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삶의 고수들은 도처에 있다

최효안 에세이 <내 안의 발작버튼>

by 최효안

방송기자는 인간의 말과 표정을 탐색하는 직업이다. 방송기자의 본령은 뉴스 리포트를 만드는 것인데, 리포트의 핵심 요소는 인터뷰다. 일반적으로 방송사 뉴스 제작을 할 때는 인터뷰 등 인물이 말하는 부분을 '싱크'라고 칭한다. 싱크(sink/sync)’는 synchronization(싱크로나이제이션)의 줄임말이다. TV 뉴스에서 인터뷰 영상과 음성(입 모양과 소리)이 ‘동기화(synchronized)’된 상태 그대로 들어가는 컷을 일컫기 때문에 sync → 싱크라고 굳어졌다. 싱크는 인터뷰, 또는 뉴스 인물의 음성이 나오는 부분이다. 즉, 기자 내레이션이 아니라, 취재원 육성 그대로 쓰는 컷이다.

방송뉴스와 신문 보도의 가장 극명한 차이가 바로 싱크의 유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문보도도 취재원의 얘기나 인터뷰가 중요하다. 그러나 취재원의 말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적지는 않는다. 문법과 맥락에 맞게 기자가 글로 재창조한다. 인물의 말을 글의 형태로 전환해서 전달하는 것이 신문 저널리즘의 가장 명징한 특징이고, 방송 저널리즘은 말을 말 그대로 전하는 '날것의 미학'이다. 그래서 신문 저널리즘이 보다 문학적이고, 방송 저널리즘이 보다 센세이션 한 각자의 개성을 지닌다.


방송기자에게 '싱크'를 '잘 따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직업적 자질이다. 방송뉴스는 시간이라는 제약을 엄청나게 받기 때문에 기자 내레이션과 싱크가 아주 집약적이고 치밀하게 구성돼야 한다. 기자 내레이션에서 얘기한 부분이 싱크에서 반복되는 것은 최악이다. 여러분도 방송 뉴스를 보실 때 이 부분을 집중해서 보면 금방 기자의 역량을 판별할 수 있다. 방송 뉴스를 듣다가 "뭔 소리지?" 싶은 생각이 든다면 십중팔구 이 경우다. 기자 내레이션과 싱크는 서로 면밀하게 뒷받침되면서 기사의 '야마'(핵심)를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특히나 '싱크 집착자'인데, 내가 취재원을 인터뷰한 풀 영상을 매의 눈으로 다시 보면서 기사의 야마에 딱 붙는 '압도적 한 싱크'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스타일. 이를 위해선 인터뷰를 하는 당시에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며 질문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 내가 '따고 싶은 싱크'를 말하는 취재원을 만나면 정말 업어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데 방송 기자 생활을 오래 하며 놀라운 비밀을 깨달았다. 그것은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현장에서 본 싱크와 그것을 영상으로 찍은 싱크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분명 인터뷰 당시에는 상당히 훌륭한 멘트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나중에 영상으로 보니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작위적인 경우가 있었다. 특히 그런 경우는 자타가 지식인 계층이라고 자부하는 이들, 즉, 교수나 정치인, 공직자 인터뷰에서 그랬다.


왜 이런 그 간극이 왜 생겨나는 걸까? 오랜 기간 탐색한 결과 나의 결론은 이렇다. 멋지고 훌륭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강할수록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 현장에선 미처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데, 카메라라는 매체를 통해서는 드러나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매체 예술은 대단한 장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진정성이 결여된 시퀀스'는 카메라 렌즈라는 엄정한 심판관을 통과하기 어려운 것이다.


반면, '진심'을 얘기하는 이들의 인터뷰는 다르다. 인터뷰 현장에서는 그냥 무심히 지나쳤는데, 촬영본으로 보면 뭉클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시민 인터뷰, 또는 신산스러운 삶을 겪어내신 분들의 싱크가 훨씬 담백하고 진짜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 '삶의 고수들은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은 감동적이다.


최효안 예술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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