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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효 Oct 30. 2023

도합 300살의 태국 여행기

방콕에서 생일을 맞이하는 법

시작은 엄마와 나의 생일이었다.


올해 9월, 엄마의 음력 생신과 나의 생일이 같은 날로 겹쳤다. 모녀의 생일 기념을 위해 방콕 여행을 계획했다. 3월에 한국에 왔던 Sand 가족의 초청도 있었다. (Sand는 미국에서 함께 살았던 태국 친구로, 이제는 가족이 다 같이 보는 사이다.)


모녀여행의 계획은 점점 불어나서, 80대 외할머니, 70대 고모할머니, 60대 엄마, 50대 이모까지. 도합 300살에 달하는 가족여행이 되었다. 87세인 외할머니가 6시간의 비행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주변에서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는데, 불과 몇 달 전에 두바이까지 10시간의 비행을 무사히 다녀온 할머니였다. 가족의 DNA에 하나같이 호기심과 모험심이 흐르니, 여행 추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호텔에서 모녀에게 준 생일축하 메시지와 케이크

인천공항에 헤쳐 모여!


비행기 출발 시각은 저녁 7시 30분. 최종 집결장소는 인천공항이었지만, 다양한 나이대만큼 출발 장소도 다 달랐다. 나는 오후반차를 쓰고 회사에서 공항으로 바로 출발하기로 했고, 엄마는 할머니댁에 들려 함께 공항에 오기로 했다. 일본에 사시는 고모할머니는 일본에서 바로 인천공항으로 오셨고, 대구에 사는 이모는 아침 일찍부터 리무진을 타고 올라왔다. 그렇게 공항 라운지에서 이번 여행의 일행이 모두 모였다.  



샹그릴라 호텔, 총무는 잠들 새가 없다.


총 4박 6일의 일정 중, 우리의 첫 숙소는 샹그릴라 호텔이었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는데, 엄마와 내 생일이라고 메모를 남겨두었더니 방에 축하 메시지와 케이크가 있었다. 

이번 여행의 총무이자 가이드, 사진기사를 맡은 나는 밤에 호텔에 돌아오면 더 바빴다. 그날 쓴 금액을 기록했으며, 사진을 정리하고 다음날 일정을 수정하고, 필요한 곳은 새로 예약하고 검색하다 새벽에 잠들곤 했다. 그래도 발코니룸에서 선선하게 부는 강가의 바람을 맞으며 엄마와 함께 망고스틴을 까먹는 순간이 있어 좋았다.

샹그릴라 호텔에서 바라본 짜오프라야강, 아이콘시암 쇼핑몰
P에 가까운 J가 막내로서 브리핑하기 위해 짰던 계획표. (실제로는 50% 정도의 실행률)


좌충우돌 신돈 캠핀스키 호텔 체크인하기


두 번째 호텔은 COVID 기간에 방콕에 새로 생긴 호텔이었다. 물론 신돈캠핀스키 호텔에 체크인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샹그릴라 호텔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아이콘시암에서 쇼핑 후 다시 호텔로 돌아와 신돈 캠핀스키로 옮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푸드코트에서 두리안과 망고스틴을 먹다가 호텔에서 운영하는 마지막 배편을 1분 차이로 놓쳤다. 배로는 5분이면 갈 거리였지만,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려면 30분은 족히 걸리는 엄청난 교통체증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택시를 불러 엄마와 이모, 할머니들은 신돈 캠핀스키 호텔로 바로 보내드리고, 나와 Sand는 샹그릴라 호텔로 가서 짐을 챙겨 뒤따라 가기로 했다. 다만, Sand 차는 2인승이었기에 5개의 캐리어를 실을 공간이 없었다. 새로 택시를 불러 나의 몸과 캐리어 5개를 실었다. (그 와중에 내가 탄 택시기사 분은 청각장애를 가진 분이셔서 Text로 소통해야 했고, 먼저 출발한 엄마는 택시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것 같다며 난리가 나기도 했지만, 모두 잘 해결되었다!)

새로 생긴 신돈 캠핀스키. 로비가 사진 맛집이다!


생일 저녁에 열린 대환장파티


신돈 캠핀스키에 체크인하는 날 저녁, 또 다른 태국 친구인 Nick 가족을 보기로 되어있었다. 21살 보스턴에서 만났던 Nick은 어느새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7년 전 방콕에서 보았던 Yimm과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기 Leah, 3살 Lena를 함께 만났다. 태국어와 한국어, 영어, 아기 울음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10명이 함께 북적북적한 생일을 맞이했다.

