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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현 Feb 19. 2016

가로수. 1

대지에 뿌리박혀 길로의 생을 다하다


선생님.

장마철, 긴 비가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오랫동안 연락드리지 않아서 면목이 없 습니다. 못났게도 사는게 바뻐 이제서야 안부를 여 쭙습니다. 분명 선생님은 '바쁘다는 사람이 편지는 무슨' 이라며 호통 치시겠지요. 하지만 선생님. 받 은 이 은혜를 편지로마 전할 수 밖에 없는 제 자신이 그저 죄스러울 뿐입니다. 십 오년이 지난 오늘까지 도 한번도 찾아뵙지 못한 저의 부녀를 용서해 주세 요.

이제 이곳은 푸르름은 늦가을의 황금빛 터널로 바 뀌어 가는 중입니다. 선생님. 봄날의 신록도 여름 날의 초록의 터널이 가을에는 다시 황금 빛, 붉은 빛으로 바뀌는 가로수 길이 이렇게나  찬란하고  눈부신지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겨울에는 또 어떤 풍경으로 바뀔지, 그 날의 깜깜한 흑경으로 뒤 덮어 버린 저의 죄를 업고 하얀 설경으로 변모한 가로수 를 찾아갈까 합니다.

 선생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놈들아, 여기가 쓰레기통이더냐? 당장 줍지 못해?

 
"아이고 어르신. 고정하세요. 또 쓰러지십니다"

하랫마을의 13번지 가로수길의 관리자들이 발을 동동구르며 한 노인을 말리고 있었다. 노인의 발치에는 만두같이 알찬 검은 봉지꾸러미가 속이 터진 채, 그 잔해를 길에 뿌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무심한 얼굴로 노인을 처다보는 젋은 남녀가 서 있었다. 노인은 자신의 호통에도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놈들을 보자 허리를 더욱 꼿꼿히 세우며 먹을 먹은 붓털처럼 진한 눈썹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뭘 멀뚱 멀뚱 보고만 있느냐. 당장 줍지 못해! 여기가 니 놈들 집이라도 이딴 짓을 할테냐."

노인의 얼굴이 점차 붉어지며 언성이 더욱 높아지 자 가로수길을 걷던 사람들이 불 구경이라도 난듯 모여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랗게 탈색이 된 머리 를 신경질적으로 넘기며 서 있던 여자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아오 씨. 쪽팔려. 누가 죽기라도 하나. 할아버지 소리 좀 그만쳐요. 저희가 치울께요"

여자의 말에 노인은 하얀 눈을 얹고 뻗친 나무가지 들을 올려다 보았다.그리고는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다시 호통쳤다.

"이놈들아. 도시 가운데 나무들이 있다고 이 가로수 들이 건물들처럼 죽은것이더냐? 생명들이다. 이 곳에 우뚝 선채로 태양을 안고, 대지에 뿌리박혀 길로의 생을 다하고 있단말이다. 누가 너희들에게 쓰레기를 먹이면 기분이 좋겠냐말이다. 너희들도 당장 길에서 사라지거라. 고얀 놈들"

사람들이 노인의 역정에 고개를 저으며 흩어지자 가로수의 관리인들은 죄송스런 표정으로 사람들에 게 사과했다. 그 뒤로 멍한 표정으로 노인을 보고있 던 서있던 신입 관리자가 선배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할아버지는 누구예요.도대체? 저러고도 무사하실려나..."

선배 관리인은 뒷짐지며 나무들을 둘러보고 있는 노인을 보며 한숨 쉬었다. 그리고는 신입을 향해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쉿. 조용히 말해. 어르신은 귀도 밝으셔. 김씨는 여기 이사온지 얼마 안되서 모르겠지만, 저 분은 이 가로수길 관리인으로 오십 년을 계셨어. 이 나무들 보여? 저분이 손 수 묘목을 심고 자식같이 키어 오 신거야. 그리고, 저쪽 땅부터 이쪽 땅까지 전부 어르 신 땅이야. 어마 어마하지?"

김씨는 선배 관리인이 가르키는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담양의 죽농원의 대나무골을 따라 추월산 까지 펼쳐진 설경이 그의 동그랗게 뜨여진 두 눈에 가득 들어왔다. 선배 관리인은 얼빠진듯한 표정으 로 서 있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충고하듯 말했다.

"걱정마. 평소에는 조용하신 분이니깐. 우리가 가르쳐 주는데로만 하면 김씨에게 불똥 튀는 일은 없을거야."

김씨는 선배 관리인의 인자한 얼굴을 보며 안심한 듯 어색한 웃음을 내보였다. 그러나 곧, 고개 넘어로 보이는 노인을 본 순간 웃음이 싹 달아나며 긴장하 기 시작했다.

"허허 걱정말래도. 내가.."

"이봐 박씨! 당장 이리와 보게. 몇번을 말해야 알겠나. 자네 바본가? 이팝나무의 표면이 벗겨지는 것은 병충해 때문이 아니니 살충을 할 필요없다고 그리 말했는데. 쯧쯧. 도대체가. 당장 뛰어오게."

"예,옛!"

김씨는 허둥지둥 뛰어가는 선배 관리인을 보고는 불똥이 튈새라 뒷걸음치며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 났다.

