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최종상태'를 상정해야 한다는 조언
솔직히 책의 초반 내용이 그다지 매력적인 내용이 아니다 보니(주로 죽음을 앞둔 환자를 대하는 방법 등 지금의 나와 크게 연관 없는), 나중에 내가 나이 들고 은퇴하고 부모님 병시중 들 때 다시 읽어봐야겠다 하고 그냥저냥 읽어갔다. 하지만 후반부에 갈수록 점점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느끼게 시작했고,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책에 점점 빠져들면서 왜 이 책을 뉴욕타임스 평론가들이 추천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단순히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이라는 부제의 뜻은 '지금'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문 제목인 'Adivse for Futere Corpses'를 직역하면 '미래 시체를 위한 조언'인데, 이것은 바로 나(미래의 시체)를 위한 조언이고 함을 깨닫게 되면서 책에 더 빠져들게 되었다.
p.99 방문자 유형은 참으로 다양하다. 친구들은 흔히 잠시 들려서 차 한 잔 마시며 얘기를 나눈 후 나가면서 쓰레기를 내다 버려준다. 그런 친구들은 언제 와도 반갑다. 작가인 그레넌 도일 Glennon Doyle이 '해결사'라고 부르는 사람이 올 수도 있다. 해결사는 "뭐든 말해봐. 내가 해결책을 알려줄게"라고 호언장담하면서 노상 엉덩이를 들썩이며 남의 일에 간섭하려 든다. 도일은 힘든 이혼 과정을 거치면서 '비교자도 여럿 만났다. 비교자는 이야기를 들어줄 것처럼 찾아와선 자기 경험과 어떻게 다른지, 혹은 같은지를 비교한다. 거기까지도 양반이다. 좀 더 있으면, "세상에서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방문자도 찾아올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서글픈 얼굴로 찾아와서 자기처지가 더 괴롭고 힘드라고 호소한다.
죽어가는 사람을 방문하 때는 가능한 범위를 정하는 것이 좋다. 방문할 때다 "한 시간 정도 머물 수 있어"라거나 "저녁때까지 있을게"라거나 "메리가 오면 일어날 거야"라고 미리 말해둔다. 아울러 떠날 때는 언제 다시 방문할지 알려줘라.
p.107 "우리 이웃집 딸도 이런 병에 걸렸었는데 지금은 멀쩡해"라는 식으로 말하지 마라.
p.148 진짜 좋은 의술은 환자가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더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p.162 그러니 죽어가는 사람을 돕고 싶다면, 당사자가 처리하기 어려운 자잘한 일을 도와주라. 편지를 쓰거나 선물을 포장하는 걸 도와주라.
대부분의 내용은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입장에서 설명이 되어 있다. 이런 점을 준비해야 한다, 주의해야 한다, 이런 말은 절대 하지 마라 등 정말 '실질적인'조언을 알려주는데, 이는 죽어가는 사람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힘든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 행동에 대한 주의이기도 하면서, 그냥 주변 모든 사라믈에게 해야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한 주의이기도 했다. 핵심은 '상대방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라'이다.
장인어른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사신다. 해병대 출신이신 할아버지는 젊어서는 패기 넘치고 무서울 것이 없으신 분이셨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마르시고 말도 잘 못하신다. 할아버지의 병수발을 몇 년째 계속 해 오시는 장인어른게서는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나는 나중에 아프면 그냥 아프다 죽을꺼여. 나 때문에 자식들 힘들고 하는 거 하고싶지 않어" 낚시르 좋아하시고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을 추구하시는 장인께서는 순리대로 흘러가길 원하시는 것 같다.
p.176 일본에서는 새해 전날 자신의 장례식 추도문을 쓰는 전통이 있다.
나도 새해가 되기 전날에는 유서와 함깨 내 장례식 추도문을 쓰고 싶어졌다. 매년 업데이트 하면서 나의 마지막날을 생각해 보고 지금의 삶의 방향을 조정할 수도 있겠다. 지금 고민하고 목 메고 있는 것들이 마상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매년 나는 얼마나 자랐으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알아볼 수 있겠다. 아내와 함께, 써보고 싶고, 해가 갈수록 많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추도문을 공유해 보고도 싶다. '죽음 계획서'를 되돌하 보고 싶다.
죽음에 대한 생각, 준비는 마지막까지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싫은 나의 마음이다. 나는 내가 죽음으로서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않고, 웃으며 죽음을 바라봐 주면 좋겠다.
p.226 당신의 뜻을 반드시 존준해 줄 사람을 선택하고, 당신이 바라는 것을 그들에게 획실히 알리도록 하라. 당신의 몸은 당신이 책임질 수 있는 마지막 대상이며, 그 몸을 어떻게 처분할지는 당신이 내릴 가장 개인적인 결정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상실감에 빠진 가족들에게 떠넘기지 마라.
p.272 내 친구 하나는 임종을 지켜본 직후에 닥치는 멍한 상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솜사탕이 뒤섞이고 거미줄이 잔뜩 쳐진 걸죽한 젤라틴 속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아. 아무리 밀치고 나가려 애써도 꼼짝할 수가 없어."
p.282 그중에서 가장 좋은 말은 이거다.
"혹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니? 무슨 이야기든 괜찮아."
p.293 하지만 죽으면 더 이상 두려워 할 게 없다. 그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던 인간적 두려움, 즉 남들의 시선에 대한 우려, 우리의 자존심, 체면 따위가 실은 별게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잃게 될 것을 떠올리는 순간, 우리의 심장은 더 이상 자제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애통은 다른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갈 기회이다. 애통은 마지막 숨을 거둔 후에 내쉬는 또 다른 숨이다.
p.83 부처는 당시 식중독에 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버섯이나 상한 돼지고기를 먹고 탈이 났다고 한다. 뭘 먹었든 간에 복통과 구토와 설사가 심했을 것이다. 부처는 자신을 둘러싼 무리에게 고개를 돌리지 말라고 했다. "보라." 부처는 말했다. "너희도 이러할지니라."
부처의 존엄성은 신체 기능의 소멸과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신체 기능이 항상 소멸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존엄성은 자유의 가장 위대한 표출이다. 육신에 벌어지는 일 때문에 훼손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나는 선생님은 화장실에 가지 않으시는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얘쁜 여자친구는 항상 깨끗하고, 순수하며 항상 향기로운 냄새만 나는 줄 알았다. 군대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키우면서 먹고, 싸는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결코 더럽거나 추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을 때, 어른이 된 것 같다. 사람의 고결함은, 그 너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