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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현 Feb 19. 2016

모히또

당신과 나. 둘만의 비밀이에요

1956년에 발매한 쳇 베이커의 Chet Baker & Crew 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나는 단골 바에 앉아 진토닉이 담긴 스트레이트잔을 만지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두개의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진 하얀 방에서, 쳇 베이커는 의자에 비스듬이 걸터 앉아 검은 턱시도 를 입은채, 빛바랜 트럼펫을 연주하곤 했다.


흘러나오고 있는 Chet Baker & Crew 는 그의 평소 느슨하고 낭만적이면서 뭔가 심히 울적한 느낌의 트럼펫 연주는 아니다. 쳇 베이커와 전속 계약을 맺고 있었던 퍼시픽 재즈는 쳇에게 좀 더 '뜨겁고 격렬한' 음악을 녹음할 것을 주문했을때, 쳇은 한동안 활동을 중단한채, 마약과 방탄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과 정신은 망가져 갔지만 곧 그는 주문대로 'Chet Baker & Crew' 라는 앨범으로 답했다. 덕분에 쳇은 그 동안의 유약하고 섬세한 이미지를 일신시켜 다시 재즈 비평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뭐, 더 필요해?"


한동안 바의 진열장을 정리하고 있던 바텐더가 나의 비어있는 술잔을 가리키며 물었다.


"약이 필요해요."


바텐더는 나의 뜬금없는 소리에 한동안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빠지는듯 했다. 그리고 는 곧 익숙한 손놀림으로 투명한 글라스에 라임즙 과 쥬스를 붓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그는 얼음을 잘게 부수며  말을 했다. 나는 주먹을 쥔 손을 바에 올려 턱을 괴고는 심드렁하게 그의 말에 답했다.


"목소리요? 아...그러고보니 오늘은 조용하네요."


나는 여덜살때 부터 듣고 자란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세상을 우렁찬 울음소리로 메꾸며 태어 난 그녀는 묘하게도 말하는 모든것들이 우리의 귀로 들려왔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큰 트럭이 지나가며 경적을 울리는 소리나,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와 같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소음같은 것이였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꿈같은 속삭임이다. 산속에 길을 잃고 죽어 갈때쯤 들려오는 구원의 소리였고, 홀로 늙어 죽어가는 독거노인들에게는 딸이였으며, 따사 로운 노을이 젖어든 공원의 벤치에는 사람들이   그녀의 흥얼거리는 소리에 취해 잠이 들곤 했다. 그녀는  가정, 이웃, 그리고 사회의 하나된 공통 주제였고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여왕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꼬박 20년이다. 우린 그녀의 모든것을 안다. 그녀에게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동정한다. 본인 자신은 비밀따위 어찌되도 상관없다는 식이라면 상관 없지만, 적어도 나는 작가이기에 모든것을 상상 한다. 특히 그녀의  불행한 이야기는 나의 호감을 극대화한다.


"어디 아프나?"


바텐더가 럼주가 찰랑이는 유리병의 마개를 따며  그녀의 침묵에 걱정하기 시작하자, 호기심이 더욱 일어났다.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그녀가 겪고 있을 일에대해 생각했다.


"혹시, 납치라도 당한거 아닐까요? 그녀의 힘은 엄청난 광고 효과잖아요. 재산도 어마어마할테고,

아니면 사랑의 도피행? 것도 아니면, 살인?"


바텐더는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며 질책했다.


"우리 여동생한테 무슨일이 생긴다면, 너부터 죽여주마. 생각하는게 왜 그 모양이야? 그리고 그녀는 이미 많은것을 잃었어. 비밀이 없다는건 슬픈일이야. 그런 그녀를 망가지게 만들만큼 사람들은 아직 썩지 않았어. "


나는 그의 말에 입을 삐죽이고는 다시 테이블위로 엎어졌다. 지금 사람들은 그녀를 말할때는  '우리' 또는 '모두'  를 붙이곤 한다. 국민 여동생이 따로 없는것이다.


"뭐, 그리 슬프면 나한테나 주지. 난 그런 목소리를 가진다면 행복할텐데. 세상사람들에게 나의 소설을 읽어주는거죠. 어때요?"


"아서라. 그건 너나 우리한테나 저주야.저주."


"너무하시네."


