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구 Nov 05. 2016

부디 나를 돌아봐주길

광주 동물보호소 이야기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우리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마주한다.

우리에겐 그저 '길'이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도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너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거니?

그 대답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나왔으며 그들이 향할 곳 역시 '우리'의 품이다. 



올해 초, 처음 보호소를 방문했던 날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철장이 부족해 보호소 바깥 도로까지 자리 잡은 개들, 바로 옆 사람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소음, 무엇보다 코를 찌르는 냄새까지.

그저 불쌍한 동물들을 돌봐주러 가자는 거만했던 생각이 후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청소를 위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견사에 발을 내딛자 개들은 일제히 짖어댔다.

하지만 그것은 짖는다기 보다는 비명에 가까웠다. 

개들의 비명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절하다는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개들은 제발 자신을 봐달라며 울어댔다.

사료를 주기 위해 들이민 나의 손을 두 앞발로 붙들고 그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나 역시 어쩔 줄 몰라했다. 


견사 청소를 마치고 보호소 직원분께 다음 할 일을 여쭤보니 묘사, 그중에서도 어린 고양이들이 있는 보호동 청소를 부탁하셨다.

사실 고양이는 개가 가지고 있는 전염병에 면역이 없어 견사 이후에 묘사일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의 보호소는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급하게 소독약을 뿌리고 묘사에 들어섰다. 


고양이는 개들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들은 사람이 들어오자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무릎에 올라 나의 손에 머리를 비비적거리었다. 아픈 아이들은 더욱 그랬다. 몸이 약해 사료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어떻게든 사람의 온기를 찾아 모여들었다. 



보호소의 새끼 고양이들은 하루에도 몇 마리씩 죽는다고 한다. 

한창 어미 품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어야 할 녀석들은 비슷한 처지의 서로에게 몸을 기대며 미약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들어온 내가 마치 어미라도 되는 것처럼 꼭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뒤돌아 보니 어느새 한 녀석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보호소 첫 봉사활동을 계기로 나는 거의 묘사로 봉사활동을 다니게 되었다. 전에는 따로 유기묘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나 이 날 이후 편견 가득했던 고양이들의 뒷모습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날 만났던 새끼 고양이들

첫 봉사활동 이후 가끔 시간을 내어 보호소에 갈 때마다 항상 새로운 고양이들로 가득했다. 그곳은 결코 여유 있는 날이 없었다. 

이렇게나 많은 너희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거니?

그리고 마음속으로 대답한다. 우리로구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길들여졌으나 곧 쓸모가 없어져 버려졌다.

버려졌지만 버려진 줄 모르고 길을 헤매다 도시의 끝자락에 자리한 보호소, 다시 사람의 품으로 그들은 돌아왔다. 



하지만 보호소는 Shelter, 즉 쉼터이다. 

이 곳은 그들의 집이 아니다. 갈 곳을 잃은 동물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줄 수는 있지만 집이 되어 줄 수는 없다. 

이제는 우리에게 묻는다. 이들의 집은 어디인지.



대답을 듣지 못하고 오늘 또 한 녀석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