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쓰는 삶

by HK

백수가 되면서 오랜만에 지출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후로는 큰 지출이 아닌 작은 지출들은 내 필요에 맞춰서 했지, 가격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명품이나 파인 다이닝, 술을 즐기지 않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지 않아서 한 달 지출이 30만 원 언저리로 자연스럽게 통제됐다. 가끔 여행을 가거나 전자기기를 바꿀 때만 돈이 좀 나갔다.


그런데 이제 백수가 되니 지출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됐다. 물도 조금이라도 싼 것을 사고, 예전 같으면 조금 남으면 그냥 버렸던 물도 지금은 탈탈 털어 마신다. 식당에서 음식이 남으면 포장해 달라고 한다. 나의 지출이 백수로 할 수 있는 활동의 양을 정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버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적게 써도 행복한 법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보니 일한 지 만 3년 만에 내가 인생에 목표로 했던 연봉을 달성했다.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금액도 아니었다. 그 금액은 내가 살기 위해 필요한 금액이 아니라 그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정도 가치는 하고 싶다는 성취욕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삶을 사는 데는 그보다 훨씬 적어도 살 수 있었다. 그 돈의 의미는 단지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계기이자 나의 일하는 방식이 최고는 아니어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준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나는 더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벌이보다는 내 지출에 관심이 많아졌다. 더 적은 소비로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백수가 된 지금, 나는 그 훈련을 더 강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말하는 지출을 다 하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하지 않아도 행복한 법을. 돈이 없어도 궁상맞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백수가 되었을 때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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