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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Aug 09. 2017

토끼가 사는 마당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우리집 앞 길에 사슴 한마리가 우왕좌왕하고 있다. 작정하고 가출해서 조용한 동네 한가운데로 들어와 밤새 신나게 놀았던 모양이다. 서서히 해가 떠 오르고 여기저기 인기척이 나자 집생각이 간절해 졌는지 고개를 전후좌우로 돌려대는 처지가 안스럽다. 스스로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제 길잃은 사슴에게는 목숨 건 귀가길만 남아있는 아침. 이를 어쩐다... 숲은 큰길 너머에 있는데 그 길을 건너게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그렇다고 여기 방치할 수도 없고...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까치집을 짓고 있는 내 머리를 보더니 냅다 도망간다. 에휴 저넘이 무사귀가해야할텐데...


그러고 보니 문득 우리집 마당에 살고 있는 토끼가 생각났다. 야생토끼다. 아마도 우리가 이사오기 전부터 여기서 살았을 것이다. 사람도 거친 환경에 적응해서 살다보면 뼈와 살이 단단해지듯이 짐승도 야생은 더 날쌔고 더 주변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이넘이 우리집 마당을 자기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우리가 이사오기전 두어달 정도 집이 비어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하는 바다. 그 기간동안 마당의 잔디 혹은 잡초는 무성하게 자라서 홀로 밀림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주인노릇을 했으리라.  


이사를 하자 마자 마당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옆집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나무도 반듯하게 잘라냈다. 제법 넉넉하게 넓은 이 마당은 딱 네모진 모습을 하고 있어서 우리집 계단위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마당이 넓은 시골집에서 자라 이런 마당있는 집이 좋다. 저 마당 한구석을 파 뒤집어 이랑을 만든 다음 고추며 들깨며 상추를 심고 싶지만 우선은 이 잘생긴 마당을 그냥 감상하는 것이 만족하기로 하고 있다.


바로 그때 원주민 바니가 나타난 것이다! 이친구는 적어도 내가 관찰한 바로는 싱글이다. 혹은 가장일지도 모르겠다. 식구들은 안전한 곳에 머무르게 하고 혼자서 농장관리차 나들이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껏 혼자서만 다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싱글인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참이다. 나는 동물학자가 아니라서 토끼도 가정을 이루고 사는지 어떠는지 모른다. 그저 내가 가진 사람의 상식으로 토끼도 그러려니 생각한다. 그래서 혼밥, 혼잠, 혼놀하는 토끼에게 사람친구 하나쯤 있어도 괜찮을 듯 하여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마당을 서성이는 것이다.

지난 주말 식사자리, 내가 뜬금없이 애들한테 물었다.


"얘들아 토끼가 안보이던데 혹시 봤냐?"
매일 아침 보이던 넘이 한 몇일 안보이길래 그것도 습관이라고 궁금해진 것이다. 털은 약간 갈색과 쥐색이 섞여 있고 귀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원래 토끼는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길어 옛날 시골에서 토기몰이를 할때 언제나 내리막으로 해야 한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는데 이넘의 뒷다리는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는 조금 짧았다. 윤기없는 털, 작은 귀, 짧은 뒷다리를 보며 아 너도 사는게 만만치가 않구나 싶어 더 마음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잡초가 무성해지도록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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