나는 세상 어디에 있든 들려오는 그녀에게서 강한 질투와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소설을 써서 밥을 벌어먹은지 오년이 지나고있지만, 처음 작품 을 제외하고는 아직 그렇다할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꽤나 인기있던 첫 소설이 히트치고 계약했 던 매니지먼트에서는 평소에 쓰던 우울하고 어두운 글보다는 좀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밝고 경쾌한 글을 주문했다. 나는 당장 이라도 쳇처럼 마약과 방탕한 생활을 경험하고, 놀라운 글로 세상 사람들 에게 다시 인정받으며 호평을 받고 싶었지만, 그러 기에는 내가 너무 순진하다는 것을 안다. 방탕한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고 하는짓이라고는 손님 하나없는 바에 앉아 바텐더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공짜술을 마시는거니깐.


나는 그녀에대한 부질없는 상상을 거두고, 오로지  바텐더의 손에 시선을 고정했다. 손님 하나 없는 어두운 바의 주인이 가지는 삶의 애환과 애증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곧, 그가 구석에 놓여있던 화분에서 이파리를 떼어 설탕과 찧기 시작할때 나의 뱃속이 간질간질 한것이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올것만 같았다. 사람을 살인하고 그것을 설탕과 섞어 술로 제조하는 바텐더. 아아, 안되. 좀더 경쾌 한것을 떠올리자. 나는 반색을 하며 그에게 물었다.


"뭐에요? 그거. 도대체 무엇을 만드는거에요?"


바텐더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며 나의 물음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럼을 글라스에 넣고 쉐이킹을 했다. 그리고는 글라스의 나머지를 탄산수로 채워 나의 앞에 올려놓았다.


"마셔봐"


나는 앞에 놓인 글라스를 들어 한모금 머금었다. 그리고는 다시 뱉었다.


"우웩. 치약 넣었어요?"


"민트 때문에 그래. 이게 모히또라는 거야."


"모히또인건 알아요. 이게 약이에요?"


그는 나의 말에 무대에 오른  연극배우처럼 천천히 팔을 허공으로 뻗어 올리더니 엄숙하게 소리쳤다.


"나의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에서 나의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다타에서"


"헤밍웨이네요. 그치만 누가 지금 이걸 마셔요. 치약맛에,박하사탕맛에, 얼음까지. 추워 죽겠구만 ."


"그렇지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한말이지. 지금은 찾는 손님이 별로 없지만 여름에는 꽤나 찾거든. 특히 이쁜 아가씨들이 좋아하지. 작렬하는 태양 아래, 시가 한대 피우며 상쾌한 모히또 한잔. 좋잖 아. 이거 마시고 힘내. 박작가. 아, 물론 공짜야."


나는 두손모아 화이팅거리는 그를 보며 억지로 웃을수 밖에 없었다.  글라스에 꽂힌 빨대를 저으며 초록잎들이 회오리치는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모히또는 준비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것은 무엇일까?


"뜨거운 태양이지. 모히또를 더욱 맛좋게 할 뜨거운 태양"


그는 내 마음이라도 읽은듯 미소지었다. 그때, 바의 입구에서 자동문이 열리며 찬바람과 함께 한 여자 가 들어왔다. 검은 모자를 깊숙히 눌러쓰고 긴 겨울 코트를 입은 그녀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거침없이 다가와 나의 옆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바텐더는 그녀에게 주문을 요구했다. 그녀는 말없 이 나의 앞에 놓인 모히또를 가르켰고, 바텐더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며 이것봐. 여자들이 좋아하 지? 라고 소근거린며, 새로운 글라스를 꺼내들었 다.


"으엑"


모히또를 마신 그녀의 첫 마디였다.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웃음이 그녀를 돌아보게 만들었지만 뒤늦게 바를 울리는 메아리가 내 귀를 사로잡았다. 익숙한 소리와 느낌이다. 허공에 떠다니는 공기와 섞여 내 몸을 진동시키며 사라져간다. 나는 설마하 는 마음에 놀라는 얼굴을 애써 숨긴채 그녀를 돌아 봤다. 그녀는 다시 글라스를 들어 모히또를 홀짝거 리고 있었다. 바텐더는 그런 나를 향해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되며 조용히 웃었다.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모히또만 마셨고, 나는 그런 그녀를 힐끔거리며 바텐더와 쓸데없는 말을 이어가 고있었다.


"산뜻한게 머에요?"


"기분좋은 느낌이지."


"그 느낌이 머에요?"


"웃음뒤에 오는거지."


"바텐더가 웃을때마다 저는 능글거리는 느낌인데요?"


"공짜술은  취소다."


꺄하하하


허공을 메아리치는 웃음소리에 나와 바텐더는 동시에 그녀를 돌아봤다. 민트의 이파리만 남은 글라스를 쥐고 반으로 쪼개진 초록색 라임을 입에 문채, 그녀는 우리를 보며 웃고있었다. 바텐더는 그런 그녀를 손으로 가리키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저런 거지."


