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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Dec 29. 2016

스톤월 폭동, 게이 역사의 시작


여성에서 남성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한 사람은 어떤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별로 관심도 없을 법한 이 문제로 지금 미국이 시끄럽다. 최후의 사회적 소수 혹은 사회적 약자로 남아 있는 성 소수자에 대한 인권 문제가핵심이슈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제정한 화장실법(BathroomBill)은 바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 법의 그 취지는 공공 화장실이나 샤워장을 이용할 경우 태어날 때 주어진 성에 맞는 장소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화장실법(Bathroom Bill). 


얼핏 들으면 당연한 얘기지만 상황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트랜스젠더, 즉 성전환자의 경우 화장실 이용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혹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 전환한 경우 그들의 태생적 성은 그 반대이기 때문에 지금 여성인 경우 남성 화장실을, 지금 남성인 경우 여성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난감한 일이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전에 그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는 차치하고라도,이런 것을 법으로 제정한 것 자체가 성전환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노스캐롤라아나 주 의회는 이에 아랑곳하지않고 법을 통과시켰고,주지사는 여기에 서명을 함으로써 정식 주 법이 된 것이다.


일이 이쯤에 이르자 연방정부가 나서게 되었다.  어떤 경우에라도 차별 대우를 금지하는 헌법에 위반한다는 것이 연방정부가 나서게 된 배경이다.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48억불에 달하는 연방 정부의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화들짝 놀란 노스캐롤라이나 주 정부에서는 법안을 철회하는 대신 연방정부가 과도하게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연방 대법원에 행정 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연방 정부도 지지 않고  맞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최후의 소수자라 할 수 있는 성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인종차별, 남녀차별, 장애인 차별 등 각종 차별을 하나씩 걷어내 온 미국인들의 노력과 전통이 또한번의 진보를 앞두고 진통을 겪는 모습이다.


흔히 LGBT(Lesbians, Gays,Bisexuals  and Transgenders) 라고 부르는 성소수자가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된 것은 맨하탄의 조그만 게이 바,스톤월인(Stonewall Inn )에서 벌어진  폭동때문이었다. 불법영업을 일삼던 게이바 스톤월인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대응에 손님들과 시민들이 경찰에 저항하면서 벌어진 이 사건을 스톤월 폭동(StonewallRiot)이라고 한다.


맨하탄의 바둑판 같은 도로는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하우스톤 스트리트(Houston Street, 휴스톤이라고 읽지 않는다.)에서 시작되어14가에 이르러서야  반듯한 모양이 된다. 흔히 알고 있는 소호(SOHO)는 하우스톤의 남쪽(Southof Houston)이라는 의미이다. 소호지역과 이어지는 곳을 그린위치 빌리지라고 부른다.다른 맨하탄과 달리 이 지역은 구획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구시가지이다.  하우스톤 스트리트 바로 다음부터  숫자가 붙은 거리, 즉 1번 스트리트가  시작된다.  그 다음부터 북쪽으로 번호가 커지면서  220번 스트리트로 맨하탄은  끝이 난다.  소호와 그린위치 지역은 길 이름이 숫자로 된 것이 있는가 하면 고유명사를 사용한 것들도 있다.아무리 길눈이 밝은 사람도 번지수만으로 찾아가기는 쉽지않은 미로들이 즐비하다. 여기에는 수많은 식당과 갤러리와 스튜디오,길거리 가게들이 성업중이다.  스톤월인(the Stonewall Inn)도 그  중 하나다.  


1846년에 건축된 이곳은1960년대 중반 화재가 발생할 때까지 길거리의 조그만 식당이었다.  1960년대 중반 미국은 반전운동과 맞물린 히피 문화의 확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런 조류에 맞춰 버려진 이 식당을 인수한 3명의 마피아 두목들은 이 장소를 게이 바로 바꾼 다음1967년 3월 18일 다시문을 열었다. 스톤월은 주류판매 허가가 없었을 뿐만아니라 수도도 변변치 않아 고객이 사용한 컵의 물을 다시 사용하는 등 위생상의 문제 등 불법적인 영업이 다반사였다.  화재에 대비한 비상구도 없었다. 매춘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약 매매가 이뤄지는 등 현금을 주고받아서  증빙이 없는 거래들이 끊이지 않은 탈세의 온상이었다.  경찰의 단속은 정기적인 현금을 상납으로 피해갔다. 당시 스톤월은 맨하탄에서 게이들에게 춤이 허용되는 유일한 장소였다.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결정적인 배경이었다.  경찰은 한달에 한번 정도 게이바를 불시에 방문하여 위반사항을 점검하였으나 뇌물을 받은 경찰이 미리 이 사실을 업소에 알려주었기 때문에 커다란 불이익은 당하지 않았다. 대개 경찰은 초저녁에 나타나 조금 있다 사라졌기 때문에 검문이 끝난 후 밤 늦게까지 영업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1969년 6월 28일 1시 20분 경, 정복과 사복 차림의 경찰 8명이 검문을 위해 스톤월에 나타났다.그런데 이날따라 경찰의 검문시간이 평소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 스톤월 입구쪽에는 입장을 대기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구경꾼도 덩달아 늘어났다. 그 사이에 현행범으로 체포된 여성(여장 남자로 추정, 신원 미상)이 수갑에 채워진 채 경찰차로 호송되었다. 그 사람은 무려 네번이나 경찰차로부터 탈출하였다가 다시 잡혀오기를 반복하면서 줄을 서 있던 손님들과 구경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경찰의 과도한 연행에 흥분한 구경꾼들이 순식간에 폭도로 돌변하여 경찰을 덮쳤다.  수많은 인파에 대항하여 경찰들은 곤봉을 휘두르며 군중을 제압하여 하였으나  숫자에 밀려 결국 스톤월인 안에 갇히고 말았다. 이들은 경찰 특공대가 출동하고 나서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고 이 폭동은 새벽 4시경에 끝났다.   경찰의 무리한 검문에 대한 저항으로 촉발된 이 폭동은 뉴욕을 넘어 전국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이후 미국 전 지역 뿐만 아니라 캐나다까지  게이인권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언론과 학자들은 이 스톤월 인을 미국에서 게이 인권 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인정하고 있다.2000년 연방 정부는 이런 것을 배경으로 이 곳을 국가 사적지(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했으며,2015년 뉴욕 시의 랜드마크 지정 위원회로부터 LGBT 관련한 첫번째 뉴욕시 사적지로 승인되었다.스톤월인은 삼각형으로 앙증맞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크리스토퍼 공원 바로 앞에 있다.  뉴욕 7가(7thAve)의 지하를 관통하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크리스토퍼 역에서 내려 크리스토퍼  공원을 찾으면 바로 찾을 수 있다. 처음 지어진 그 모양 그대로 2층 건물인 이곳은 지금도 여전히 영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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