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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Aug 17. 2017

#2.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제발 가방 좀 쌀래?

아이들은 정확히 오늘, 내일, 모레면 집을 떠나게 되어있다. 서부에서 동부까지 비행기로 이동을 해야 하느라 짐을 바리바리 다 싸 갈 수 없지만, 큰 가방에 옷가지와 신발 및 생활 필수 아이템은 챙겨야 한다. 며칠 전부터 가져갈 옷을 정리하고 필요하면 빨래를 직접 연습해 보라고 했다. 빨래는커녕 가방을 쌀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 빨래통에 빨래가 늘어만 간다. 내 스트레스 지수도 함께. 


맘 같아서 내가 휘리릭 하고 빨래를 돌려줄까 생각하다가도, 학교 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연습이란 걸 해서 가야 하지 않나 싶어 그것도 맘대로 하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해야 할 빨래를 제발 좀 하라고 아마 2주 전부터 잔소리를 했던 것 같다. “빨래 안 하니? 너 빨래 안 해? 가방 안 싸? 옷 정리 안 해? 언제 할 거야? 겨울옷까지 챙겨가야 하는데 뭐 가져갈 거야? 생각해 봤어? 신발은?” 못 미덥고 불안해서 나만 발을 동동 구르며 서성댄다.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여유를 부리는 아이들. 차라리 “엄마 나 빨래 좀 대신해 주세요”라고 애교라도 부리고 부탁이라도 했으면 머리를 한 대 쥐어박더라도 내 속이 편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겠다고 하면서 알았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하면서, 하지 않는 아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이 빨래를 내 손으로 직접 하는 일보다 10배는 더 힘들다. 


빨래하고 가방을 쌀 시간은 저들에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름 방학 내내 껌딱지처럼 붙어 지냈던 컴퓨터 게임에는 아직도 함께 보낼 시간이 넉넉하다. 대학 가서 공부하는 데 쓰라고 사 준 최고급 노트북으로 게임만 엔조이하는 것을 보며 남편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한숨을 짓는다. 


쟤들이 과연 학교에 가서 서바이벌할 수 있을지. 아침 수업 시간에 늦지 않고 일어날 수나 있을지. 꼴을 보지 않으면 마음이라도 편할까 싶어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을 학교 기숙사에 보내고 싶은 마음도 안 드는 게 아니다. 그래도 참자, 참자 그냥 놔둬 보자. 언제까지 미루다가 빨래를 할 것인지, 언제쯤이면 가방을 싸야 할 때가 왔다고 저들의 둔감한 안테나에 마침내 신호가 터질지 그냥 잠잠히 저 기괴한 인간들을 실험하듯 관찰해 보자.


언젠가 별자리를 좀 본다는 사람이 그랬었다. 우리 집 아이들의 별자리와 부모의 별자리를 보면 그 관계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맞았다. 우연히도 남편과 나는 같은 달에 태어나 별자리가 같고, 아이들은 쌍둥이 형제로 태어나 별자리가 같다. 우리 집은 항상 부모 대 자녀의 게임처럼 2:2의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 왔다. 그 모든 원인 중의 하나가 염소자리 대 물병자리의 싸움이기도 했다니. 맙소사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니다. 차라리, 별자리 때문에 그렇다고 믿으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어차피 태생적으로 서로 잘 맞지 않는 운세를 타고났다고 생각하면, 내가 지어야 할 짐이나 아이들에게 탓하고 싶은 원망을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우리 가족은 염소자리와 물병자리의 싸움이다. 책임감과 성실함의 대표적인 염소자리 부모에 아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어깨에 메고 있던 물병을 확 쏟아부을 수 있을 정도로 자기 고집과 주장이 강한 물병자리가 서로 줄다리기하듯 밀당을 한다. 이러니 부모 자식 간에 한쪽은 늘 애가 타고, 한쪽은 하염없이 느긋한 언밸런스가 계속된다.


대학을 가면 아이들이 성숙해지고 자기 주도적이 되며 달라질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 대학을 가지 않아서인지 예전 버릇 그대로이다. 돌이켜 보면 아침마다 지난 13년간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얼마나 많이 울부짖었는지 모른다. 등굣길을 나서기 전 문 앞에서 ‘너희들 빨리 안 나와? 3분 내로 안 나오면 지각이야 지각!”을 고래고래 외쳤고, 그러다가 아무 반응이 없으면 금세 “야, 빨리 좀 나와 제발.. 엄마 직장 늦겠어”라고 애원을 해야 했다. 아이들은 세상의 가장 느린 인간이 어떻게 걷는지 보여주듯이 천천히 느긋하게 3분을 꽉 채워서 걸어 나왔다. 그들의 생애에 서두르고 급한 일이란 걸 본 적이 없다. 뭔가 급하게 달려오거나 신발을 꺾어 신거나 허둥지둥 나가는 모습은 18년 동안 신기하게도 발생하지 않았던 거다. 


이런 똑같은 현상이 아직도 이 집 안에 머물러 있다. 이런 부류의 현상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가방을 싸지 않고 뭉그적거리는 아이들의 지겹도록 정든 모습을 보면서.


에이 씨, 너 정말 가방 안 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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