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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현 Feb 21. 2016

완벽한 인간



인간의 발걸음이 멀어져 간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어긋나버린 세상의 균형을 애써 무시한 체, 삐거덕 거리며 조심스럽게 두 발로 방을 빠져 나간다. 나는 의자에 주저앉으며 비장하고도 연극 적인 몸짓으로 나를 껴안던 인간 여자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너는 특별해. 이 엄마는 알수 있 다. 너는 축복받았어.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인 간과는 다르다. 이미 알고 있었다. 한 팔로 태어난 순간부터 완벽한 것은 저들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을 말이다. 아름답고 조화롭다는 것은 이제 한 쌍의 맞물림이 아니라 반쪽의 불균형뿐이다.

생각의 정리는 오래전에 끝이 났다. 종이를 꺼내어 선포하듯 비장하고도 엄숙하게 써 내려간다.

ㅡ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할 때이다. 인간들을 보라.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오래전에 꺾여버린 지 오 래이며, 권리와 의무는 짓밟힌 체 거리의 시체 조각 들로 뒤덮였다. 검은 바다는 분노하며 광포한 손짓 으로 파도를 토해내고 있다. 동족들이여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보라. 밤이 있기에 낮이 존재함을 어리석은 인간들은 망각했다. 동족들이여. 태양 을 꺼트리고 영원한 밤을 되찾자.

펜을 쥔 손끝으로부터 전율이 몸을 타고 나의 몸을 지배한다.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큰 목소리로 선포하듯 외쳤다. 동족들이여! 일어나라! 영원한 밤을 되찾자! 나는 걷잡을 수 없는 희열에 몸을 부르르 떨며, 종이를 스캔한 뒤, 컴퓨터를 켜고는 블로그에 올려 버렸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시간문제다. 나는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영원한 밤이 오길 소망했다.


동족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결의를 선포한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그도 자신을 완벽한 인간이 라고 밝혔고, 통신연락은 도청의 위험이 있으니 자신이 따로 연락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의 치밀함과 조심성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연,이 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고 나는 인간들의 감시 를 피해 어떻게 그녀가 접선을 해 올 것인지 기대 감에 부풀어 있었다.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한 통의 편지를 전해왔다. 두툼하게 부풀어있는 봉투를 전하는 남자의 다리는 한쪽으로 우아하게 꺾여 있었고, 반쯤 열린 대문 사이에서 인간들의 도시로부터 시작되었을 미지근 한 광풍이 불어닥쳤다. 펄럭이는 왼팔 소매를 바람 에 내맡긴 채, 한동안 우리는 서로를 응시했다. 곧, 남자는 비어있는 나의 왼팔을 힐끔 쳐다보더니 엄 숙하게 고개를 끄덕거린 후. 세상을 구할 사명을 띤 영웅처럼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비장하게 뒤 돌아 사라졌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그가 떠나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봉투 속 내용물은 카세트 테이프였다. 1990년대의 히트곡들이 적혀있는 보통의 믹스 테이프, 나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먼지가 수북이 쌓여 이제는 쓰이지 않는, 카세트 플레이 속으로 집어 넣으며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를 통해 인간들의 옛 노래가  새어 나온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가사와 조잡한 멜로디를 듣고 있자니 절로 비웃음이 새어 나온다 . 구시대의 유물. 인간들과 다를 게 없었다. 잡음을 뚫고 한 여자의 목소리가 나의 심장으로 파고들었 다. 거짓을 짖밟고 진짜가 나타난 것이다.

ㅡ 드디어 우리가 만나게 되었군요. 비록 목소리를 통한 만남이지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 부탁드려요. 아마도 당신은 이미 알고 있겠죠. 인간들의 감시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들을 쓸데없이 동정하며 자신들보다 나약한 약자로 취급한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가 갈리는 분노가 느껴졌다. 인간들은 우리를 속박하고 있었다. 자신들보다 우월하고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있는 힘껏 책상을 오른팔로 내려쳤다. 몸의 균형이 한 순간 깨어지며 비틀거리는 나를 힘겹게 버텼다.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ㅡ...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두 눈이 없었어요. 아니 세상의 더러움에 나 자신이 보는 것을 거부 했다고 할 수 있죠.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나는 깨달 았어요. 나는 인간들과 다르다는 것을, 아름다운 것들만 보도록 태어난 것이지요.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인간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동족의 비애와 애환의 눈물이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녀와 같이, 앞을 보지 못하는 동족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고, 너무 늦게 후회했다.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으리 라는 굳센 다짐을 한 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금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ㅡ만약, 제 말이 당신의 깊은 마음에 한 점의 파문이라도 일으켰다면 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가야했다. 그곳으로. 나는 다르니깐. 살아 남아야 하니깐.

나는 그녀가 불러주는 주소를 받아 적은 뒤, 집 밖을 나서기 위해 옷을 껴입었다. 그리고는 급하게 방문 을 열고 거실을 가로질러 신발을 신었다. 엄마가 나 를 향해 두려움에 찬 시선을 내보내며 빠르게 다가 왔다.


 이 늦은 시간에 어딜 가니?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대문을 박차고 거리를 내 달렸다. 불균형한 몸이 격하게 움직일수록 심하 게 기울어 졌다. 빠르게 달리면 달릴수록 인간들의 도시가 시야 너머로 빠르게 사라졌다.뱃속 깊은 곳 에서 시작된 웃음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 나온다. 엄 마의 급박한 목소리가 내 웃음소리에 묻혀 사라졌 다. 그때,  평평한 땅에 박혀있던 돌부리에 걸려 넘 어 지며 나는 아스팔트 인도 위를 뒹굴었다. 엄마 의 비명이 내 몸을 후려쳤다. 나는 괜찮다. 세상이 나를 받쳐 줄 것이다. 나는 괜찮다. 나는 어긋난 세상에 축복받은 존재다. 그렇게 되뇌며 땅을 박차 고 다시 달렸다. 아프지 않다. 나는 완벽한 인간이다 . 그렇게 끊이지 않는 웃음을 달고 반나절을 달리고 달려, 백색으로 빛나는 건물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는 텅 빈 두 눈을 치켜뜬 채,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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