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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Feb 13. 2020

아카데미 4관왕

봉 감독이 받은 상의 의미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호 불호에 대해서는 별로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거야 개인의 취향이니까요. 모두가 좋다고 박수치는 것 보다는 좀 딴지거는 사람이 있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모두가 비난할 때 또 누군가가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한결 숨통 트이는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각본상은 전체 순서에서 좀 일찍 발표하였는데, 저는 각본상 후보가 되었다는 소식에도 좀 갸우뚱했지만 정작 수상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아카데미 회원중 우리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 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만 아마도 대부분은 번역본이나 자막으로 평가했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런 2차 과정을 거쳐서도 그 창작성을 충분히 인정받았다는 것이니까 정말 봉감독과 한진원 작가를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영어외의 언어로 각본상을 탄 영화는 '기생충'이 5번째입니다.  


국제영화상은 Academy Award for 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이 공식 명칭입니다. 이 이름은 작년까지는 Academy Award for Best Foreign Language Film이라고 불렸습니다. 아카데미가 국수적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상의 명칭을 바꾼 후 첫번째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이 '기생충'입니다. 봉감독도 수상 소감에서 아카데미가 미래지향적으로 상의 명칭을 바꾼 후 첫 수상이라 더 기쁘다고 했었죠. 좀 건방지게도 이 상은 당연히(?) 받을 것이라 예상했었기 때문에 혹시나 못받으면 어쩌나 하는 조마조마함이 있었습니다.


감독상 후보자를 발표할 때도 과연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객석을 꽉 메우고 있는 할리우드의 기라성 같은 감독과 배우들이 화면에 계속 잡힐 때마다 어떠면 아카데미의 들러리나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미 두개나 받았으니 더 욕심내지 말자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또 why not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상자 발표 순간 마치 브래디의 수퍼볼 우승 터치다운 패스 때와 같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예이'하는 환호가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봉감독의 수상 소감은 이 사람이 그냥 영화 감독이 아니라 사업감각도 탁월한 감독임을 보여주었죠. 미국인들의 입맛에 딱 맞는 소감이었거든요. 감탄, 감탄이었습니다.


작품상은 제일 마지막에 발표합니다. 서부시간으로는 8시 반이지만 동부 시간으로는 11시 반, 한밤중이나 다름 없는 시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고 저도 평소같으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숙면을 취하는 시간입니다. 정말이지 이미 3개나, 그것도 감독상까지 받았으니 그걸로 만족하고 작품상은 양보(?)하자는 심정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진보의 상징, 제인 폰다가 나왔을 때 혹시나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습니다.


작품상이라고 하니 감이 좀 떨어지는 듯 합니다만 우리 식으로 1등상이라고 해 보겠습니다. 모든 상이 그 분야의 1등상입니다만 작품상은 그 중에서도 종합평점에서 최고라는 의미니까 1등중의 1등일 것입니다. 물론 세계 최고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카데미 후보작의 기준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만 그 중 하나가 201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사이에 LA County에서 개봉된 영화로 하루 3회 이상, 기간으로는 일주일 이상 상영된 영화입니다. 지극히 할리우드적 기준인 셈입니다. 그런데 할리우드가 전세계 영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이런 기준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작품상은 그해 발표된 영화중 최고영화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의 잔치, 그 피날레 무대를 우리 한국인들이 휘젓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기뻤습니다. 벌컥벌컥 들이키는 맥주맛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체신머리 없게 떼거지로 그게 뭐냐, 거기에 왜 그 사람이 올라가서 그러냐는 비아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좀 그러면 어떻습니까? 모두가 해낸 일인데요. 네 맞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해낸 일입니다. 심지어 한국당도 기뻐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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