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함에 대하여

by HK

회사를 다니다 보면 아이러니한 순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일이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잘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새로운 할 일을 찾아 분주해져야 할 때가 있다. 반대로 성과가 잘 나지 않을 때는 이것저것 시도하느라 끊임없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불분명한 상태이기도 하다. 결국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는 어떤 상황에 있든 ‘항상 바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값처럼 느껴진다. 그 속에서 느긋하게 멈춰 서서 무언가를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은 사실상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속도보다 방향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 방향성을 제대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루나 이틀 밤을 새워 고민한다고 해서 인생이나 커리어의 방향이 명확해지기는 어렵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무엇을 잘하고 있고 무엇에 피로를 느끼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과 산업, 더 나아가 환경 자체가 어떻게 변해갈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런 고민들은 단기간의 집중으로 해결되기보다는, 일정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을 쌓아가야 비로소 의미 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느낀다.


물론 이런 고민의 시간은 굉장히 럭셔리한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당장의 성과를 내야 하고,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을 일부러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시간이 언제나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요즘처럼 AI의 발전으로 인해 불과 1~2년 뒤의 환경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지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종종 혼란스러워진다. 무언가를 계속 실행하면서 그와 동시에 고민을 병행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시간을 따로 떼어 오롯이 고민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더 가깝다. 일상의 업무 흐름 속에서 고민을 하다 보면,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고 결국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흘러가기 쉽다고 느낀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당장 큰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근본적인 질문을 뒤로 미뤄버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어 나의 현재와 미래를 정리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잠시 속도를 늦추고, 당장의 성과나 업무 목록에서 한 발짝 떨어져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 그 시간이 있어야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방향이 여전히 내가 원하던 곳인지 점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분주함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환경 속에서 오히려 멈춰 서서 생각하는 선택이, 장기적으로는 가장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낯섦과 익숙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