"아니 저건 그냥 취한것 같은데요."


그녀는 술에 엄청 약한것이 분명했다. 모히또에도 럼주가 들어가긴 하지만, 알코올 함량은 낮다. 남녀 노소 누구나 가볍게 즐길수 있는것이다. 적어도 내 앞에 놓인 모히또는 그랬다.


"도대체 멀 섞은거에요? 범죄자 양반."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예의 산뜻한 그 미소와 윙크 를 날리며 나에게 말했다.


"언제나 인생은 아이러니하지. 안그래?"


"나참...무슨 생각이래"


어느새 모자를 벗고 회전의자에서 빙글빙글 돌며 웃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한숨 쉬었다. 어깨위로 흐르듯 풀어져있는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사이로  아직은 앳된 소녀와 같의 붉어진 얼굴이 보였다.


"어쩌면 그녀가 너의 태양일지도 모르잖아? 잘해봐. 비밀은 지켜줄께. "


바텐더는 바에 울리는 음악을 끄고는 마감을 준비 했다. 시계는 어느새, 새벽 네시를 지나고 있었고 그녀는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그나저나 저 아이. 미성년자 같은데요?"


설겆이를 하던 바텐더의 몸이 순간 움찔하더니, 빨간 고무장갑을 낀 손을 들어  나에게 돈을 요구하듯 손가락 세개를 펼쳐 보였다.


"알았어요. 알았어. 태양을 안고 하얗게 불타 올라보죠 머. 갈께요."


아직도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시를 걸으며 든 생각은 생각보다 그녀가 무겁다는 것이였다. 바의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몇번이고 나는 멈추어 등에 엎힌 그녀를 추스려야했고, 갓 스물도 안된 소녀를 헉헉되며 걷는 힘없는 남자라고 낙담하는거 보다야 직업상 의자에 오래 앉아있다보니 어쩔수 없는 일 이라고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는 택시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후,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는 빠르게 우리를 스쳐지나가는 택시의 꽁무니에 대고 흔들어 되고 있었다. 시간대도 문제였지만 도시와 떨어진 외진곳이라 택시를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시간은 어느덧 다섯시가 다가오고 있었고, 나의 체력도 바닥을 친지 한참 전이다. 도대체 나는 이 술취한 여자를 업고 무엇을 하고있나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그녀가 깨어난것을 알아차린것은 한참 전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등에서 떨어질줄을 몰랐다. 오히려 어째서인지 두팔을 뻗어 내목을 감싸며 코알라처럼 안정감있게 다시 메달렸다.


"보통 정신을 잃고 깨어났을때, 낯선 남자등에 엎혀 있다면 놀라는게 정상아닌가?"


그녀의 행실을 비꼬는 듯한 질문이였고, 자신의 멀쩡한 두 다리로 걸으라는 내용이 담긴 질문 이었으나, 그녀로 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등에서 흘러내리는 그녀를 다시 추스리며 길을 걸었다. 도로는 한산했다. 번화가는 이미 벗어난지 오래였고,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그녀와 나 사이의 빈틈을 찾아 파고들어왔다. 이따금씩 자동차들이 노란 헤드라이트로 우리을 밝히며 빠르게 스쳐 가곤 했다. 불쑥, 등뒤에서 핸드폰이 튀어나와 밝은 조명을 뿜어댔다.


'제가 정상같아요?'


핸드폰에 적힌 글. 그걸로 나는 확신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우리'의 소녀인것이다. 그녀가 입으로 내는 모든 소리들은 빠짐없이 세상사람들의 귀로 들어간다.나는 한차례 몸을 관통하는 고양감이 나를 사로잡는 동시에 그녀에 대한 욕망이 치고 올라왔다. 나의 끈적하고 어두 운면이 그녀를 통해 다시금 인정 받을수 있을것 이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어두운곳으로 데려가 그녀의 얊은 입술과 작은 몸이 내 입술과 손길이 스칠때마다 터지는 그녀의 탄성이 세상에 퍼지게 하고싶었다. 그녀는 좋은 소재다.


쾌락에 젖게 만드는 것은 나이며, 그녀를 범하고 더럽히는것 또한 나일것이다. 고통에 쌓인 그녀의 비명이든, 꿈 꾸듯한 달콤한 비명이든, 나로 하여금 이루어질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또다른 소설은 인정받을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날개가 찢겨져 땅으로 추락하여 사람들에게 무참히 짖밟힐것이다.


"정말 약이라도 탔나? 확실히 정상은 아니네요."


'?'


