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직장인의 운동 일기 프롤로그
이상형을 물을 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곤 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도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 시대 직장인이 몸과 마음의 건강함을 챙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모니터 앞에서 절로 말려드는 어깨와 오랫동안 앉아있어 붓는 다리, 퇴근 후 회식이나 약속 있는 날의 과식과 과음.
통근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생활 걷기가 되었는데, 광화문에 살고 나서는 걸음 수가 부쩍 줄었다. 하여 주말마다 도심을 걷기 시작했고, 생각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다.
미국에 있을 때, 이탈리아, 브라질, 벨기에 친구와 하우스메이트 였는데, 항상 계단을 이용하던 친구들 덕분에 나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던 경험이 있다. 처음엔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는데, 습관이 되다 보니 계단 오르기의 효과는 단순하지만 꽤나 컸다.
퇴근 이후에는 공으로 하는 운동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테니스와 골프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를 잘하는 대신, 공으로 하는 운동은 잘하지 못했다. 양손잡이인 탓에 어느 손으로 공을 쳐야 할지 항상 헷갈렸기 때문이다. (운동회 계주선수였으나, 피구는 잘하지 못했다!) 회사를 가지 않는 주말엔 친구들과 산을 오르고, 한강에서 노를 저었다. 그렇게 퇴근 이후 하나, 둘, 운동 기록이 쌓였다.
효나달을 꿈꾸다, 테니스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라켓 스포츠의 하나인 테니스는 혼자만 공을 잘 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호흡을 맞춰가며 공을 유연하게 주고받을 수 있어어 한다. 이리저리 뛰면서 공을 치다 보면 땀도 비 오듯 쏟아진다. (물론 공을 줍다가 더 땀이 나기도 한다 ^^:)
직장인의 여건 상 퇴근 후 실내 테니스장으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초반에 야외 테니스장도 경험하면 훨씬 재밌게 배울 수 있다. 포핸드와 백핸드를 익히고, 짧은 공을 받아치는 발리와 서브를 배웠다. 몇 개월간 실력이 크게 늘지 않아 주력 손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꿨더니, 훨씬 편해졌다. (골프는 또 오른손으로 친다. 결국 양손잡이는 상황에 맞게 적응이 필요하다.)
두 번째 스승으로 만났던 프랑스인 코치님과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레슨을 했다. 라코스테 옷을 입고 가는 날엔 유난히 좋아하셨다.(라코스테가 프랑스 브랜드라고 한다.ㅎㅎ) 야근하고 가는 날엔 힘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운동을 하고 나면 개운했다.
최근 테니스에 대한 높은 인기 덕분에, 2022년에는 26년 만에 '코리아 오픈'이 열렸다. 직접 배우던 스포츠여서 그런 지 경기를 더 재밌게 볼 수 있었다. 테니스 경기는 에티켓이 중요한 스포츠이다. 선수가 공을 서브하는 순간에는 조용히 해야 하고, 포인트가 끝난 후에 박수와 함성소리를 낼 수 있다. 오래된 전통으로 유명한 윔블던 경기는 선수들도 모두 하얀 옷을 입어야 하고, 관람객들도 격식 있는 차림으로 경기를 관람한다. 모두가 숨소리를 죽인 가운데 지름 6.7cm, 무게 59g 남짓한 공이 시속 200km을 넘나드는데 몰입감이 엄청났다. 운동을 배우니 직접 하는 것을 넘어 경험하고 받아 들 일 수 있는 세계가 더 넓어졌다.
한강을 가로질러, 드래곤보트
생소해 보일 수 있는 이 운동 종목은 '조정'과 비슷하다. 20여 명의 패들러가 고수의 북소리에 맞추어 힘을 합에 노를 저어 수면 위를 질주하는 수상 레저 스포츠이다. 다만, 보트 앞에 용머리가 있어 말 그대로 드래곤보트가 되었다. 드래곤보트는 배가 무척 가볍기 때문에,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바로 배가 뒤집힌다. 양옆, 앞, 뒤 패들러 간의 호흡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협동력을 기르는 동시에 노를 저으며 코어도 강화할 수 있다.
매년 여름엔 한강에서 국내대회가 열렸고, 가을에는 인천 검단 아라뱃길에서 국제대회가 열렸다. 일반인도 신청만 하면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참가에 의의를 두며 매년 참여했다. 대부분 직장이 있는 친구들이었고, 서로의 친구들을 데려왔다. 경기시간 자체는 짧지만, 배를 타고 출발선까지 가고 돌아오는 과정, 그리고 연습을 하는 과정까지 거치면 생각보다 오랫동안 물 위에 있게 된다.
