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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Jan 10. 2019

대통령 기자회견 소회

우리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이 있는 날, 저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정상 근무를 마치고 비슷한 시간에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한국시간 아침 10시부터 시작이니 제 시간으로는 저녁 8시입니다. 뉴스를 보니 이번 회견은 미국 대통령 회견 이상으로 자유로우면서 치열할 것이라고 해서 은근히 기대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전 회견처럼 질문의 순서라든지, 질문 내용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전혀 사전에 짜놓은 각본에 의해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바로 집으로 직행하여 삼겹살에 와인을 한잔하고 테레비 앞에 앉았습니다.


내용이 중요합니다만 그 내용을 담는 형식도 때로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각본없는 회견은 사실 몇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있게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국정 전반에 대한 인식을 폭넓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첫번째 입니다. 어떤 질문이 나올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물론 대략적인 주제 구분은 있었습니다만 매우 곤란해질 질문도 나올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보면 그의 국정에 대한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는 철학의 문제이니 그것을 두고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두번째는 질문하는 기자들의 수준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현장 기자들은 40대 중반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듯합니다. 그 정도 나이되면 데스크로 물러나 뒷방 어른 노릇하는 것이 우리의 풍토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젊고 패기 넘치는 기자들의 날카로움도 즐거운 관전거리이기는 합니다. 백악관에는 백악관 취재만 2,30년이 넘는 기자들이 차고 넘칩니다. 관록으로도 대통령에 결코 밀리지 않는 사람들이죠. 청와대 출입기자들이니 아마도 각 언론사의 제일 유능한 기자들이리라 짐작합니다. 대체로 잘하였지만 앞으로는 머리 히끗히끗한 대기자들이 대통령을 상대로 무게있는 질의 응답을 하는 기자회견을 기대해 봅니다.


세번째가 사실 이번 회견에 숨진 메시지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이런 자유형식의 기자회견은 어떻게 보면 주류교체라는 문재인 정권의 키워드가 대언론을 상대로 적용된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전 각본에 의한다면 아무래도 영향력이 큰 언론사 중심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습니다. 조중동 KBS MBC, SBS가 골고루 한꼭지씩 가져가겠죠. 외신기자도 거기에 양념처럼 두세개 정도 분배될 것입니다. 지방언론사나 중소언론사는 체면치레로 한두개 할당이 될테고. 이런 기존의 구도를 깨는 방식은 사전 각본없는 대통령의 지명에 의한 회견밖에는 딱히 없었을 것입니다. 권위는 인정하되 기득권은 허물어뜨린다는 면에서 의미있는 시도라 하겠습니다.


와인 탓에 중간 중간 졸기도 했지만 나날이 발전하는 우리 나라의 모습을 대통령 회견에서도 관찰할 수 있어서 기분좋은 저녁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지금 미국보다 앞서가는 몇 안되는 것 중 하나가 더 나은 대통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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