나는 등에서 떨어질것같은 그녀를 다시 끌어올리며

뜨겁게 몰아치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숨을 깊게 마신후 천천이 내쉬며 화재를 돌리기위해 애썼다.


"것보다 핸드폰은 머예요? 그냥 말로하면 될걸.안 불편해요?"


'나여기 있다고 광고 할일있어요? 그리고 불편한것 쯤이야 별거 아니에요. 이십년 가까이 마음따로  말따로 였는걸요. 글이 더 솔직 한거에요. 사실 지금 편안하기도 하고.'


나는 한차례 헛기침을 하며 나의 짧은 생각에 부끄 러워졌다. 그렇지만 여기서 더 강하게 나가야 만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수 있다는 생각에 짐짓 근엄 한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술집에서 뭐하는거예요? 위험하게.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는지 알잖아요. 바보에요?"


'억울하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나의 비밀을 아는데 나는 그들의 비밀을 모른다는것이. 그래서 가출했 죠. 누군가와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기 위해.'


"아하. 그래서  술집에 나타나셨구만, 얻어걸린게 나고."


등뒤로 그녀의 몸이 들썩였다. 웃고있는게 분명하 다.


'꼭 남자꼬실려고 술집에 간건 아니지만, 얻어걸린 건 맞죠. 술에 이렇게 약한줄 몰랐던건 덤이고. '


"참 태평한 여자네. 세상 위험한 줄모르고."


그녀는 손가락이 내 뒷통수를 콕 찌르는것이 느껴 졌다.


'어머, 그쪽은 위험한 사람?'


나는 괜시리 찔려 그녀의 질문에 언성을 높히며 신경질적이게 대답했다.


"아. 그만 좀 내려요. 무거워 죽겠네. 멀 먹은거야. 도대체."


그녀의 팔이 내목을 강하게 쬐어왔다. 나는 켁켁거 리며 항복이라며 연신 소리쳤지만, 그녀는 더욱 등에 달라붙었다.


'따뜻한걸요. 그쪽 등. 햇살같아요. 살 때문에 포근 하기도 하고'


"참나, 해는 내가 아니라 그쪽이여야 했다구요."


그녀는 한동안 나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는 침묵했 다. 규칙적인 작은 숨소리만이 나의 등을 간지럽히 고 있었다. 나는 다시한번 그녀의 몸을 받치고 있는 팔에 힘을 주고는 고개를 들어 뻗어있는 시야 속으 로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밤하늘과 별들의 경계사이로 여명이 차오르고 있었고, 차가 운 새벽이 끝나가고 있었다.


'부탁이 있어요'


"뭔데요?제발 이제 그만 내려달라는거면 좋겠네요 ."


그녀는 나의 투정어린 말에 대답대신 손가락으로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 를 향해 고개를 돌렸때, 태양같이 뜨거운 입술이 나의 입술에 포개어졌다. 나는 발걸음을 멈춘채 그 자리에 못박힌듯 얼어붙었다. 그녀의 입술을 타고 감정의 소리가 나에게 전해져왔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머리 언저리로 눈부신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나는 황급히 입술을 떼고는 멍청하게도 당황하여 더듬거리는 말투로 그녀에게 소리쳤다.


"뭐, 뭐하는짓이에요. 이게!"


그녀의 숨결이 나의 귓가에서 느껴지며 세상을 울리는 소리로 속삭였다.


"둘만의 비밀이에요."


나는 황당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채,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돌아봤다. 갑자기 모히또가 마시고 싶어졌다. 분명 지금 아까와 똑같은걸 마신다면, 나는 모히또를 찬양할것이다. 나는 그녀를 등에서 조심히 내리게 하고는 ㅡ분명 벌게진 얼굴로ㅡ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이 비밀, 자신없어요."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꺄르르 웃는 그녀를 보자, 어쩌면 그녀도 태양이 필요했던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은 끝이났다.



이십년이 지난 오늘. 결국 나는 작가로서 유명해 지지는 못했다. 그녀와 도로에서 헤어진 직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새벽에 일어났던 그녀와의 이야기를 참고해 일 년에 거친 장편 소설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 원고를 나는 어디에도 보낼수가 없었다. 그녀와의 약속이기도 했고, 글에 대한 본질적인 욕망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계를 확인한 뒤, 라디오를 켰다. 때마침 아나운서의 질문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이십년 전, 가출했을 당시 말인데요. 당신의 한마디가 전국민 을 궁금하게 만들었던거 말입니다. 도대체 '으웩' 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이윽고 세상을 울리는 그녀의 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요. 말할수 없어요. 둘만의 비밀이거든요."


그렇다. 내 소설의 제목은 '모히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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