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kg 연탄의 무게와 36.5 사람의 온도
연탄 한 장의 무게는 3.65kg. 직접 들어보면 보기보다 무거워 놀라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하루를 따뜻하게 나기 위해 연탄은 몇 장이나 필요할까? 막연히 3~4개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겨울 날씨를 버티기 위해서는 하루 8장 정도 태워야 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한 가구가 겨울을 나는 데는 1,000장 정도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집들은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집집마다 연탄을 나르는 데는 사람의 손길이 필수다. 이 지점에서 '연탄 봉사'의 진가가 발휘된다. 한 사람의 몸이 겨우 들어갈만한 긴 골목에 줄지어 서서 인간 컨베이어 벨트가 되어 연탄을 나르고 마지막에 있던 사람이 창고에 연탄을 쌓게 된다.
연탄에는 22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들의 열을 잘 맞춰야 잘 탄다고 했다. 22개 구멍을 통해 열을 뿜어낸 연탄은 자신을 모두 태우고 한 줌의 하얀 재로 돌아간다. 그렇게 3.65kg의 묵직함은 활활 타올라 36.5도를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의 온도가 된다.
입동을 지나면서 한결 추워진 날씨에 이번 연탄봉사도 서둘러 진행되었다. 오랜만에 참여하는 연탄봉사였고, 주말 아침 매서운 찬바람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단단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경험상 연탄재가 날리기 때문에 얼굴과 옷에 검은 재가 묻는다. 그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만 옷을 입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예상했던 인원보다 적은 인원이 참석했다. 결과적으로 50여 명의 인원으로 8,000장의 연탄을 날라야 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아닌 평지였기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인간 컨베이어 벨트로 연탄을 나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직접 연탄을 하나씩 들고 날라야 하는 집도 있었다.
3개 조로 나누어 연탄 배달을 시작했는데, 마지막 조였던 우리는 제법 손발이 잘 맞아서 속도가 빨랐다. 집집마다 300장씩 쌓으며 헬스 삼대오백쯤 하는 사람들이 여길 와야 한다느니 하는 실없는 농담도 하고, 떨어뜨리면 -900원(연탄 1장 값)이라는 소리에 연탄을 주고받는 요령도 터득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힘들 때 왜 노동요가 필요한 지 알겠다.)
처음에는 웃으며 시작했는데 쉬지 않고 연탄을 나르다 보니 나중에는 다들 팔의 감각과 말을 상실하고 있었다. 연탄은 내가 멈추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멈춰야 하기 때문에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5시간 이상 연탄을 내리 나르고 우동과 김밥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그 와중에 점심은 꿀맛) 이전과는 다른 강도에 뻗어버렸고, 온몸에 알도 배겼다.
집에 가는 길, 동네에서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을 했다. 연탄재로 꼬질꼬질 해졌을 모습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 친구는 커피를 건네며 "이걸 해서 너한테 돌아가는 이익이 있어?"라며 오전부터 봉사를 다녀온 나를 신기해했다. 사업가다운 친구의 질문이었지만, 예로부터 뽈뽈거리는 나를 위해서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음..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는거? 그럼 그 세상에 사는 나한테도 좋은 거고ㅎㅎ"
다소 피상적인 대답이었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뭐 결국 세상에 +가 되는 일은 나에게도 +가 되는 일 아닐까. (그런 다음 어디에 투자하고 무슨 일을 해야 잘 살 수 있을지 얘기한 것은 별개의 문제ㅎㅎ)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과거에 비해 연탄을 사용하는 집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현재도 10만 가구 정도가 연탄을 사용한다고 한다. 온몸을 태워 하얀 재로 남는 연탄처럼, 타인에게 온전한 사랑을 베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 어떤 마음은 따뜻한 온기가 모이면 22개의 구멍과 같은 힘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번 연탄 봉사도 그렇게 50여 명의 마음이 모였다. 그렇기에 내년 이맘때쯤이면 근육통은 다시 잊고, 다음 연탄 봉사에 참여할 내가 있지 않을까.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 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연탄 한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