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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현 Feb 19. 2016

슬픔이 없던 15 초

욕망의 아내



비상금이 생겼다. 빛나는 오만원짜리 스물 장이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숨길 곳이 없었다. 집에는 포악한 맹수가 살고 있고 놈은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나의 모든 것을 위협한다.


슬픔이 밀려온다. 빳빳한 지폐들이 손아귀에서 벗어날 것만 같다. 사실대로 말하고 한장이라도 건질까? 아니 쓸데없는 짓이다. 얼마 전, 백화점 쇼윈도에 비친 욕망 가득했던 그 번들거리는 눈빛 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악어의 가죽으로 둘러 쌓여  촘촘히 수 놓여있던  그 가방. 조용히 아무말 없이 바라보던 놈이 나를 돌아보곤 붉은 입술의 끌어 올리며 웃었을 때의 그 공포. 나는 도망쳐야 한다. 그건 사냥꾼의 눈빛이다. 나를 알코올에 쑤셔박고 배때기를 갈라서 천장 높은 곳에 매달아 끊임없이  비웃고 고문할 것이다. 숨겨야 한다. 나는 살아 남을 것이다..


집중하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슬퍼 할 필요는 없다.  일을 그르치면 안된다. 축축히 젖은 머리카락에서 땀 한방울이 미간을 따라 빠르게 흘러 내린다.


삐삐삑ㅡ


현관문을 열고 나는 조용히 집안으로 침투했다. 놈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여긴 놈의 구역이다. 어디에서나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쟈기양?


놈이다. 놈이 나타났다! 나는 한껏 거짓 웃음을 지어보이며 놈에게 굴복했다.


으응.쟈기야. 나 왔어.늦게 와서 미안! 회사 일이 바빴어.


탐색하는 듯한 끈적거리는 눈길이 나를 훝고 지나 간다. 와이셔츠 안이 땀으로 흥건해지고 손 끝이 부들 거리며 떨려왔다.


 흐응. 그럼 어서 씻어. 밥은?


 놈이 뒤 돌아서며 물었다. 나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 간 양복을 벗고 침대에 누으며 말했다.


피곤해. 밥은 안먹도 되. 나 일찍 잔다.


 대답은 없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혈관이 수축되 며  숨이 가빠져 온다. 온 몸의 신경을 놈의 행적에 귀 기울였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시계 소리만이 방안을 울리고 있었다.


핫!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잠이 들었던 것을 깨았다. 낭패감에 몸을 일으키며 시계를 확인했을 때 나는 안심했다. 십초만이 흘러 있었다. 거실의 놈의 거 동을 확인했다. 웃고 있었다. 거실의 한 가운데  들 어 누 채, 드라마를 보며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꺄하하


나는 안심하며 침대로  몸을 돌렸을 때, 깨달았다 바닥의 차가움이 발바닥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나는 패배감에 주저 앉으며 흐느꼈다. 거칠게 찢기 고 벗겨진 양말들이 시체처럼 흩 뿌려져 있었고 신은 채, 잠이 들었던 구두가 놈의 손아귀에서 농락 당하고 있었다. 아아ㅡ나는 바보였다. 두려움에 잊고 있었다. 구두를 신은체 당당하게 집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꺄하하


놈은 황금을 거머 쥔채 만족하듯 나를 비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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