에 먼저 확인한다.
지금 내가 필요한 건 조언인지, 공감인지.
머리가 답을 찾기 전에, 마음이 숨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날 내가 던진 “네가 뭘 알아?”는, 사실 그 어떤 무례함보다도 솔직한 신호였다.
‘나 좀 알아달라’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요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