나는 첫 대회 때 북을 치는 고수였다. 고수의 역할은 북을 힘차게 치며 하나! 둘! 구령을 외치며 박자를 유도하고, 노를 짓는 선수들의 힘을 북돋아 줘야 한다. 처음에는 힘차게 쳤는데 점점 북을 치는 소리가 쿵쿵!에서 콩콩..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맨 앞에서 노를 짓던 친구들이 함께 구령을 외쳐 주며 힘을 보탰다. 배 위에서 한마음으로 움직이다 보면 운동을 통해 한마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자녀가 생기면 꼭 가르치고 싶은 운동이기도 하다.
동물과의 교감, 승마
동물과 교감하면서 할 수 있는 운동은 많지 않은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승마'다. 몽골에 갔을 때 말을 탄 적이 있는데, 승마를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었다. 직장인이 되어 처음 배웠던 야외 운동이기도 하다.
서울 근교에는 비교적 쉽게 승마를 배울 수 있는 곳들이 있다. 나 또한 멀지 않은 곳에 승마장이 있어 레슨을 시작했고, 초보 단계에서는 생각보다 비용도 크게 들지 않았다. (물론 상급 단계로 갈수록 구비해야 하는 도구들로 값이 나갈 수 있다. 최종단계는 말..)
승마는 단순히 말위에 앉아서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의 속도에 맞추어 하체의 힘으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므로 코어 근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과 교감할 수 있다. 말은 거의 350도를 볼 수 있는 동물로, 기승자의 감정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다. 수업 후 말에게 각설탕을 주는 재미도 있다. 다만, 낙마 등 부상을 조심해야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자연의 품 속으로, 등산
등산은 두 다리만 튼튼하다면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다. 나도 처음부터 산을 잘 탄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잘 몰라서 산을 잘 타는 친구들을 따라 여러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숲내음과 함께 바람과 빛을 마주하는 등산길이 참 좋았고, 중간에 쉬면서 나눠먹는 간식과 하산 후 먹는 밥은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정상에 오를 때면 큰 성취감과 함께 상쾌함을 느꼈다.
억새의 계절인 가을, 처음으로 민둥산 야간 등산을 했다. 금요일 퇴근 후 서울역에서 모여 마지막 기차를 타고 강원도 민둥산역에 내렸다. 편의점에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새벽 4시쯤부터 머리에 랜턴을 켜고, 친구들과 함께 산을 올랐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해발 1,119m 정상에서 떠오르는 해로 인해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억새는 힘듦을 모두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이후 다시 올랐을 때는 우중 등산이 되어 해를 보지 못했지만 대신 운해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었다.(이 또한 등산의 매력이 아닐까.)
한겨울 아이젠을 신고 소백산을 올랐을 때는 하얗게 뒤덮인 설산의 모습에 감탄했고, 태백산에서는 썰매를 가지고 올라, 썰매를 타며 내려오기도 했다. 한여름 40도 더위에 올랐던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울 야경과 올해 봄에 올랐던 도락산 정상에 핀 철쭉도 좋았다.
등산은 꼭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광화문 근방의 인왕산, 안산, 북한산과 관악산, 북한산, 청계산, 용마산, 곳곳의 아파트 뒷산까지. 서울 도심에는 마음만 먹으면 갈 먹으면 갈 수 있는 산이 차고 넘친다. (산이 많기로 치면 서울을 따라올 도심이 없을 것이다.)
궁을 끼고 도심 속, 달리기
요즘같이 선선한 저녁은 달리기 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일 달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광화문직장인인 나는 정동거리를 달려 시청으로 나오거나, 서촌을 지나 청와대 방면으로 달리곤 하는데, 모두가 퇴근한 고요한 도심을 달리는 기분이 남다르다. 광화문 광장이 리뉴얼된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광장에서 출발하는 러닝크루들을 마주치기도 한다. 뜨겁던 낮 공기가 가라앉는 여름밤공기를 마시며 혼자 달려도 좋고 함께 달려도 좋다. 달리다 보면 머릿속을 헤집던 생각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요즘은 운동의 기본이 되는 헬스를 열심히 하고 있다. 요가와 필라테스 등 나름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근육을 정확히 타겟팅하는 운동을 해보니 자극이 엄청나다.
주변을 보면 크로스핏, 수영, 클라이밍, 발레, 싸이클, 댄스 등 다양한 형태의 운동을 한다. 주변에서 배우는 운동을 함께 배워봐도 좋고, 꼭 운동을 배우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칭을 통해 운동을 습관화할 수도 있다. 점심시간 하는 산책, 자기 5분 전 스트레칭, 넷플릭스 보면서 폼롤러하기, 하루 만보 이상 걷기 등. 물론 잠을 잘 자는 것도 중요하다.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는 스스로 우리 몸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건강함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자 선물이다. 당신의 하루가 조금 더 건강하길 바라며, 오늘 우리의 한걸음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