할머니와 엄마, 이모가 저녁식사 후 먼저 호텔로 간 이후, Sand와 Nick, Yimm과 이야기를 나누며 21살 어리기만 했던 우리가 세월이 흘러 서로의 가족을 만나고, 앞으로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함께 나눌 것이라 생각하니 괜히 뭉클했다.

Nick과 Yimm 의 딸 Lena와 함께한 생일


조금은 특별한 가족 만남, Sand 가족 상봉기


Sand로 말할 것 같으면, 태국에 있는 또 다른 나 같다고 할까. 나보다 더 뽈뽈이인 Sand는 올해 3월 한국을 왔고, 11월 다시 한국에 올 예정이다.

타지에서 가족이 함께 만나게 되는 인연은 조금은 특별하다. 처음 방콕에 갔을 때, Sand 가족이 공항에 마중 나와 바로 파타야로 향하며 꽉 찬 여행을 했다. 연말에는 Sand네가 한국에 와서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시간이 흘러 동생을 보러 뉴욕을 갔을 때, Sand도 뉴욕 여행 중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두 가족은 뉴욕에서 다시 만나 함께 브루클린 브릿지를 걸었다.

이번 방콕 여행에서는 할머니가 Sand를 처음 만났는데, 말은 통하지 않아도 Sand 어머니와 할머니가 같이 손잡고 걷는 모습을 보니, 이심전심 Sand가족이 내 가족이고, 내 가족이 Sand 가족인가 싶다.  


태국 여행의 꽃, 왕궁+사원 투어  


야심 차게 준비한 이번 방콕 투어는 왕궁과 아유타야였다. 첫 번째로 갔던 왕궁은 생각보다 넓었고, 햇빛은 뜨거웠다. 모두 사진 찍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곳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왕궁 문을 닫을 때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왕궁은 오후 3시쯤 일찍 문을 닫는다.)

왓포는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길이 46m, 높이 15m의 와불상을 만날 수 있다. 사진보다 실제로 볼 때 훨씬 거대하게 느껴졌는데 모자와 신발을 모두 벗어야지만 관람할 수 있다. 5개의 신발주머니를 챙기며 소원을 빌었다.

최대한 짧은 동선으로 다니려고 했지만, 하루 만에 왕궁과 사원들을 보려니 만보를 넘게 걸었다. 나야 이삼만보씩 걸어도 괜찮다지만, 할머니 걱정이 되었다. 더운 날씨에 걷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도, 다들 믿고 따라주셨다.

거대한 왕궁과 왓포


여자 다섯 = 네버앤딩 쇼핑


쇼핑은 체력전이다. 왕궁투어 이후 우리는 대부분 쇼핑몰 위주로 다녔는데, 또 다른 가족 선물을 사기 위함이었다. 함께 오지 못한 아빠, 삼촌, 동생, 사촌오빠, 조카 등등. 태국 실크로 유명한 짐톤슨 매장을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했고, 시암파라곤 고메마켓에 가서 먹을 것도 잔뜩 샀다. (왕실꿀, 망고, 쿤나초콜릿 등을 추천한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도 우리는 식사 대신 쇼핑을 선택했다. 쇼핑을 마치고 아유타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맥도날드를 먹었지만, 대신 무사히 부처의 머리를 감싼 보리수나무를 볼 수 있었다.(마감 5분 전 겨우 입성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정말 다들 자리에 앉자마자 기절했다.

태국의 경주로 불리는 아유타야. 전쟁 중 보리수나무 근처로 떨어진 부처의 머리를 감싸 나무가 자랐다고 한다.


도합 300살의 생일 축하, 이번 여행의 평점은요?


주로 혼자 또는 친구들, 부모님, 동생과 여행했던 나에게 이번 여행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조식 시간이다. 원래는 조식 대신 아침잠을 택하는 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점심을 간소하게 먹는 대신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느긋하게 조식을 먹었는데, 시대와 세대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소녀가 되는 순간이 있기도 했고, 여장부가 되기도 했으며, 로맨스도 있고 삶의 지혜가 있고, 가족의 역사도 있었다.(그리고 망고도 실컷 먹었다.) 

몸은 좀 힘들었어도 다 같이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번 여행의 평점은 할머니의 메시지로 갈음한다.


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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