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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Aug 16. 2017

#1.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해방이다!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72년 전 대한민국이 해방의 기쁨을 만끽한 날이죠. 


그 날의 기쁨을 재현해 보며 ‘해방’을 주제로 제 인생 역사에 새로운 챕터를 써보고자 합니다.   


무슨 해방이냐고요? 18년 자녀 육아로부터 해방입니다. 해방이라는 말을 썼지만 그렇다고 자녀로부터 모진 억압과 고초를 겪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맞이하는 시간이 주는 자유를 뜻하죠. 제가 앞으로 더 자녀를 낳을 계획도 없으니, 이런 일은 제 생애 한 번만 일어날 수 있는 매우 역사적인 순간이거든요. 그 대망의 해방 맞이가 오늘로부터 닷새 후에 곧 (D-5!) 펼쳐집니다. 


이 해방의 감격을 기념하고자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않았던 육아로부터 해방된 삶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아이가 막 태어나서도 육아일기란 걸 써 본 적이 없었습니다. 쌍둥이 아들 둘을 키우고 직장인 엄마로서 일과 살림을 병행하면서 육아 일기란 절대 누릴 수 없었던 시간의 사치였죠. 그런 제가 인제야 육아 일기를 쓴다는 것이, 저 자신에게도 매우 생뚱맞은 일이긴 합니다. 정작 아이를 곁에 두고 키울 때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아이를 대학으로 떠나보내는 이 마당에 무슨 쓸 거리가 있겠느냐고요. 역시 금방 답이 떠오르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그동안 쓰지 않았을 뿐, 쓰고 싶었던 순간들이 많았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뭔가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들. 때가 되면 꺼낼 날이 있겠지 했던 자녀들과 관련된 온갖 상념들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제껏 아이들과 너무 가까이 있기에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많아요. 옆에 있었기에 더 무심했던 것들, 차마 꺼내지 못했던 대화들,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수두룩하긴 했죠. 바쁘다는 핑계로 18년 동안 미뤄두었는데, 저도 모르고 있었던 그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모조리 방출될 것 같은 짜릿한 예감이 듭니다. 


마치 수십 년 숙성한 와인의 코르크를 설레는 마음으로 따면서 어떤 신묘막측한 맛이 나올까 기대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아니 생각해 보면 글 쓰는 재미에 사는 저 같은 엄마에게 자녀라는 주제는 물리치기 힘든 매력적인 글감이긴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가 멀다고 떨어져 가는 기억력 저하를 날마다 체험하며 사는 중년의 엄마에겐, 그간 육아에 바쳐졌던 시간과 잊혔던 기억들을 리와인드해 본다는 의미에서 지극히 환영할 만한 일이기도 하고요.


지난 세월 마음 한구석 켜켜이 자리 잡고 있던 제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고, 아이들을 키우며 알게 모르게 깊어졌던 감정의 우물을 천천히 한 국자씩 퍼 올리며, 엄마로서 못다 한 이야기를 이제 막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가 앞으로 펼쳐질지 글쓴이조차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실험적 글이 되겠죠. 빈 둥지 증후군을 앓고 계신 분들이나, 반대로 빈 둥지 해방감을 만끽하고 계신 다 큰 자녀를 둔 부모님들과 함께 공감할 내용도 물론 나오리라 예상됩니다. 역시나 제 이야기가 될 것이기에 저 자신이 저에게 거는 기대가 크네요.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제 글의 광팬이자 악성 팬은 항상 저 자신이더라고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관찰해 보고 싶어 하는 발동이 핑계 김에 또 시작된 거죠.    


아무튼, 저랑 같이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이 해방의 길을 함께 산책해 보시렵니까? 독자 여러분들의 동행이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의 엄청난 뒷심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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