들녘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들이 어둠이 내려앉은 겨울의 가로수길을 어느새 뒤 덮어버렸을 즈음.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설길을 따라 노인의 발자국을 지우며 눈들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노인은 눈은 한 겨울 눈 속에서 하얀 눈을 뚫고 솟아 오른 복수초를 향해 있었다. 자글한 주름사이로 보 이는 서글한 눈매가 일순간 풀어지며 인자한 미소 를 자아냈다. 생명을 나누어 가지를 풀어낸 나무들 의 가지들은 봄의 싹을 거둔 메마른 것일지라도 풍성하긴 마찬가지다. 가끔, 그 풍성함으로 인해 사람들이 가지에 찔리기도 하지만 노인은 반백년 세월 하늘을 가득 수 놓으며 뻗친 가지들을 보며 그것들은 하찮은 것이라 소리치곤 했다.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되네. 인간이 나무들을 관리하는것이 아니라 나무들이 인간을 관리하고 보호하고 있는것이니깐. 그러니 아무것도 건들지 마시게."

헌 가로수의 관리자들은 노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이곳 13번지의 가로수길은 함양의 산 중턱에서 도시까진 이어진 한 길을 따라 30만평의 수목들이 펼쳐진 곳이다. 계절을 입을 때마다 한 눈에 담을 수 없을만큼의 색채들이 가득 차올라 흔들리는 모습은  한국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장관이었다. 자연속에 둘러싸인 듯 한 아늑함과 포근함, 그리고 자연의 싱그러움과 신선함을 동시에 맛볼수 있는 건 둘째치고 이곳은 원래 노인의 개인 사유지였다. 사람들의 발을 허락치 않는 곳이기도했다. 하지만 담양관광부와 시장의 끝없는 요청으로 노인은 마지못해 수락하였다. 그래서 생긴것이 이 하랫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이곳이 문을 닫으면 관리자들 자신의 일터가 사라지는것이 제일 중요했다.

노인은 가로수를 바라보며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 였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가고자 하였 을 때, 희끄무리한 인영이 노인을 발견하곤 황급히 어둠속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노인이 혀를 차며 다시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자 고요함을 깨는 울음 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아챘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 면 알아채기 힘든 소리였지만 노인의 낯빛이 순식 간에 창백해지며 서둘러 그곳으로 허겁지겁 달려 갔다. 매화나무 아래, 후두둑 떨어지는 눈덩이를 맞으며 하얀 천으로 싸메여진 아기가 차가운 달빛을 받으며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


봄은 꽃을 사랑하고 여름은 햇빛을 받고 가을은 낙엽을 쓸며 겨울은 서릿밭을 밟고 그 소리를 듣는다

노인은 읇조리듯이 음을 타던 노래를 멈추고 자신 의 품에 안겨 어느새 잠들어있는 아기를 바라보았 다.  노인은 아기의 배에 손을 올리며 숨을 느끼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닭이 새벽을 울려서야 잠든 아기는 그 미약한 생명을 온 몸으로 내 쉬며 버티고 있는것 같았다. 가끔씩 뒤척이는 낌새가 없었더라 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의문이 들정도였다.

 

아기가 작게 옹알거렸다. 그제서야 노인은 고개를  들며 안심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설원에서 버려 져 매화나무 아래 눈을 받아서인지, 유난이도 아기 의 뺨이 붉다.

"설화 라..."

노인의 메마른 손이 아기의 뺨을 소중히 메만지며 스쳐갔다. 아기가 깰까봐 눕히지도 못하고 방안을 서성이고 있자 문에서 기척이 느껴지며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계십니까요."

아기를 건넛방에 조심히 눕히고 나온 노인이 문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게."

미닫이문이 비껴가며 추위에 벌겋게 언 남자의 얼굴이 방안을 훝어보았다. 박씨였다.

"손님이 계십니까? 조금 있다 올까요?"

방안으로 고개만 내민채 묻는 박씨를 향해 노인이 손을 까닥거리며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객은 있지만 큰소리만 안내면 상관 않겠지. 찾아온 이유나 말해보게."

박씨는 양반다리를 한채 고개를 치켜들고 근엄하게 눈감고 있는 노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에,가지들말입니다. 박씨는 일단 운을 뛰웠 다. 땅으로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고 노인을 힐끔 바라보았지만, 역시나 노인은 더 들을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젖고있었다.

"돌아가게. 나무를 건드는 것은 불허하네."

박씨는 노인의 말에 예상이라도 한듯 깊게 숨을 들여 마시며 헛기침을 살짝 한번 내 뱉고는 차분이 노인의 말을 받아쳤다.

"하지만 어르신. 도시에서 이 먼 곳까지 가로수길 하나 볼려고 온 사람들입니다. 주구난방 뻗친 가지들이 사람들 오다니는 길을 방해하고 있어요. 가지에 긁히거나 눈이 찔릴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어르신 말씀은 알겠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더이상 사람들이..."

박씨는 아차 싶었다. 사람들이 오던 말던 애초부터 신경쓰지 않던 노인이였다. 역시나 노인은 말을 중단한 그를 노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금방 이라도 쌍스런욕이 튀어나올것 처럼 노인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그리고는 곧, 으르렁거리며 노인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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