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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Sep 11. 2019

다시 추석에

초연결사회 이전의 우리는 고작해야 전화가 가장 신속한 정보 전달 통로였습니다. 전화라고 해도 그 진화 과정이 제법 만만치 않습니다. 처음에 도입된 전화는 수동으로 연결되는 것이었는데, 2차대전 영화에서나 보았던 것과 비슷하게 손잡이를 돌리면 전화국 교환수에게 연결되고 교환수에게 몇번 연결해달라고 하면 교환수가 코드를 그 번호에 연결함으로써 통화가 이뤄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완전 자동 교환기가 개발되면서 전화는 모든 가정에 보급되기에 이릅니다. 물론 교환수는 일자리를 잃었죠. 그 다음 단계에 등장한 것이 시티폰, 삐삐 등이 있습니다만 바로 등장한 무선 전화기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무선전화기도 곧이어 등장한 스마트폰으로 순식간에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노키아는 그렇게 우리 기억에서 멀어진 기업입니다.


지금 우리는 10년전만 해도 상상을 할 수 없는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촌 저편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지 않습니까. 서울, 뉴욕, 런던, 요하네스버그 어디라도 우리는 실시간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이런 초연결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사무실만 나서면 업무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핸폰이 있었지만 사실 전화를 무시해도 될만한 핑계거리는 차고 넘쳤죠. 그래서 골치아픈 일이 있을때는 잠수를 타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랬다가는 바로 무성의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입니다. 메일, 메신저, 카카오톡, 위챗,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나를 추적하는 것들입니다. 시차가 완전 반대인 서울과 뉴욕은 이 초연결의 가장 큰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수혜자입니다. 좀 쉴만하면 메일에 카톡이 옵니다. 24시간 일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하이퍼 스피드 덕분에 또 비즈니스를 더 잘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초연결시대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 시대는 등장한 지가 아직 얼마되지 않아서 시대를 관통하는 질서랄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예절이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결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기업들이 퇴근후 카톡 보내지 않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바람직해 보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개방되고 연결되고 공유되는 사회일 수록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영역에 너무 깊숙히 들어가지 않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말에 '오지랖이 넓다'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낄 곳이나 안낄 곳이나 상관없이 끼어드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영역에 끼어 드는 것을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이 많은 문화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개인적 관심을 표현하지 않으면 사람이 차갑다느니, 까탈스럽다느니 하기도 합니다.


다시 명절입니다. 오랜만에 가족 친지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사랑과 관심의 마음을 담아 이런 저런 질문들을 많이 하고 또 받게 될 것 같습니다. 놀이문화, 대화문화가 썩 발달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여러사람이 모여도 대화가 끊기기 일쑤입니다. 그런 분위기를 돌려보기 위해 또 개인적인 질문을 어쩔 수 없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페북을 보니 해서는 안될 질문 리스트도 보이더군요.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도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해 좀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의 영역은 그 개인에게 맡겨두어야 합니다. 신상털기, 그것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초연결시대의 적당한 무관심은 냉정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너무 시끄러웠던 여름 후의 명절입니다. 풍성하고 행복한 추석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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