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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Sep 26. 2017

다시 뉴욕으로(9/22)

출장자에게 자투리 시간은 사금같은 것이다. 공항, 호텔, 사무실, 호텔, 공항의 연속인 일정에서 잠시 비는 두세시간. 거기서 금맥을 찾아야 한다. 이번 출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만의 목표가 있었다. 세느강변에서 조깅하기, 두오모 성당과 올드 캐슬 주변 달리기가 그것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 계획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지도만 놓고 도상 연습할 때와 실제 상황의 차이,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시차였다. 아무리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내 신체의 시간은 새벽 한시, 파리는 아침 7시. 몸롱한 상태에서 달리기 하러 나갈 정신은 커녕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것 조차 힘들었다.


밀란, 혹은 밀라노. 택시 기사에게 밀란과 밀라노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밀란을 밀라노로 부른단다. 왜 그리 부르냐고 다시 묻고 싶었으나 괜히 영어가 고생하는 것 같아 입을 디물었다. 22일은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 어느정도 시차에 적응한 탓도 있을테고, 어제밤 짐에서 몸을 좀 푼 덕분도 있겠으나, 새벽같이 일어나 얼른 샤워한 후 가방을 챙겼다. 좀 서두르면 주마간산이라도 밀란 시내 구경은 가능한 두어시간의 여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첵아웃 후 가방은 호텔에 맡겨두고 셀피스틱이 든 백팩을 멘 다음 길을 나섰다. 컨시어지에서 얻은 지도 한장에 의지하여 택시를 잡고 가는 길이다.  


관광지는 어디를 가도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나같은 출장자도 사진 한장 건져보겠다고 셀피스틱 들고 나서는데 일부러 이것을 보러 온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성벽은 거진 20미터, 어쩌면 더 될 것도 같다. 망루는 성벽보다도 10여미터 더 높이 솟아 있다. 성벽아래는 물로 적을 막았던 해자의 흔적. 알프스를 넘으면 나타나는 대평원, 그 가운데 있는 도시가 밀란이다. 밀란의 뜻이 대평원이라니 이전부터 이곳은 곡창지대로 이름이 높았을 것이다. 교외로 나가면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논농사가 대세인 풍경을 보며 떠나온 시골을 잠시 생각한다. 한니발이 대군을 이끌고 로마 원정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이 곡창지대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얀색 대리석이 이태리의 태양에 반짝이는 성당, 그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과 비둘기. 초를 다투며 사진을 찍는다. 좁은 골목길에 차와 사람이 묘하게 공존 중이다. 여기저기 출현하는 스쿠터를 보면서 밀란의 교통사정도 만만치 않음을 알겠다. 택시기사는 로마는 밀란보다 스쿠터가 5배는 많단다. 로마에 살다왔냐고 물으니 밀란 토박이란다. 잠시 웃는다.


밀란 시내에서 공항까지 택시는 95유로 정액제다. 시내 어느지역에서 출발하든 상관없이 그렇다. 뉴욕 JFK에서 맨하탄까지는 65불인가 한 기억이 있는데 환율을 고려하면 거의 두배다. 물론 거리가 더 멀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에미레이트 항공 카운터는 공항 진행방향으로 거의 끝쪽에 있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수속은 금방 끝났다. 시큐리티 첵도 밀리지 않아 빨리 끝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면세점. 살 것은 없지만 구경은 공짜이므로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가버렸다. 항공사 직원이 탑승 한시간전까지 게이트에 가서 짐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안내가 기억났다. 내 보딩패스를 보니 SSSS가 찍혀있다. 랜덤 검사 대상자다. 그래서 한시간 전까지 가라고 했군. 보안 수속은 끝냈는데 아직 출국수속은 하지 않았다. 면세점 둘러보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린 것이다. 출국수속 카운터는 면세점을 통과해야 나온다. 대개는 면세점이 출국수속 이후에 있는데 여기는 배치가 약간 다르다. 자칫하면 늦을 뻔 했다.


게이트 앞의 추가 보안검색. 양손을 벌리고 있으면 보안 요원이 몸을 쭈욱 훑어내린다. 뒤돌아 하고 다시 등판쪽을 훑어 내리고. 백팩은 여지없이 까발려진다. 그래봐야 자질구레한 서류들과 컴퓨터 충전선 셀피봉 필기구 노트 명함 등등. 비행기를 타게 되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므로 짜증낼 필요는 없다. 그냥 미음 편히 프로세스에 따라가면 된다.


세상에 나와 있는 여객기 중 가장 큰 A380. 두바이에서 출발하여 밀란을 경유한 다음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다. 나와 8시간을 함께한 싯메이트는 중년의 이탈리안 부부. 간단한 눈인사 후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아웃렛에 연결한 다음 영화를 고르기 시작했다. 많은 영화중 내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 감상을 시작할 무렵 내 모습을 곁눈질 하던 이 친구도 갑자기 영화가 보고싶어진 모양이었다. 뭘 계속 누르기는 누르는데 영화는 보이지 않고 나왔던 화면만 왔다리 갔다리 하기를 10여분, 인내심의 한계에 이르렀는지 지나가는 스투어디스를 붙잡고 따따따따 한다. 스튜어디스가 친절하게 영화를 틀어주고 가자 흡족한듯 헤드셋을 걸친다. 그런데 갑자기 내 어깨를 툭툭 친다. 
"Yes~~"
"$&%#@#*$^*#:&"
뭐라는거야
"$&%$@&$&%italia#$&%%%!&"
딱 한마디 이탈리아 비슷한 말은 알아들었다.
이태리 어로 더빙된 것을 찾아달라고?
마음을 열고 보면 세상에 소통하지못할 언어는 없다.


다시 뉴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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