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준비 없이갑작스럽게 결정한 미국행. 그 당시 아이들이 다닐미국 학교는 방학 시즌이라 미국에서 첫 3개월은 하루 24시간을 아이들과함께 했다. 그 기간은나의 여러 능력, 예를 들자면, 영어, 요리, 운전 실력뿐 아니라, 인내력, 순발력, 적응력 등을 테스트 당하는기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기간 동안 난영어를 시작으로여러 가지로 좌절을 맛보게 됐고,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즈음 다행인지 드디어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개학을 했다.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이 미국 학교를 처음가게 됐다.
7살인 막내아들은미국에 오기 전까지 유치원에 다녔다. 갑자기 미국에 오게 됐고, 미국 나이로는 초등학교 1학년에 해당돼서 이곳에 와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됐다. 물론 영어로 말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상태다.영어 한 마디 못하는 상태였다.
8월 3일, 첫 등교하던 날. 막내아들은 빨리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며 등교 첫날부터 혼자 스쿨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영어 한 마디 못하는데 괜찮을까? 난 잠시고민을 했다. 그리고는,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난 아무렇지 않은듯 학교에잘갔다 오라고 하며 배웅을 해줬다. 결국 녀석은 씩씩하게 혼자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그렇게 미국에서 첫 등교를 했다.
하지만 난 사실 막내아들이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 순간부터 아이가 스쿨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 시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녀석이 혼자 스쿨버스 타고 첫 등교를 했는데, 교실은 잘 찾아갔을지, 학교에서는 과연 잘하고 있을지, 다시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잘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난 절대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는 맘은 아니다. 사실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말도 잘 안 통하는 미국땅에 와보니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그러다 보니 걱정도 더 늘었다. 걱정도 되고 학교에서 어떻게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의 심장은 종일 쉬지 않고 콩닥콩닥 뛰었다. 막내아들이 옆에 있었다면 내 심장 소리를 들켰을지도 모른다.
난 아이의 에너지와 자신감을 지켜주고 싶었다.나의 걱정과 불안함을 아이가 알게 되면 아이도 스스로를 못 믿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걱정 어린 눈빛을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막내아들에게학교에 잘 다녀오라고꼭 안아주고, 걱정하는 티는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물론, 평소에도 워낙에 씩씩하고 센스 있는 아이라서 잘할 거라고믿었고, 그날도 막내아들은 아주 잘 해낼 거라고 나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나사실 아무리 나 스스로를 달래도 막내아들의 그 첫 등교 날, 그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막내아들이 혼자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생애 첫 등교하던 날! 난 그렇게 한참 스쿨버스 뒷모습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